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외설을 국가적 권력 잣대로 나누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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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7 / 201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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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린다’를 O.C.N영화채널을 통해서 본 경험이 있다. 한참 프랑스에서는 이 영화를 가지고 예술이냐, 아니면 외설이냐의 두 쟁점을 가지고 법적 싸움까지 가는 경우를 보았다. 우리나라 현실로 이 두 애매한 기준을 가지고 국가 권력의 사용에 타협하고 맞세우고 있다.
외설이라는 이유로 한 문학 작품의 판매금지나 연극 상연금지의 문제가 현제 예술과 외설이 물음형태로 제기되고 있다. 이것의 쟁점은 예술은 국가권력 밖에 머무르고 있어도 외설은 국가권력의 작용으로 많은 제재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도 잘못된 전제로 말이다.
먼저 예술작품과 외설물이 객관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외설은 정확히 규정할 수 없다. 즉 어떤 작품이 예술이냐, 외설이냐가 객관적으로 정확히 기준을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둘째 예술작품과 외설물은 서로 배타적인 두개의 다른 범주에 속한다는 전제이다. 그러나 예술과 외설은 서로 배타적이 아니다. 정확한 범주 안 에 인식의 차이일 뿐 예술작품 일수도 있으며 외설물이 될 수 있다는 경우가 많이 보여준다. 셋째 예술이 내재적 가치를 갖고 있는데 반해 외설은 그 반대를 가진다는 전재이다. 그러나 예술과 외설은 가치를 자동적으로 반대개념으로 의미되어지진 않는다. 가령 인간의 범주에서 살인자와 위인을 나누는 기준처럼 범주가 한 개의 속함이 있듯이 예술과 외설은 한 범주 안에 나뉜다는 것은 결코 타당치 않는다. 넷째 결론적으로 어떤 작품이 외설의 범주에 속하지 않고 예술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 밝혀지면 국가권력의 제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외설의 국가권력의 억압으로 많은 씁쓸함을 남기고 한 조각 재처럼 사라지는 외설을 뒤짚어 쓴 예술들은 참으로 예술의 혼을 못 보는 맹인처럼 보여 지진 않을까? 이 문제된 전제들로부터 생각해 보면 아직 예술과 외설의 정해지지 않는 철학적 문제로 이어 갈 수 있다.
국가 권력으로 어떤 외설물로 오해 받는 예술작품이 처벌 받거나 제재를 받을 때에는 그 작품이 예술에 속하지 않는다고해서가 아니다. 도덕적으로 허용 될 수 없다는 데에 비롯된다. 도덕적으로 봐서 사회적으로 해롭다는 전재에 권력으로 처벌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의 판단의 기로에 서서결정을 내린 것이 아닌, 단순히 국가 도덕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도덕적이라는 범주가 가 개인마다 다르기는 마찬가지이다. 특히 성도덕성은 본능적 욕구에 어떠한 통제에서도 많은 유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 유동성을 본다면 가령 한국과 미국을 들어 볼 수 있다. 한국같은 경우에는 집 안에서의 모습과 집 밖에서의 모습이 사뭇 대조적이다. 마찬가리고 미국같은 경우도 대조적이다. 한국은 집안에서 팬티 셔츠로 돌아다는 경우에 반해 미국은 가족에게 다리털이나 야시스러운 모습은 철저히 통제 된다. 그 반대로 미국은 밖에서도 많은 노출로 다니는가 하면 한국에서는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을 경우를 볼 수 있다. 특정한 개인이 아닌 더 나아가 국가적으로 다른 유동적인 도덕성을 보여준 것이다.
외설의 평가 유무는 그 작품의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중요하다. 외설물의 인체에 대한 정신적 고차원 세계로 끌어올려 표현 했을 때 외설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더 높은 정신적 유쾌함을 보는 이에게 선사한다. 국가적으로 멋대로 정해지지 않는 말 그대로 인체가 음란 그것에 멈추지 않고 그것으로 인간의 높은 정신의지가 표현되어 있을 때 각 개인의 철학적 수준에 판단하는데 달려 있다.
참고 문헌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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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박이문“예술, 외설, 권력” , “문명의 위기와 문화의 전환” 민음사1996
= 인터넷 정보창 네이버 “ 예술과외설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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