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사 1940 90년대 까지 1940년대 대중가요사 1950년대 대중가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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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 대중가요사
-1940~90년대 까지
들어가기
대중가요는 근대 이후 대중매체에 의해 전달되면서 나름의 작품적 관행을 지닌 서민들의 노래를 말한다. 이 몇 가지 점은 다 중요하다. 첫째, 대중가요는 근대사회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전 근대 시대의 공동체를 바탕으로 하는 서민들의 노래인 민요와 달리 도시의 대중으로부터 수용층을 넓혀나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식민지 시대가 시작된 이후에 출현함으로써 서구의 자생적인 대중가요와는 다른 여러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둘째, 음반매체나 방송매체 등 대중매체를 주 전달매체로 삼고 있으므로, 구비전승되는 예술의 적층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창작자와 작품의 오리지낼리티가 비교적 분명하다. 또한 대량복제, 대량생산됨으로써 음반산업의 이윤추구의 논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당연히 매우 전문적인 예술이다. 물놀 구비전승되는 구전가요나 음반화를 전제로 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민중가요와도 구별된다. 셋째, 일제시대 이래 새로 만들어진 대중가요 나름의 작품 관행을 지니고 있다. 음반에 실린 노래는 판소리, 잡가, 민요, 시조, 가곡등 한국 전통음악 분야의 성악과, 오페라 아리아, 가곡, 칸타타 등 서양 고급음악 분야의 노래들, 그리고 대중가요로 나누어 볼 수 있다.넷째, 대중가요는 서민문화에 속한다. 대중가요는 특정한 상층 귀족이나 엘리트의 예술이 아니다. 대중가요의 수용자도 반드시 단일한 계층이 아니어서 조밀하게 살펴보면 그 안에서도 계층적인 취향 차이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크게 보아 당대의 대다수의 서민들이 향유하는 서민문화에 속한다고 할 수있다. 이러한 대중가요는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문화인 동시에 서민문화라는 묘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서민대중들의 경험과 관심사, 인식과 정서, 욕망 등을 드러내는 서민예술인 동시에, 그 사회의 지배적인 정치경제적 체제와 틑튼하게 결합하고 있는(산업자본과 결합하고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권력과 결합하기도 함) 예술이다.
1.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의 가요사
1) 제재의 변화와 트로트의 재생산
(1) 트로트의 유지와 신민요의 쇠퇴
해방은 되었지만 일제시대 대중가요 양식의 기본체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트로트와 신 민요의 양대 양식을 바탕으로 하고 여기에 이국적인 색깔이 덧붙여진 작품들이 자리하는 일제시대 대중가요의 판도는 여전히 1940년대 후반은 물론 1950년대까지도 한국 대중가요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트로트와 신민요란 두 양식 간의 판도 변화는 보인다. 트로트는 새로운 제재를 받아들이면서 변화한 시대에 적응한 것에 비해, 신민요는 양적으로 축소됐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일제시대와 별 다를 바 없는 작품 세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새로운 시대에의 적응에 어느 정도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2) 전쟁. 분단의 슬픔과 트로트의 재생산
해방 직후의 새로운 경향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작품의 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방의 기쁨을 노래하는 것은 잠깐 동안, 고작 몇 곡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그린 노래는 해방의 기쁨을 노래한 작품과 비교할 바 없이 압도적이다. 분단으로 인한 실향과 이별은 당시 대중들에게 보편적이면서도 절절한 경험이었고 이러한 대중가요는 매우 절절했으며 실제 그러한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력했던 많은 대중들에게 큰 호소력을 가졌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의 진정성과 체험적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래들은 남한 사회의 반공이데올로기를 저해하지 않는다는 일정한 검열 속에서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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