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 경복궁의 창건과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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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1.04 /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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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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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복궁
2> 창건배경
3> 경복궁의 창건과 발전
4> 일제에 의한 훼손과 수난
5> 복원을 위한 노력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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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종로의 경복궁(景福宮)은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창건된 조선왕조의 정궁이다. 일제시대의 수난을 거치면서 많이 축소되었지만, 아직도 규모나 궐내의 건물들을 보면 자랑스러운 유산임에 틀림없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후 즉위 3년에 한양에 도읍을 결정하고 그 이듬해 경복궁을 지었다. 경복궁이라는 이름은 경복궁 창건에 깊이 간여한 정도전이 지은 이름으로, ‘시경’ 대아편에 나오는 ‘군자 만년개이경복’(君子 萬年介爾景福, 우리 임금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소서)라는 말에서 따왔다.
그러나 초기에는 정궁으로는 불완전한 상태였고 그 후 궁내의 건물들이 늘어가다가 세종대왕 대에 이르러 명실상부한 정궁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다가 명종 8년(1553년) 경복궁에 큰 화재가 일어나 근정전만 빼고 편전과 침전 구역의 건물들이 모두 타버렸다. 그러나 중건을 서둘러 이듬해 중건을 마쳤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복궁은 최대의 고난을 겪게 된다. 궁 전체가 모두 불타 없어져버린 것이다. 이 임란 시의 화재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군들이 저지른 만행이라는 설과 선조가 도망가면서 백성들이 피난을 가지 못하도록 사대문을 닫아 버려 분노한 백성들이 불태워 버렸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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