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 모던 타임즈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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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타임즈를 보고
미국 어떤 비행기 제조 공장에서는 노동자 채용조건이 IQ 100이하 사람들이였다. 그 이유는 노동자가 너무 똑똑하면 일을 할 때 잡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 이였다. 그에 비해 IQ가 낮은 사람들은 대체로 한 가지 일을 할 때 그 일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볼트 따위를 조이는 일에는 안성맞춤 이였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산업혁명 이후 분업은 보편화 되었다. 그리고 그 분업은 노동자들의 작업을 단순화시켰다. 나사 조이는 노동자는 나사만 조이고 용접하는 노동자들은 용접만 책임지게 되었다. 이러므로 써 노동은 더욱더 효율적이게 수행되고 더 많은 양의 제품들을 생산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봤을 때 인간이, 인간이 아닌 한기계의 부품처럼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우리는 인간 소외 현상이라고 한다. 100년전 최고의 희극 배우 찰스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를 보면 인간 소외 현상이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다.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영화 “모던 타임즈”의 첫 화면은 커다란 시계가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한곳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을 한 농장의 양때들과 같이 묘사하였다. 이 영화에서는 ‘시계’가 유독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시간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통제’는 인간 소외를 일으키는 한 요소로써 이 영화에선 노동자들의 시간적 통제와 공간적 통제를 통해 인간이 기계의 한 부품처럼 묘사되어진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주인공 채플린이 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에 정신적 장애가 오고 정신 빠진 그는 기계 안까지 들어갔다 나온다. 그 후 그는 나사모양이면 뭐든 조이려는 행동을 하고 다른 노동자들에게 기름을 뿌려댄다. 이 장면은 인간이 효율성을 위해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인간이 기계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채플린이 기름을 뿌려서 그들을 화나게 해도 그들은 기계가 작동하면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을 시작한다. 채플린과 그의 동료들은 당시 기계화라는 메카니즘의 존재조차도 인식 하지 못하고 같은 일만 무한 반복하는 모습은 다양성과 창조성을 가진 인간들이 그 본질에서부터의 소외를 보여준다. 정신장애를 가진 채플린이 한 행동들은 인간들을 기계의 한 부품 따위로 묘사를 한 것이다. 꼭 조여져야 하는 나사처럼 사람들의 코나 단추를 조였고, 부드러운 작동을 위해 사람들에게 윤활유를 뿌린 것이다. 이렇게 비인간화 되가는 사람들을 묘사해 인간 소외의 현상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장면은 영화 중반에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일자리를 간신히 구한 채플린은 한 기술자의 조수로써 일을 하는데 여기서 기술자가 채플린의 실수로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기계와 한 몸이 된다. 기계와 한 몸이 된 기술자는 손을 쓸 수 없어 채플린이 밥을 먹여주는데 채플린이 기술자에게 마치 기계에 주유를 하는듯한 모습으로 깔때기와 통닭을 사용해 기술자의 입에 커피를 붓는다. 이 모습역시 비인간화 된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낸 장면이다.
영화 초반, 정신장애를 갖게 된 채플린은 병원에서 치료 후 퇴원을 하자마자 당시 심각했던 대모현장에서 주동자로 오해를 받아 경찰서로 끌려가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탈옥자들을 모두 검거하여 감옥에서의 편안한 삶을 즐기게 된다. 하지만 편안한 삶도 잠시, 그의 바른 행실덕분에 그는 출소일보다 더 빨리 석방이 되는데 그는 나가고 싶지 않아했다. 그리고 석방이 된 채플린은 한동안 감옥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 장면은 인간이 기계처럼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일만 하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통제된 사회보다 감옥에서의 생활이 더 인간다운 삶이라는 사실을 풍자한 장면이다.
영화 속의 채플린은 한 소녀를 만나고 나서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그녀와 제대로 된 집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목표로 감옥이 아닌 사회에서의 행복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평범한 삶 자체가 어려웠던 그때 시대이기에 많은 역경이 있었고 제대로 된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일은 꼬여만 갔다. 이 장면에서는 가난한 자들은 같은 인간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역할조차 하기 힘든 모습을 웃음을 통해 보여준다. 그렇게 그는 그 뒤에도 수차례 경찰서를 들락날락하여만 했고 여기서 경찰서는 엉킨 그의 인생을 새롭게 리셋 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로써 보여줬다.
그는 결국 그 소녀와 함께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그는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하지만 가사를 몰랐던 채플린은 결국 여러 나라의 언어가 섞인 엉터리 언어로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그 언어를 알아들을 턱이 없는 관객들이지만 그의 퍼포먼스의 열광을 하고 갈채를 보낸다. 이 장면에서는 무성영화든 유성영화든, 그게 영어든지 다른 타국어든지 그 겉 표면에 의미를 두지 않고 큰 환호를 주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빨리 발전해가는 현대 사회가 겉으론 최고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속은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풍자한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그 식당에서 또 다른 경찰로부터 도망쳐 나온 그 둘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우울해하는 소녀의 얼굴에 채플린이 미소를 안겨주고 소외된 도시 사람들 안에서 꿋꿋이 희망을 놓지 않고 마치 앞으로 기나긴 삶을 살아갈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먼 길을 걸어간다.
기계화된 이 사회는 인간 소외현상을 형성시키고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소외된 삶속에서 살게 한다. 다른 잡생각 없이 한일에 몰두 할 수 있어 고용인들에게 환대를 받는 IQ가 낮은 사람들, 그들이야 말로 인간이 인간으로써의 삶보다 기계화되기 쉬운 사람들이기에 더 환대 받은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마치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어 그저 한 부품의 존재로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부품의 역할을 다하거나 더 좋은 부품이 나오면 대체되는 이 사회. 이러한 치열하고 잔인한 소외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개개인 모두가 인간으로써의 본질을 잃지 않고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처럼 웃고 희망찬 하루를 위해 걸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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