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속요와 경기체가의 비교(별곡의 명칭과 그 의의, 별곡의 형태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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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려속요와 경기체가의 비교
1. 들어가면서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고전시가들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져왔다. 고시가에서 시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들의 형식이나 내용, 형상화 방법 등이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그 중에서도 특히 고려속요와 경기체가는 한국시가의 다양한 장르들 가운데 그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면에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다. 각각의 장르들이 그만의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며 때로는 서로서로 영향관계를 형성하면서 우리나라 시가의 수준을 높이고 발전시켰듯이 이 두 장르의 시가들 역시 한국고전 시가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끼쳐왔음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레포트에서는 이 두 시가장르(고려속요와 경기체가)의 명칭, 형태적 특성, 변천과정을 알아봄으로써 이 두 장르의 문학사적 위치를 재확인해 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 한국고전시가의 전반적인 특징이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2. 별곡의 명칭과 그 의의
일반적으로 고려 시대의 시가를 범칭할 때에 ‘고려 가사(歌詞)’ ‘여요(麗謠)’(고려가요), 또는 ‘고려 장가(長歌)’ 라는 이름들로 불러 왔었다. 그리고 <한림별곡>, <관동별곡>, <죽계별곡> 따위의 독특한 시가군을 ‘경기체가(景幾體歌) 또는 ’별곡체(別曲體)‘라고들 불러 왔었고, <청산별곡>, <서경별곡>, <만전춘>, <정석가>, <이상곡>, <쌍화점>, <가시리> 따위의 시가군을 불러 ’고려 속요(俗謠)‘ 또는 ’고속가(古俗歌)‘라 하여 왔었다. 이처럼 하나의 대상에 대하여 그 명칭을 각인 각색으로 부른다는 사실은 적어도 학문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갖가지의 혼란과 착란을 면치 못할 것이겠고, 또 그 사실 자체는 대상물의 본질이나 속성을 분명히 해명ㆍ분석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결과라 하겠다. 이런 뜻에서 상기한 바 여러 명칭들에서 그 대상의 형식과 내용의 특징을 고려하여 어느 정도 그 개념이 뚜렷이 형성되어 있는 명칭을 찾는다면 ’경기체가‘와 ’고속가‘가 통용되고 있는 듯하고, 또 이 둘을 통합한 개념으로는 ’고려 가사‘ 와 ’장가‘ 가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앞서 든 그러한 이유로 언제까지나 각인각색의 자의적인 명칭을 혼용함으로써 초래되는 불필요한 착란을 모면하여야겠고, 따라서 그 명칭을 통일시키는 데에 어느 정도 이론적인 근거와 그 타당성이 인정된다면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통일시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면 이렇게 혼잡한 명칭을 어떠한 방법으로 통일할 것인가? 우리가 아는 바 신라시대에는 10구체를 전형적인 형태로 삼는 ‘사뇌가’라는 명칭의 시가군이 있었고, 이조 시대에는 ‘시조’,‘악장’,‘가사’등의 명칭으로 불려지는 시가군들이 있어 제가끔 독특한 형태를 갖추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사실들에 비추어 만약 고려 시대에도 일정한 형태를 갖춘 시가군이 있었다면 사뇌가나 시조나 마찬가지로 고려 시가를 대표하는 명칭이 있어 마땅할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쓰이던 ‘고려 가사’는 막연히 고려 시대에 불려진 가사라는 인상을 줄 뿐이고 어떤 특정한 형태를 갖춘 시가군의 명칭으로는 적합하지 못하였으며, 또 ‘장가’(長歌)도 그 명칭에서 받는 인상이 이조 시대에 발달한 ‘가사(歌詞)’와 그 개념이 혼동될 우려가 없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우견(愚見)으로는 과거에 ‘고려 가사’또는 ‘장가’로 불러지던 개념 즉 ‘고속가’(고려 속요)와 ‘경기체가’(별곡체) 이 둘을 통합한 고려 시대의 시가 형태 일반을 ‘별곡’(別曲)이라는 명칭으로 통일하는 것이 옳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이 ‘별곡’이라는 명칭을 과거에는 오직 <한림별곡> 따위의 소위 ‘경기체가’ 형태에 국한하여서만 사용하여 왔던 바이나 이제 이것을 고려 시가 일반의 범칭으로 사용하자는 소이는 고려 시대 시가 전반이 가진 바 그 형태적인 특수성의 공통적인 데서 얻어진 개념에서 이 명칭을 사용함이 타당하다고 보는 까닭이다. 이 형태적인 특수성에 관하여는 후항에서 상론하겠거니와 본고의 제명에 보이는 ‘별곡’이란 말도 이런 뜻으로 썼음을 우선 명백히 밝혀 둔다.
이제 여기 고문헌에 전하는 ‘별곡’이란 말의 사용례를 들고 그것이 시가 형태의 특정한 명칭으로서 적당한가의 여부를 검토하기로 하겠다. <<제왕운기>> (이승휴 저, 고려 고종 11년 ~ 충렬왕 26년, 1224 A.D. ~ 1300 A.D.)하권 조에, 신라시대에도 ‘별곡’ 이나 ‘가사’ 가 있었는 듯이 보이나 이 경우에는 저자 이승휴가 생존하던 당시의 시가명을 잉용(仍用)하였다고 봄이 옳을까 한다. 이어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고속가의 명칭으로 <청산별곡><서경별곡>이 있고 마찬가지 고려조의 소제(所제)인 경기체가의 명칭으로는 <한림별곡><관동별곡><죽계별곡> 등이 있으니 이 용례로 보아 우리는 ‘별곡’이란 명칭이 고려 당시에 고속가나 경기체가에 통용되어 왔음을 본다. 다시 이조에 들어와서도 <상대별곡><화산별곡><화전별곡>과 같은 경기체가의 명칭으로 쓰이는 동시에 <환산별곡><강촌별곡><성산별곡><관서별곡><관동별곡>과 같이 가사의 명칭으로도 쓰였음을 본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서는 <추풍감별곡><채봉감별곡><상사별곡> 붙이의 이른바 이별정가류(離別情歌類)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어 왔음을 또한 볼 수 있다.
이렇게 쓰여온 ‘별곡’ 의 의의를 일찍이 조윤제 박사는 그의 저서 <<조선시가사강>> 제3장 <시가의 한역 시대> 제4절 <경기체가의 성립>(109면)에서 언급하되,
그런데 이 노래는 흔히 그 제목에 무엇무엇 별곡이라 하였다. 이것은 고려 예종조에 지나 아악이 도래한 이후, 아악 당악이 궁중음악의 표준이 되었으니까 혹은 그것을 정곡(情曲)(방점 필자)이라 보고 이를 그에 파생한 별곡(방점 필자)으로 보아 무엇무엇 별곡이라 한 것도 같다. 그러나 또 한편 이렇게도 생각이 될 듯하다. 즉 지나가 아닌 그 자체의 원곡(元曲)(방점 필자)에 대한 별종(別種) 곡조(曲調)(방점필자)라고도 볼 듯하니, 마치 <서경곡>이 본시 있었던 것을 후세에 다시 다른 곡조를 지어서 그의 별곡(방점 필자)인 <서경별곡>이 있다싶이. 그리하여 그 원곡(元曲)에 대한 별곡이 후에는 점점 본의를 잊어버리고, 원곡도 없이 무엇무엇 별곡이라 하지 않었는가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는 또다시 후일 생각해 볼 것이라 하고도 이 경기체가에는 흔히 그 제목이 무슨 별곡이라 있는 것은 사실이다.(철자법 원서주(原書做)-필자주(筆者做))
라고 지적한 바 있거니와 요는 이 ‘별곡’ 이란 마치 저 신라 사람들이 자기네의 노래를 향가라 일컬은 것과 마찬가지로 고려 사람들은 중국계의 악부니 악장이니 하는 정악 또는 아악에 대하여는 자기들의 노래 즉 속악 또는 향악의 노래 이름으로 별곡이란 말을 썼던 것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이런 전차로 고려 사람들은 <한림별곡>류의 이른바 경기체류의 명칭이나 <청산별곡>류의 이른바 고속가의 명칭에나 꼭 같이 ‘별곡’이란 명칭을 붙였고, 이 관습을 이어받은 이조 사람들도 <상대별곡>을 비롯한 경기체가와 <환산별곡>을 비롯한 가사 문학을 가릴 바 없이 이 별곡이란 명칭을 꼭 같이 잉용하였던 것을 우리는 뚜렷이 보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필 <한림별곡>류의 경기체가만을 ‘별곡체’라 부르자는 그 근거가 모호할 뿐 아니라 더욱이 <한림별곡>류와 <청산별곡>류가 형태적인 면에서 국문학의 여러 다른 시가 형태들과 구별하는 데에 공통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는 후술하겠음)을 아울러 생각할 때에 고려 시가의 형태적 명칭으로 ‘별곡’이란 장르를 설정함이 타당하리라 본다.
3. 별곡의 형태적 특성
별곡의 형태는 이미 선배들이 그 표현 문자에 의하여 경기체가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한림별곡>류와 고속가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청산별곡>류의 양대 가요군으로 구분하여 왔다. 이제 이 양대 가요군의 형태적 특수성을 살피고 아울러 그 호상(互相) 연관 관계를 밝혀 보고자 한다. (활자의 제약 관계로 일일이 예문을 들어 증고(證考)에 자(資)하지 못함은 유감이나 운율 관계 제용어와 아울러 졸고, <고시가 운율론 서설>, <<최현배 환갑기념논문집>>(사상계사 간)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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