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의자 X의 헌신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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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용의자 X의 헌신> 감상문
어렸을 때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처럼 일본 여류 작가의 몇 작품들을 즐겨 읽었었다. 한창 추리 소설에 빠졌을 때도 있었는데 그 때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를 알게 됐고 이 <용의자 X의 헌신> 영화 원작 소설과 <탐정클럽>, <악의> 등의 소설을 읽었다. 스무 살 즈음에 이미 읽고 내용을 알고 있던 터라 영화를 보면서 내내 그게 아쉬웠다. 읽은 지 오래 되어 야스코의 알리바이나 형사와 물리학자, 이시가미의 대결 구도와 같은 것들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결정적인 반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흥미진진해 하지 못 했던 것이 유감이었다. 내용을 알고 있어서 좋았던 것은 그랬기 때문에 스토리 이외의 것들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관에서 아무 정보 없이 봤다면 짧게 지나가는 인물들의 대사와 맨 도입부에서 보여주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흘리듯 봤을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소설과 한국판 <용의자X>도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한국 영화와 어떤 것이 다를지 예상해보건대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는지가 다를 것 같다. 일단 <용의자X>에는 형사만 등장을 한다. 자료 검색을 해 보니, 소설에서처럼 물리학자와 형사의 두런두런 대화도 없고 일본 작품에서 친구를 생각하는 교수의 혼란스러운 감정도 없는 듯 했다. 범인을 잡으려는 의지가 강한 형사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게 한국과 일본 영화의 다른 점이다. 일본에서는 대개 이런 추리와 스릴러 장르에선 치밀한 머리싸움의 대결 구도가 나타난다. 두뇌 천재 L과 라이토의 대결 구도가 돋보였던 <데쓰 노트>가 그 예다. 관객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을 보고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며 영화 흐름대로 따라서 추리를 한다. 그런데 보통 한국 영화는 두 사람의 대결 구도를 ‘두뇌 싸움’으로 포커스를 맞추지는 않는다. 대부분 뛰어난 직감을 지닌 형사가 범인의 흔적을 따라가 추적하는 형식으로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일이 어떻게 벌어질 것인가를 기대하면서 관람할 것이다. 물론 아예 두뇌 싸움이나 치밀한 계산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흐름을 보면 대개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사본부의 모습이었다. 한국 영화에서 어떤 사건을 담당하여 조사하는 경찰들의 모습은 대개 허름한 옷차림에, 배달된 지 오래된 것 같은 설렁탕 그릇, 그리고 씻지 않고 지저분하게 머리를 긁는 중년의 아저씨 같은 모습이다. 강력계 형사여서 범인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하고 밤샘 근무 때문에 체력도 좋아야 하건만 하나같이 배불뚝이 모습들. 그런데 일본 영화에선 그게 아니었다. 그 모습이 물론 일본 문화 때문이겠지만 내 눈엔 약간 과장된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제복을 갖춰 입은 아주 많은 인원의 경찰들이 사건에 투입된다. 사실 이 영화 속에서 일어난 사건은 어떤 동네에 어떤 작은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이다. 피해자가 유명인사라거나 정부와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어떤’인물인 것인데, 영화에서 경찰들이 수사팀과 감식반 등 체계를 보이며 사건을 조사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은 놀랐다.
작품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어서 은근히 기대를 하며 기다렸던 장면은 이시가미가 오열하는 장면이다. 야스코를 위해서 큰 희생을 했지만 야스코는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수를 하고 만다. 야스코의 자수로 자신의 행동이 아무 의미 없는 헛수고가 되었다는 사실에 이시가미는 그야말로 절규를 하고 만다. 소설을 처음 읽고 이 내용을 알았을 땐 사람이 어떻게 얼마만큼의 깊이로 사랑해야 이런 희생과 헌신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흘러 이 영화를 보고는 약간의 다른 생각이 났다. 이시가미는 야스코를 사랑했던 만큼 증오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부탁을 했는데, 이대로 덮으면 나도 그도 행복할 수 있는데 왜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해서 상황을 크게 만들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고 자신의 수고스러움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그 여자가 한없이 미워지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해버리는 그녀를 보며 이시가미는 ‘도대체’라는 말을 반복하며 크게 오열한다. 야스코는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다. 나는 그 장면에서 야스코가 어찌나 밉던지, 이시가미가 우는 이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나 사과를 하는 걸까 싶었다. 그녀는 대단한 존재도 아닌 자신을 위해 희생을 한 이시가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거였겠지만, 사실 정말 사과해야 할 마음은 그게 아니다. “그렇게 해준 건 고마운데 내가 죄책감이 들어 못 견디겠어요.” 라는 마음으로써의 사과를 해야 정상인 거다. 희생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자수에 대한 사과를 했어야 하는 거다.
내가 이시가미였더라도 그렇지 못 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야스코였다면 나는 자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커다란 희생에 일절 보상을 못 받아도 괜찮지만 내 희생이 헛수고가 되는 것은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자식들을 다 키워놓고도 하릴 없이 놀기만 하는 백수가 되는 건 괜찮은데 잘 나가는 유명인사가 되어 부모를 모른 척 방관하면 그게 정말 못 할 짓인 거다. 이시가미의 사랑이 잘못되었던 건 아니지만 너무 말없이 어수룩한 사랑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없이 주기만 하다 너무 크게 데어버렸다. 불에 태워 까맣게 지워진 지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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