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도시 이야기 독후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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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도시이야기를 읽기 전 제가 알고 있는 베네치아는 곤돌라고 타고 다니며 낭만을 즐기는 멋자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제가 미래의 신혼여행지로 일찌감치 점찍어 놓고고 사랑하는 부인과 곤돌라를 타며 유럽의 낭만을 즐기려던 이 도시에 이렇게 구구 절절 한 사연이 숨어 있었다니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이 바다의 도시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베네치아라는 국가의 생성 에서 망할때까지 마치 하나의 작은 이야기들이 조가조각 나열된것같아 읽기에도 부담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사실 중에 하나가 베네치아가 1000년이나 한 나라의 틀을 유지 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무엇이 베네치아를 1000년 동안이나 망하지 않게 했을까? 그것은 그들의 뛰어난 외교술과 상인적 감각에서 나오는 실용적인 사고 또 그 나라의 국민의 강한 애국심 마지막으로 안정된 정치체제 이런 것 들이 복합적으로 베네치아를 1000년 동안 한나라의 틀이 유지 될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의 뛰어난 외교술, 실용적인 사고, 애국심, 안정된 정치 중 가장 큰 역활을 한 것을 뽑으라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안정된 정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위의 외교술이나 실용적인 사고, 애국심등은 주변의 도시국가들도 가지고 충분히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베네치아는 그 시대에는 보기 힘든 획기적인 정치 체제를 베네치아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바로 그 책을 통해서 들어봤으니까 말이다. 나도 그래서 베네치아라고 하면 일반적인 해양 국가의 정도로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역사가 길어서 그런지 몰라도 베네치아 역시 여러 가지 사연이 많은 국가였다.
물론 해상 국가라는 말에서 알 수가 있듯이 바다를 끼고 살아가다 보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내가 느낀 베네치아는 터키, 에스파냐, 프랑스 이런 대제국들과 같이 경쟁을 하고 협력하고, 그리고 싸우고, 그러한 국가였다. 베네치아는 터키, 에스파냐, 프랑스와 같이 땅도 넓고 인구도 많은 강대국들과 항상 부딪혔다. 강대국 사이에 낀 자그마한 국가. 여기서부터 난 더욱 더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 그래서일까 베네치아가 강대국 사이에서 하는 행동을 유심하게 보게 되었다. 베네치아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을까? 내가 본 베네치아는 유연한 느낌이었다. 강대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교를 벌이기도 하고, 그 강대국과 싸우기도 하고, 땅 덩어리로만 따지면 자그마한 도시 국가에서 불과했던 베네치아였지만 국력 면에서는 결코 밀리지가 않았다. 이탈리아가 아직 통일되기 전이었을 때, 즉, 여기저기에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서 있었을때의 이야기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변덕이 심해서, 툭하면 동맹을 깨고, 또 쉽게 동맹을 맺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도시국가 사이에 전쟁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전쟁에 시달리고, 쫓기고 쫓겨, 더 이상 밀려날 수도 없는 개펄까지 쫓기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아무 쓸모없는 땅이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전쟁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개펄위에 통나무를 수직으로 박아넣고, 그위에 돌을 쌓아, 그 위에 집을 짓고, 물이 썩지 않게 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수로를 만들었습니다.
또 적들이 쳐들어 와도, 쉽게 점령당하지 않기 위해 많은 골목길을 만들었고, 골목의 끝은 모두 원형의 광장으로 이어지게 하여, 자연스레 적을 포위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사람이 만든 작은 섬은 점점 커져 도시라 부를 수 있을만큼 커지게 되었고, 대운하옆에는 고급스런 집들도 생겨났습니다.
산업도 고기잡이와, 염전에만 의존하지 않고, 유럽최고의 레이스와 유리공예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면서...
국민성에 있어서는 당대의 라이벌인 제노바와 극한 대조를 이루는데, 제노바 인들은 매우 개인주의적이어서 국익에 끼치는 영향 따위는 아랑곳 않고 능력만을 앞세워 국가가 급격히 쇠퇴하고 외세에 잠식당한 반면 베네치아는 개인의 능력을 조금은 배제하되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서는 단결하는 모습을 통해 격변 속에서도 살아남음으로써 국민성이 중요한 국가 구성과 발전, 또한 존속의 요소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중세 비잔틴 제국의 보호국 격으로 존재하던 베네치아가 본격적인 ‘동지중해의 여왕’으로 군림하게 된 제 4차 십자군의 참가로 경제대국으로써 도약하게 됩니다. 호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은 베네치아가 유럽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케 된 데는 특색 있는 ‘콜레간차’ 즉, ‘한정합자회사’제도와 국채의 다양한 응용, 항해자 육성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에 있었는데 현대에서는 특히 베네치아에서 항해자로 대표되었던 지금의 인재 육성책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재 육성과 함께 모든 국민들에 대한 특기 계발 장려로 국가가 발전하게 된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입증된 예로써, 무한경쟁시대이며 지식사회에 대비해야 할 오늘날의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요소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인재 육성책 외에도 국채는 의결기관에 의석을 가진 귀족층과 부유층에게 주로 국가위기상황에 반강제적으로 구매를 시킴으로써 전비 조달 등에 쓰이도록 하여 일명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도록 하였고 현대에서의 누진세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콜레간차’는 현대의 ‘펀드’개념으로 위험성을 최대한 줄인 효율적 투자 방법의 한 가지로,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널리 이용하는 투자방법이었습니다. 베네치아의 영화는 대항해 시대의 도래와 전제 군주국의 잇따른 발현으로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지루한 쇠퇴에 강건했던 국민성마저 퇴보 일로로 빠져듦으로써 급 변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채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1천 1백년의 장구한 역사를 뒤로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베네치아의 존속기와 오늘날은 물론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은 사회의 모습이 더욱 복잡해지고 문화적인 영향력 또한 한 해역이나 대륙에 한정된 것이 아닌 전 세계에 미치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하겠지만, 오히려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금의 상황에서 베네치아의 해결법은 우리에게 적용하기 충분한 실례였습니다. 자국의 발전을 가져온 정신들, 예를 들어 미국의 프론티어 정신이나 일본의 이이토코토리, 주로 서구세계에서의 장인정신 등 숱한 정신들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도 저는 베네치아의 공동체 중시적인 - 즉 공동체만을 우선시하는 것도 아니고 개인만이 우선되는 것이 아닌, ‘중시’적인 - 국민성을 배우고 싶습니다. 베네치아 인들이 지중해 시대에 후발 주자였음에도 마키아벨리의 말과 같이 ‘완전무결하지 못한 정책’들을 과감히 삭제함으로써 번영했다면, 차기 태평양 시대의 주역에는 우리가 앞장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60년이 도래하는 이 시점에서 인문학과 과학의 총체적 부실정치/경제 지도자들의 부정부패개인의 특성을 배제한 획일화적인 사회 매커니즘 등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알량한 국수주의와 대안 없는 무조건적인 민족주의를 앞세워서는 50년 후 미래조차도 가늠하기 힘듭니다. 세계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베네치아 공화국민들의 단결력과 공동체 중시적인 사고를 개인 특성의 인정과 전통적 윤리와의 접목을 통하여 베네치아의 13세기나 우리나라의 1970년대와 같은 저력으로 새로운 미래를 도모하는 국가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심각해지고 있는 국론의 양극화를 신세대에서는 반드시 일소하여 베네치아의 실책을 우리가 되풀이하도록 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방금 인용한 마키아벨리의 말과 같이 ‘완전무결하지 않은 제도’들을 시대에 맞게 과감히 변화시키되, 옛 제도의 좋은 점은 존중하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잊지 않도록 한다면, 저는 감히 이 나라가 신세기에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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