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X의 헌신으로 바라본 일본 영화 vs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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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9 / 20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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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용의자X의 헌신으로 바라본 일본 영화 vs 한국영화
1.작품설명과 감상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용의자 X는 살인사건의 발생과 해결까지의 추이를 경찰의 시선으로 서술해가는 과정 속에서 살인의 알리바이를 완벽한 문제로 만들려는 수학자와 문제를 풀어가는 물리학자의 추리싸움이 부각되며 흥미를 유발한다. 살인사건 이면에 감춰진 용의자모녀-수학자의 은밀한 심리적 유대는 ‘살인’이란 범죄와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상반된 소재를 융합한다. 그래서 제목 역시 용의자 X의 “헌신”이다. 극에서 두드러지는 용의자는 피해자의 전처모녀, 아니 전처이다. 하지만 미지수 X는 사건 이면에 또 다른 용의자가 존재함을 암시한다. 진정한 주인공은 수학자로 극중의 프로타고니스역할을 하며 전체 줄거리를 끌고 나간다. 극의 후반부에 용의자 X인 수학자가 모녀의 완전범죄에 동참하게 된 계기에 대해 보여준다. 피해자의 전처를 남몰래 깊이 사랑하고, 모녀의 가정에서 느껴지는 안락함과 따뜻함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치유 받으면서 모녀를 지키려는 동기가 부여된 것이다. 처음에 내가 느낀 것처럼 그러한 이유가 범죄의 계기가 되리라고 주장하기에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제대로 된 사회적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은 극 중간 중간에 여러 형태로 보여주면서 소소한 따뜻함을 느낌으로써 혼자만의 견고한 성이 무너짐을 알 수 있다. 그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을 제대로 걸지 못하며 본인과 비슷한 노숙자 무리를 지나쳐 출근한다. 아마도 수학자는 개인 개인의 섬으로 존재하는 노숙자 사회에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작가는 내향적인 수학 광(狂)용의자와 상반되는 물리학자를 등장시키면서 알리바이를 하나씩 풀어나간다. 물리학자는 잘생기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리더로 인물들의 극적인 대비를 보여준다. 물리학자는 프로타고니스의 반동인물이지만 그것은 추격이나 정의라는 이름의 심판이기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흥미로 견고한 큐브를 풀어내는 것과 더 가깝다. 오히려 안타고니스트는 프로타고니스를 관찰하고 그를 통해 사랑과 범죄의 간극 사이에서 고민하는 문제적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2.일본영화의 특징
일본판 영화 용의자X의 헌신은 인물의 내면에 대해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내면 심리상태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표정이나 말투, 행동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인다. 일본 드라마가 과장된 몸짓으로 사건을 전달하는 것과 달리 일본의 영화는 섬세의 극치를 달린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본영화의 장르는 공포영화나 애니메이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장르의 영화들이 많다. 공포영화는 영화 속 인물들이 느끼는 공포 심리를 포착하기위해 장면과 공포 코드를 섬세하게 잡아내야 하고 애니메이션 역시 인물이 아닌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 천, 수 만 장의 그림으로 한 장면을 표현해내는 정성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냉정과 열정사이” 등이 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기로 일본의 대중가요, 패션, 영화 전반에는 성, 희극적 요소, 개성 등이 과장되어 나타난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는 굉장히 사람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정교함도 지니고 있다. 이는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차분한 성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접한 일본 문학만 해도 여성스럽고 차분한 어조로 내면을 전달하는 식의 분위기가 강한 것들이 많았고 좋아하는 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책들은 남성적이지만 그럼에도 일본 특유의 미사어구, 그리고 자세한 묘사를 통해 극의 몰입도를 높여준다고 느꼈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영상콘텐츠들이 아무래도 소설, 만화를 원작으로 재구성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지면의 섬세한 감성을 디지털로 변환시키는 것에도 꽤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일 것이다.
3.일본영화/한국영화 비교
일본에서 개봉한 용의자X의 헌신과 한국에서 개봉한 용의자X는 전체적 맥락에서 같은 줄거리를 가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일단 내가 두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일본영화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반면 한국영화는 매우 화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판 용의자X의 헌신은 영상부터 무난하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시간대의 장면이 많지만 어느 한 쪽으로 색채감이 쏠리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또한 인물들의 모든 행동과 대사들이 오로지 사건과 영화의 결말을 위해 쓰이고 있다. 장면과 작은 독백도 영화의 반전을 향해있다. 반면 한국영화는 영화적인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다보니 일본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상이 어두운 톤으로 가라앉아있다거나, 욕설, 폭력과 같이 자극적인 요소들이 약간씩 가미되었다. 또 살인의 주요 피의자는 딸보다 엄마에게 더 비중이 쏠리고 딸은 미약한 조력자로 그려지는데 이는 아마 우리나라 정서를 고려하고, 청소년 관람가를 만들기 위한 포석일 듯 싶다. 일본판 이시가미는 그의 친구인 물리학자의 시선에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이시가미의 책상과 책장에 넘쳐나는 수학책, 대인관계 등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소심한 사람의 모습이다. 경찰 대신 물리학자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 역시 사건을 한 발 뒤에서 바라보는 느낌이 강하다. 때문에 이시가미와 물리학자는 아무도 없는 산에서 자신의 진심을 내비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자는 영화 말미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여자에게 이시가미의 방식을 알려주게 된다. 오히려 한국판에서는 다른 캐릭터 없이 경찰이 석고의 친구로 등장하면서 그의 알리바이를 형사적 관점으로 풀어나간다. 또 중간 중간에 영화는 사건의 실마리는 직접적으로 제시해준다. 사건 본질과는 관계없는 일회성 대사들도 간간히 소모한다. 예를 들어 이요원의 고양이 포스트잇, 옆집 목소리가 생생히 들린다는 등의 의심점을 관객에게 먼저 오픈한다. 석고의 내면은 홀로 수영장에서 사색에 잠기는 모습에서 그가 가진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일본영화가 원작에 충실한 소설의 느낌이라면 한국판은 전체적으로 영상을 위한 시나리오는 색이 짙다. 사건의 마지막 장면에서 표정 없고 조용했던 이시가미가 모든 감정을 내비추고 우는 장면은 감정의 폭발이라 할 만큼 인상적이었는데 한국 영화는 대부분 한국 영화가 그렇듯 미리 깔아둔 복선에서 새어버린 감정선이 아쉬웠다. 같은 내용을 두 가지 버전으로 보았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매우 신선하고 영화보다 영화 속 ‘소설’에 집중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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