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인간학 - 장미의 이름, 그리고 교회 - 마녀와 이단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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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철학적 인간학
차례
가. 서론
나. 본론
1. 장미의 이름, 그리고 교회
2. 장미의 이름에서 나타난 철학적 인간학 - 주인공들을 통해
3. 장미의 이름에서 나타난 철학적 인간학 - 마녀와 이단 재판
다. 결론
서론
한 학기 동안 철학적 인간학 강의를 배우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하기도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아직까진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미성숙한 현재의 수준에서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얻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수업 시간의 영화 수업을 통해 조금이나마 인간이란 것에 대한 고찰을 시작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인간이라는 군상이 압축적으로 잘 드러나는 곳은 책과 영화와 같은 인간이 만든 작품들이라는 것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과제 역시 이미 만들어진 작품의 도움을 빌어 써내려가고자 한다. 많은 작품들이 있으나 나는 움베르트 에코 원작,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장미의 이름’을 선택했다. 소설은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한 채로 영화를 본 터라 다소 이해의 깊이가 떨어지는 것을 느끼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름대로 느낀 인간에 관한 것들을 서술해 보겠다. 한 사상가나 주제에 치우치기보다는 스스로의 시각을 중심으로 써내려가겠다. 한 사상가나 특정 주제에 의존하는 것보다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 철학적 인간학 강좌에서 배워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본론
1. 장미의 이름, 그리고 교회
장미의 이름은 오래 전부터 소설로 꼭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이 너무 심오하다는 핑계로, 분량이 길다는 핑계로 제쳐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철학적 인간학 과제의 내용을 구상하던 중 이상하게도 장미의 이름이 계속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철학적 인간학 과제의 주 참고 내용으로 삼기로 했다. 그러나 책을 읽을 정도의 시간적 여유는 없다고 생각되어 대신 1986년에 제작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처음엔 20년이 넘은 영화가 그토록 높은 완성도를 갖출 수 있다는 사실에 경탄했다. 하지만 영화가 종말에 치달을수록 그러한 영화의 외적 측면보단 내적 의미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2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에 방대한 소설의 분량을 모두 담기엔 무리가 있는 듯도 했지만 이해에는 큰 무리가 없었고 정말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영화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들은 무엇인가? 물론 화려한 그래픽이나 음향 효과 등도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즐겨 보는 목적이 현대 과학의 발전 수준을 살피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그 영화를 보면서 우리 삶에 도움을 줄 좋은 의미를 얻는 것,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배경을 나를 돌아보는 거울로 삼는 것이야말로 영화를 보는 궁극적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를 충분히 줄 수 있는 영화가 소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미의 이름은 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영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영화의 배경은 교회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세 시대이다. 한 수도원에서 의문의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주인공인 윌리엄과 그의 시자 아드소가 추리를 통해 살인 사건의 원인을 찾아간다. 그 와중에도 성직자들은 계속 살해당하고 교황청과 프란치스코파 사이의 교황의 부 축적에 대한 논쟁까지 일어난다. 거기에 베르나르도 드 귀라는 종교 재판관까지 등장하여 윌리엄의 진실에 대한 추리는 위기에 봉착한다. 그러나 윌리엄의 냉철한 이성적 판단은 결국 범인을 찾는 데 성공한다. 범인은 수도원의 늙은 수도사인 호르헤였고 살인 사건은 그가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 2권에 독을 묻혀 그것을 보려는 신학자들을 죽게 만든 것이 원인인 것으로 판명된다. 윌리엄이 그 책을 넘겨받아 보려고 하자 호르헤는 책을 빼앗고 장서관에 불을 지르고 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을 감추고자 그는 독이 묻은 책을 찢어 삼켜 버린 다음 책과 함께 분신한다. 윌리엄과 아드소는 불길 속에서 간신히 탈출하여 어딘가로 떠나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어느 정도 내용과 주제를 아는 상황에서 보았기 때문에 다소 지루한 흐름에도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얻은 것은 기대 이상이었다.
기독교는 예수 이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유럽 전역에 전파된다. 인간평등과 신의 구원과 은총을 주된 교리로 하여 특히 핍박받고 가난한 하층민들에게 급속도로 퍼졌다. 그 기세에 놀란 로마 제국은 처음엔 교회를 탄압한다. 그래서 카타콤(지하묘지)에 숨어들어 미사를 지내는 등 큰 시련을 맞게 된다. 그러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대에 이르러 마침내 공인되고, 테오도시우스 황제 대에는 국교로 격상된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첫 번째 위기에 봉착한다.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은 바로 하층민들이었다. 대다수의 하층민들이 기독교를 신봉하고 지지했기 때문에 지배층 역시 기독교의 영향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국교로까지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교가 된 이후, 기독교는 귀족들의 부와 결탁하여 차츰 민중들과 멀어졌다. 그러자 그에 실망한 민중들이 점차 기독교와 멀어졌고 기반이 흔들리게 된 기독교는 총체적 위기에 봉착한다. 이 때 기독교의 위기를 해결하고 한 단계 올라설 수 있게 도와준 세력은 수도원의 수도사들, 그리고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로 대표되는 교부 철학자들이었다. 플라톤의 사상을 바탕으로 지어진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과 같은 대작은 교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며 슬기롭게 대처한 교회는 중세에 이르러서는 가히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러나 중세의 절대 권력도 잠시, 교회는 두 번째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된다. 십자군 전쟁 이후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 공언했던 교회에 크게 실망하고 불신을 갖게 된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 이후 동방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그리스에서 유입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들은 유럽 전역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고 교회에 어마어마한 위기를 가져왔다. 철저한 이성에 기반을 둔 그의 사상은 증명될 수 없는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을 가져왔고 이것은 교회의 기반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이 두 번째 위기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기독교의 본래 사상을 접목시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신학과 철학을 명백히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했는데 (밑의 표 1), 신으로부터의 은총의 빛과 인간 본성의 이성의 빛을 구분하여 양자가 각기 자기의 분야와 그 한계에서의 권한을 갖도록 한 것이다. 신적 영역은 이성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으로부터 일어난 신에 대한 의구심을 없애고자 하였다. 반면 오직 믿음으로만 신을 파악할 수 있다는 직관적 사고를 주장한 기존의 교회의 신을 대하는 사고와는 달리, 아퀴나스는 이성으로 신을 파악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최고의 행복은 이성이 신에 대한 지식을 얻을 때라고 보았고 그만큼 신과 종교를 이성의 능력으로 파악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새롭게 유입된 사상과 기독교의 교리를 조화시킨 아퀴나스의 사상은 정식 교리로 인정받고 교회의 두 번째 위기를 종식시키는 위대한 이론이 된다. 그러나 기존의 보수적인 반 개혁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이어져온 교리의 중심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 장미의 이름의 시대 배경 역시 이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적 학문이 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신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게 만든다고 생각한 수도원의 늙은 수도사 호르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이 들어 있는 시학
표 아퀴나스의 철학과 신학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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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미의 이름` 영화 감상평
  • 그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충분히 찬사를 받을 만하다. 거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나름대로 여운이 남는 마지막 장면. 철학적, 신학적 관점을 떠난 기본적인 선악 대결에서 보자면 결국 악이 패배하고 선이 승리하여 살아남는 지극히 착한 결말은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고 느끼게 했던 징그러운 시체들과 시종일관 암울한 중세의 분위기를 견뎌낸 보람을 느끼게 한다. 참고문헌브라이언P.르박, 『유럽의 마녀사냥』, 소나무, 2003.

  • [정보화사회]차이와 윤리 - 정보화 시대의 도덕·윤리 가능성
  • 그리고 그와 같은 시각은 곧 한 인간의 삶 역시 다른 인간들의 삶과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으로까지 확대된다.마지막으로 소설의 제목에도 나와있지만, 그것은 장미로 표방되는 흔적에 관한 사유디지털 데이터가 바로 그러하다. 탈퇴를 하였지만, 자신의 흔적은 계속 남아 보관, 기록, 관리되는 것이다. 이다. 가난하고 가련한 소녀가 수도원에 식량을 얻으러 왔다가 마녀로 몰려 화형 당하게 된다. 화자인 아드소도 말하듯이 아, 참으

  • A+ 영화감상문 - 영화 장미의 이름을 보고
  • 맡아 담당했다고 한다. 의상은 당시 모습을 재현하려고 상당한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영화 전체 분위기나 배우의 연기가 한 층 더 빛을 발하게 되었다.그리고 영화 전체가 담고 있는 색은 어둡고 무겁고 음울한 느낌을 주는데 당시의 종교재판을 통해 행해졌던 화형, 금욕, 웃을 수 없는 삶, 비밀 등 그 당시 삶의 색깔을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어둡게 만들어 감독 자신이 이 시대에 갖는 관점이나 그 시절의 모습이 결코 밝고 가볍지 않음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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