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론 독서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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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대학생이 읽어야 할 필수 고전 중의 하나가 플라톤의 [국가론]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책을 읽지는 못했었다. 그러던 중에 이번 과제를 통해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맨 처음에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간의 대화법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조금씩 읽어 나가면서 읽기가 결코 쉽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플라톤의 국가론」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산파법으로 기술한 책이지만, 여기에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플라톤 자신의 사상으로 발전시킨 것이 수록된 것 같다. 여기에 수록된 내용이 B.C. 4세기의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매우 소박하고 때로는 유치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그것이 그만큼 문제의 핵심을 제시해 주고 있어 읽은 보람을 느끼게 했다.
(본론)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부당한 죄목으로 처형되는 것에 환멸을 느껴, 정치가를 철학적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입장을 굳히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플라톤의 국가관이 형성되었다. 6권에서는 철학자들이 추구하는 앎이 나라의 경영과 관련되는 실재에 대한 것임을 언급한 뒤 이러한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철학자의 성향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대화에서 당시 철학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철학이 가장 어울리는 이 사람들은 이렇게 철학에서 이탈하여, 철학과 짝을 짓지 않고 이를 쓸쓸하게 남겨 둔 채로, 자신들에게 어울리지도 진실 되지도 않은 삶을 살게 되네. 반면에 마지 친족을 잃은 고아 꼴이 된 철학에 자격 없는 다른 사람들이 대신 접근해서는 철학을 수치스럽게 만들고 갖가지 비난을 받게 하는데, 이 비난들은, 자네도 말하듯, 철학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퍼붓는 그런 것들로서, 이를테면 철학과 교류하는 사람들은 일부는 아무 쓸모도 없고 많은 수는 많은 나쁜 일을 당해 마땅하다는 걸세”
여기서는 정작 철학적 자질을 가진 자들이 철학을 버리고 떠나가니, 자신들이 하는 일에 다소 열등감을 느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고 싶어 철학자인척 하거나 교양인 행세를 하고 싶어하는 천직종사자들이 철학에 열을 올리게 된 당시의 풍조를 빗대어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가 철학을 제대로 대접해야 훌륭하게 나라를 경영할 지도자를 양성 할 수 있으며 이는 제도적인 교육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교육은 이상국가의 체제와 밀접히 연관이 된다. 선의 이데아 실현을 위한 적합한 체제가 이상국가라면 이에 따른 교육이 바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초작업인 것이다. 그래서 그 교과 과정과 함께 가장 중요한 배움으로서 “좋음의 이데아”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이 좋음의 이데아를 설명하게 위해 이른바 “태양의 비유”를 하게되고 이 인식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단계의 앎의 대상들에 대한 구분을 하기 위해 이른바 “선분의 비유”를 하게 되며, 이를 통해 각각의 지적 대상들에 상응하는 인식 주관의 지적인 상태들에 대한 언급도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치자(治者)"의 교육에 대하여 말하기 전에, 맨 먼저 "배워야 할 최대의 것"으로서, "선"을 들고, 이것을 대화편 전체의 주제로 삼고 있다. "선의 이데아야말로 배워서 알아야 할 최대의 것이며,…"올바른 것", "아름다운 것" 등이 어찌하여 "선"이나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을 알고 있지 아니한 자를 수호자로 받들었다 하더라도 그다지 가치 있는 일이 되지 못한다,…내 생각으로는, 어떤 사람도 "선"을 모르고서는 "정의"나 "아름다움"을 충분히 알 수 없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때 아데이만토스는 "선"이란 무엇인가를 소크라테스에게 질문하지만, 소크라테스가 그 대답을 극력 피하고 주저하게 되자, 글라우콘까지 합세하여 그 대답을 유도하고자 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하는 수 없이 직접적인 해설을 피하고, 세 가지 비유를 들어서 간접적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식되는 것들에 진리를 제공하고 인식하는 자에게 그 ”힘“을 주는 것은 ”좋음의 이데아“라고 선언하게. 이 이데아는 인식과 진리의 원인이지만, 인식되는 것이라 생각하게나. 반면에 이 둘이, 즉 인식과 진리가 마찬가지로 훌륭한 것들이기는 하지만, 이 이데아는 이것들과도 다르며 이것들보다 한결 더 훌륭한 것이라 믿는다면, 자넨 옳게 믿게 되는 걸세. 그러나 인식과 진리를 마치 가시적 영역에 있어서의 빛과 시각을 태양과도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만, 태양으로 믿는 것은 옳지 않듯,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이들 둘을 ”좋음“을 닮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으나, 어느 쪽 것도 바로 ”좋음“이라 믿는 것은 옳지 않다네. 오히려 ”좋음“의 처지를 한층 더 귀중한 것으로 존중해야만 하네”
“태양은 보이는 것들에 ”보임“의 ”힘“을 제공해 줄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들에 생성과 성장 그리고 영양을 제공해 준다고 자네가 말할 것으로 나는 생각하네, 그것 자체는 생성이 아니면서 말일세”
“그러므로 인식되는 것들의 ”인식됨“이 가능하게 되는 것도 ”좋은“으로 인해서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존재하게 되고 그 ”본질“을 갖게 되는 것도 그것에 의해서요, 좋음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지위와 힘에 있어서 존재를 초월하여 있는 것이라고 말하게나”..................
여기에서 최초의 "태양"의 비유를 통해 "배워야 할 최대의 것"인 "선"을 설명하고 있다.
"선분(線分)"의 비유는 철학이 추구하고 있는 "지(知)"와, 수학이나 그 밖의 "지식"과의 구별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이 선분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플라톤의 이데아란 항상 자기 동일 적인 것, 생득적이고 선천적인 진리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플라톤의 이데아는 형식이나 기능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내용이다. 그것은 갈색이나 책의 이데아도 존재하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러한 플라톤의 이데아는 감각적인 대상도 아니고 시공간적 대상도 아니며 심리적인 대상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관념적인 실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데아는 영원불변하는 이상형으로서 우리의 생각의 대상이 된다. 이데아가 영원불변한 것이므로 우리는 영원불변한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고 알 수 있다. 만약 인간의 신념과 지식이 이데아까지 이르지 못하고 감각적인 직관에만 얽매여 있다면 그것은 앎이 아니라 억설일 뿐이다. 플라톤은 이러한 이데아가 실재한다는 것은 수학과 논리학이 타당한 것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다른 어떠한 현실보다 수학과 논리학의 현실성이 강하게 인식되었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에 있어서도 현대 문명의 기술이 수학과 논리학에 근거해 있으며 따라서 그런 면에서 수학과 논리학은 현실의 토대를 이룬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같다. 플라톤은 이것을 매우 극단적으로 해석한 것 같다. 수학과 논리학을 보면 그것은 현실적으로 작동한다. 즉 수학과 논리학에 근거해서 설계되고 만들어진 기계가 움직이고 건물이 건설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과 논리학은 어떤 실재하는 것에 대한 학문이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플라톤에 따르면 이데아이다. 따라서 이데아는 실재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수학과 논리학은 공상과 다름없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삼각형을 칠판에 그렸을 때 그 그려진 삼각형은 참된 삼각형을 흉내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플라톤은 참된 것인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감각적인 실재적인 사물들은 모두 이 이데아들을 본뜬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순수한 삼각형을 생각하기 때문에 칠판에 그려진 삼각형을 삼각형으로서 이해하게 되듯이 이데아의 세계는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사물과 세계를 그것이게끔 하는 것, 즉 존재하게끔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데아를 통해서 다른 존재들이 존재를 갖게 된다, 즉 존재하게 된다. 플라톤은 이러한 이데아가 진리 인식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보고 학문을 탐구함에 있어서는 항상 현실을 초월한 이데아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감각적인 세계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라 감각적인 세계의 근저에 있는 것을 이해하고 그래서 감각적인 세계를 한꺼번에 질서정연하게 이해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이데아론을 정리하고 보니 플라톤의 선분의 비유를 좀더 쉽게 접근할수 있었다.
선분의 비유란 대상들이 참되게 존재하는 순서를 선분으로 나타낸 것인데 가장 참된 대상으로서 이데아가 있으며 그보다 덜 참된 것으로서 동식물이나 침대 등과 같은 인간이 만든 것들이 있고 마지막에 다시 이것을 모방한 그림자나 모상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그 비유를 좀더 자세히 보면 눈에 보이는 세계에 있어서는 태양이 모든 것들에게 가시성과 생명과 성장을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이데아의 왕국에 있어서는 선의 이데아가 존재자가 인식되고 본질을 갖도록 하는 궁극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선의 이데아 자체는 이미 존재가 아니며(태양이 다른 사물들처럼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듯이) 존재의 저편에 있고 힘과 품위에 있어서도 모든 것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선분"의 비유에 있어서는 가지계(可知界)가 주가 되며, 가시계(可視界)나, "선"은 부차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선분의 비유는 이데아에서부터 그림자까지의 존재자들의 참된 정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철학사상을 통해서 플라톤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치 순서대로(즉 좋고 나쁜 순서대로) 질서 지으려고 시도했다. 이러한 플라톤의 생각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생겨났을 것이다. 즉 플라톤은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고 또 그 세상의 근저에 있는 진정한 존재인 이데아를 발견하였으므로 이제 이데아 역시 질서 있게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데아들의 질서란 그 가치순서를 매기는 것이다. 이로써 플라톤은 무엇이 참된 존재인가 하는 물음과 무엇이 좋고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 동시에 답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플라톤의 철학사상은 고대 철학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체계적이고 방대한 사상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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