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30년대 전반 시 - 현대문학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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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20년대~30년대 전반 시
목차
1. 시대개관
2. 비문단 시인
3. 민요시
4. 카프, 사회주의
5. 낭만주의
6. 결론
1. 시대개관
1) 정치: 1919년 3.1 운동에 영향으로 일본의 무단통치가 문화통치로 바뀌게 되었다. 헌병경찰제도를 보통경찰제도로 전환을 하였으며 부분적인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철저한 감시와 검열 하에 허용하였다. 무단통치 때 철저하게 제한했던 기본권들 중 일부를 인정해 주었다. 언론과 출판이 허용되면서 1920년 1월 일본이 조선일보, 동아일보, 시사신문 등 3개 신문만을 허가했다. 1920년대에 3개의 신문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지하신문도 존재하였으나 남아있는 자료가 없다. 조선일보는 뒤떨어진 새 문명을 발달시켜 향상시키겠다는 것을 목적으로 일제 문화정치의 구호와 상통하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민족지를 자처하며 ‘민중의 표현기관임을 자임한다’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문화주의를 제창하겠다.’ 등과 같은 3대 주지를 밝혔다. 시사신문은 신일본주의를 표방하고 참정권운동을 하는 민원식이 편찬하였다. 문화통치라고 기본권도 인정해주면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문화통치의 진짜 목적은 황은에 감읍하도록 세뇌시키는 것이다. 선거권도 허용해주지만 20엔 이상의 세금을 낸 사람만 선거권을 가질 수 있고, 신문도 3개나 허가 해주었지만 2개는 친일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오히려 민족의 신문을 억압하고 견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문화통치는 무단통치와 약간 나을 뿐, 변함이 없으며 일본의 식민정책은 마찬가지였다.
2) 철학: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 대두되었다. 민족개조론은 민족쇠퇴의 원인을 민족성의 타락 때문으로 보았다. "민족의 생활의 진로의 방향전환, 즉 그 목적과 계획의 근본적이고 조직적인 변경"을 민족개조의 방향으로 제시하였다. 즉 일본의 식민지 지배보다 타락한 민족성이 민족을 쇠락하게 한 근본원인이기 때문에 민족해방운동은 문화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윤치호 등 많은 사람들이 뜻을 같이 하기도 했다.
3) 경제: 1920년대에 이루어졌던 물산장려운동은 물자 아껴쓰기 및 우리 산업 경제를 육성시키자는 기치 아래 민족정신을 일깨우며 앞장서 벌여 나간 운동이다. 일제의 경제적 수탈정책에 항거하여 벌였던 범국민적 민족경제 자립실천운동이다. 출세(出世)라는 단어가 지금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도 1920년대부터였다. 일제의 지배 속에서 생겨난 신흥지주들은 대체로 사회적 성공을 가져다준 일제의 협력적이었다. 그래서 총독부의 관료나 각급 협의회의 위원으로 활약하였다. 일본 문화의 유입과 함께 일본식 용어가 수입이 되어서 재가자가 스님이 되기 위해 집을 떠난다는 의미의 출세라는 단어에 정반대의 의미, 즉 세속적 성공으로서의 출세라는 의미가 첨가되었다.
4) 문화: 1920년대 동아일보에서 계절마다, 해마다 변하는 패션 경향을 실었다. 1921년에는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검은색 양산, 기생들 사이에서는 화려한 양산이 유행했다. 1922년에는 개량된 한복 소재가 등장하여 한산모시와 같은 소재로 지은 옷이 유행했다. 1924년 《신여성》에 따르면 시스루가 유행하여 “학생들이 치맛감을 고를 때 속 잘들이다 보이는 것 찾느라고 비추어 보기에 야단이고, 옷감가게 주인의 걱정하는 말로 ‘개화가 다 되어 벌거벗고 다니게 되면 우리는 무얼 해먹나’”라는 말이 실리기도 했다.
5) 문학: 문화통치로 인해 신문과 더불어 문예잡지들도 창간되었다. 3.1 운동 전에는 유학생 중심의 문예지 『창조』가 나왔고, 1920년에는 『폐허』가 나왔다. 1921년 전문지인 『장미촌』이 발간되었다. 최초의 시 전문지로 주로 낭만주의적 경향을 띄었으나 대다수 장미촌에 있던 『백조』를 창간하여 좀 더 이념화된 성격을 지녔다.
1920년대에는 민요시와 낭만주의, 카프 그리고 시조 등 많이 작품이 등장하였다. 민요시는 1910년 후반부터 시작되어 1920년대 전반에 걸쳐 대두되었다. 민요를 바탕으로 창작된 시로 대표적인 작가로는 김억과 김소월이 있다. 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낭만주의이다. 한국근대의 낭만주의는 폐쇄적인 낭만주의로 낭만적인 정열보다는 낭만적인 허무에 빠졌다. 카프는 1925년에 결성된 목적의식과 정치성을 띈 문화집단이었다. 사회주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예술을 무기로 계급적 해방을 꿈꾸던 카프는 1935년 해체 되었다. 시조나 한시를 쓰면서 아무 문단에도 속하지 않는 비문단 시인들도 존재했다. 비문단시인의 대표적인 작가로 한용운이 있다. 이렇게 많은 작품경향이 공존한 1920년대이다.
2. 비문단 시인
1) 한용운: 3·1운동 때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이고,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을 지낸 독립 운동가이자, 한국 현대 시사의 거봉으로 우뚝 솟아 있는 민족시인 만해 한용운의 문단사적 특징은 그가 문단 권외에 있었다는 사실, 동인지의 구성원이 되지 않았던 사실, 외래 문예사조에 편향되지 않았던 사실, 즉 문단적 시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는 당시의 문단 테두리 안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못했던 문학적 깊이와 폭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 식민지라는 공황상태에서 수구문학의 사조와 흐름이 동시다발적으로 수용되어 혼선을 빚었던 만큼 문단 춘추전국시대에서 한학을 공부한 한용운, 불교학자인 한용운은 비문단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또한 우리의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근원을 둔 전문작가들은 문필업에 대한 직업의식을 얻고, 다른 한편으로 상업화한 가치로 평가받음에 따라 매문한다’ 한다는 갈등과 죄의식을 얻게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용운은 그의 중심이 문인, 독립운동가, 승려 중 어디에 있는지를 가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의 독립운동가로서의 삶과 승려로서의 삶이 문학작품에서 결합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문인 한용운은 독립운동가와 승려의 삶을 아우르는 기반 혹은 총체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2) 대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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