엑소더스의 본래 의미와 창조 아래의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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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리는 흔히 기독교인들을 보면 어떤 부정적인 행위에 항상 ‘마귀’, ‘사탄’이란 수식어가 붙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부정적 행위에 대해 마귀와 사탄이란 존재에 결부하여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여 에덴에서 쫓겨났을 때도 뱀의 유혹이 있었고, 사울이 다윗을 시험할 때도 그 속에 사탄이 임하였다는 성경(성서) 말씀이 있다. 하지만 과연 인간사를 보며 마귀라는 존재에만 국한되어 적용될 수 있는 부분만 존재하는지 고민해보게 된다.
이번 수업자료를 보며 크게 4가지 정도의 주제를 잡아 내용을 정리했다. 각 각의 주제는 성경이 담고 있는 내용을 통해 얻어야할 깨달음이 무엇인지 스스로 고찰해 볼만 내용이다. 과연 하나님이 성경(성서)에 나와 있는 인간의 모진 고난과 변덕스러움을 통해 결론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수업자료를 통해 그 내용의 중심이 곧 ‘엑소더스’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책 내용에 대한 보고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 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원하셨던 본래의 ‘의미’를 왕들은 잃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원하시던 본래의 의미란 무엇일까? 가령 이스라엘 백성들이 ‘엑소더스’를 겪으며 광야생활에 접어들었을 때,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부과한 과제는 10계명을 지키는 것과 탈 제국주의 한 왕국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 왕국엔 약자도 기본적으로 보호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겐 서리법을 통해 먹이며, 안식일 법을 통해 모두가 평등하게 휴식 등을 취할 수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점차 이스라엘 백성을 스스로 타락의 길을 걸음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붕괴시켰다.
또한 이스라엘이 세운 절대 왕정인 다윗계열 왕조는 하나님과 백성들의 관계를 원초적으로 끊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다윗은 자신의 입지를 곤고하게 다지기 위하여 가나안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그 중심지를 옮겨오는 대대적인 작업을 실시한다. 이는 종교와 권력이 하나가 되어 이집트 파라오가 그랬듯이 자신의 말이 곧 하나님의 뜻이란 논리로 작용했을 수도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10계명은 강제성을 갖고 있지만, 단순 복종과 명령이 수반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절대왕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단순 복종과 명령이 수반되는 행위로 변모되었다고 나는 보았다. 그의 아들 솔로몬 역시 타락의 길을 걸으면서 민중의 소리를 듣지 않은 채, 대규모 왕궁 증축과 난잡한 혼례, 이방신의 유입을 하게 된다.
결국 본래의 의미를 저버린 채 자신들의 권력욕과 탐욕으로 물들어간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그들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남, 북으로 갈리게 되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가령 이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결과적으로 성경(성서)의 본래의미를 저버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엑소더스’를 하신 그 목적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그들의 400년 노예생활의 해방을 가져다주신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정말 본래의 목적은 책에서 보았듯, ‘민중의 소리’를 저버린 것이 행위의 ‘이유’일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 약자의 편이시지만, 인간이 한 인간을 지배하고 억압하려는 순간, 행하신다는 것이다. 우리 또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남을 짓밟고 뛰어넘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욕망이 강하다. 하지만 결코 인간이 서로 당 짓고, 헐 뜯고, 비방하며, 남을 핍박하여 취하는 이득이 결국 이스라엘과 같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하는 시발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둘 째,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려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보내주신 예언자의 역할과 그들이 겪은 고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었다고 본다. 특히 아모스 예언자가 등장하여 어떤 행위의 종교보단, 정의의 종교를 주장했듯이 분명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위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성서 울타리를 넘어’의 책 내용처럼, 분명 광야생활 당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행위를 요구하지도 않으시며, 제사를 원하지도 않으셨다. 그저 그들에게 원하신 것은 본래의 의미를 항상 각인하고 10계명을 지키며 모두가 행복하고 평등한 하나님 나라(왕국)를 건설하란 것이었다. 하지만 점차 그들은 자신들이 본래 보았던 이집트 노예생활처럼 파라오가 태양신에게 제사지내듯, 동물을 잡아 숭배하며, 피를 흘려 예배하고, 솔로몬은 엄청난 성전을 증축하는 ‘행위’를 하였다. 이런 일련의 상황 속에서 예언자는 이런 행위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지 않으려 했던 것은 인간의 ‘강한 자아’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말 그들이 예언자가 하나님의 말을 대변하는 사람이라 여겼다면, 결코 간과해선 안됐다. 어찌 본다면 지금 기독교사회에 팽배하게 성행하고 있는 ‘행위의 종교’를 비판하고 정말 자신의 성찰과 성경(성서)이 전달하는 본래 의미를 찾아가는 것에 힘쓰는 것을 촉구하는 경고라고 여겨야할 것이다.
나는 앞선 과제에 예언자의 역할은 이미 모세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었고 책에서도 그런 내용이 있었다. 분명한 것은 모세역시 자신에게 나타나시어 계속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을 주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엄청난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안다. 그것처럼 이 당시 예언자들 역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에 엄청난 갈등을 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그 당시 상황에 대한 비판과 올바른 방향의 제시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 예언에 대한 발언으로 인해 목숨의 위협을 분명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야의 갈멜산 승리처럼 하나님은 결코 예언자들에게 패배하는 상황을 주시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예언자들 역시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하는 행위지만, 그들도 두려움, 낙담, 절망, 갈등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신 사명과 본래의미를 충실히 실행했다. 그것은 이미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하시고자하는 일이 성사될 것이란 전제하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지금도 각 사회 처소에선 이런 ‘예언자’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사람들이 아닌 경우도 있지만, 그들의 역할은 성경(성서)의 예언자와 동일한 만큼의 중요한 위치에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정말 올바른 자세를 ‘지도자’ 혹은 ‘사회’에 전달하는 것에 대해 서슴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엘리야가 낙담하고 있을 때, ‘하나님 나라를 희망하는 이들이 칠천 명이나 있었던 것이다’란 책의 내용처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성서)은 이런 예언자의 사명감을 갖고 있는 자들에게 두려움을 떨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셋 째, 예언자를 통해서 진정으로 원하신 본래의 의미이다. 본래의 의미가 앞서 말한 엑소더스의 목적과 더불어 어떤 것이 있을까? 그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끝까지 부르짖는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 즉 예언자는 남 유다의 멸망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런 하박국 예언자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때때마다 응답하시고 그에게 약속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약속’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성지에 들어가는 것 역시 ‘약속’하셨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처럼 하나님이 엑소더스의 본래 의미와 더불어 예언자들을 통해 원하신 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신들의 지도자나 행위의 종교를 통해 부르짖음이 아닌 스스로가 하나님에게 부르짖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도 그들이 노예생활에 대한 부르짖음이 결국 모세를 통하여 엑소더스의 결과를 도출해 냈던 것처럼, 예언자들이 때때마다 나타난 것은 이런 일련의 모습들을 원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일련의 내용을 통해 우리가 현제 적용해 보아야할 부분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기독교 속에서만 국한된 내용이 아닌,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며 어떠한 부정적인 행위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나아가란 의미일지도 모른다. 비록 예언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함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예언자의 갈등 역시 하나님은 그에게 “너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란 전제하에 용기를 주신 것처럼 우리 스스로가 그런 예언자의 발언에 힘을 실어 올바른 길로의 촉구를 구해야한다는 것이다.
넷 째, 하나님의 창조이야기는 곧 ‘평등’이다. 일단, 하나님이 창조를 하셨다는 내용은, 책의 내용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성을 먼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창조물에 대한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부분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위대함을 나타내며,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계명이야 말로 지켜야할 근본적인 법이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고 생각한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대상 역시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을 통해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고 우리의 ‘편’에 계신다는 것을 각인하는 결과가 되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부심과 자긍심은 물론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주었던 부분이다.
나는 특히 책을 읽으며 아담이 ‘사람’이란 의미를 처음 알았다. 어떻게 본다면, 성경(성서) 역시, 남성위주의 서술방식 때문에 여자보단 남자가 먼저 창조되었다고 여겨졌던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동반자로서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라는 책의 내용처럼 ‘평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교수님이 안식일 법을 이야기 하실 때, 그 내용은 집에서 일하는 종들과 가축까지 쉬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것은 창세기 처음부터 이미, 우린 하나님 아래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인간 스스로가 서로에 대해 지배할 수 없으며, 가령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당시, 10계명이 내포하는 의미처럼, 하나님이 탈 제국국가를 달성하기 원하셨듯이 ‘평등’을 원하신 것이다.
하지만 근대사회에 접어들어 양육강식 혹은 미계한 자들에게 서구사회의 우월한 지혜를 가르쳐준다는 제국주의로 인하여 이런 평등한 하나님의 본래 의미가 사라졌다고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선언이 하나님의 이런 평등한 주의로부터 비롯된 것을 생각한다면 결국 하나님의 평등법이 현대사회에서 역시 실현 됐음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성경(성서)을 통해 이런 평등에 대한 내용을 계속 각인해야하는 부분은 전자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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