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고지훈의 건국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엘리트와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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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 엘리트와 민중
이 글은 일반적인 역사적 사료에 근거한 서술이 아니라, 개인들의 구술기록에 주된 관심을 두는 구술사를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구술사는 주류사인 지배사의 한계를 극복하고 피지배자들의 세계를 구두증언의 도움으로 망각으로부터 구해내는데 효과적인 관점으로, 중고등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기에 글을 읽으면서 무척 흥미로웠다. 역사적인 사료들을 통해서만 역사적 진실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기에 구술사가 주된 관심을 두는 개인들의 구술기록의 그 딱딱하지 않은 일상적인 서술과, 말투 등에서 나오는 뉘앙스만으로 그 상황에 대한 화자의 느낌과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개인의 구술이 역사적 서술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역사적 주장의 근거는 모름지기 남들을 설득시킬만한, 남들을 인정시킬 수 있는 객관성과 타당성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 개인의 구술만을 듣고 그것을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면 과연 그 주장이 다른 학자들에게 납득될 것인가 의아함이 들었다. 그런데 또 바꿔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료들도 어떤 개인 혹은 특정 집단에 의해서 쓰인 것으로 객관적 사실만을 기록했을 수도 있지만,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을 마치 객관적인 사실인양 서술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역사적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은 그것이 그 주장과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나 시각에 얼마나 적절한지가 결정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정설이라고 생각되었던 역사적 서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 것이고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측면이 부각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구술사는 피지배자이자 종종 역사의 피해자가 되는 민중의 소리를 반영한 이제까지의 지배사와 다른 신선한 관점이라고 생각된다.
이렇듯 민중의 소리에 귀 기울인 구술사적 서술로 건국과정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다루고 있는 이 글은 민중의 얘기를 다룬다는 구술사적 성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쪽으로 편향된 시각을 보인다. 건국과정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은 간단히 말하자면 현재 공휴일로 지정되어있는 8월 15일에 건국 년인 1948년 8월 15일을 기념하자는 관점과 해방 년 1945년 8월 15일을 기념하자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요즘 현대사의 재해석 혹은 건국 60년의 재조명이라고 일컬어지는 뉴 라이트 운동이다. 그들은 해방 후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국토가 분할점령 되고 우리나라가 국내외 세력들의 방해와 반대 때문에 시련을 겪는 상황을 태생적 한계라고 표현하며 건국의 과정들은 무시한 채 건국이라는 행위 자체만을 독립국가 건설을 열망해온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이룩해낸 쾌거라고 말한다. 그들은 분열과 혼란이 있었음에도 사회가 폭력적으로 분열하거나, 국민의 기본권을 포함하여 민주주의 정치제도 자체가 유보되거나 후퇴되는 일이 없었다고 말하며 이승만 전 대통령의 국가 만들기가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민주공화국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만든 텍스트 속에서만 살아 숨 쉬는, 510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통보조차 되지도 못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지금의 우리 사회의 그것과 같고 자신들이 그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하며 그것을 기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건국 과정에서 생겼던 비민주적 행위들을 그저 이견집단의 존재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민주적 대표성을 띄었다고 주장하고, 510선거 때의 투표성향만으로 (한민당 : 이승만계열 : 진보 - 1:1:0.8) 제헌국회 내에서 이루어진 일들이 민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건국의 과정을 엘리트 중심의 협소한 민주주의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구술사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위의 엘리트 계층의 관점과는 확연히 다른 민중의 시각으로 건국의 과정을 바라 볼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구술사의 관점에서는 1950년대의 국가는 시장경제체제와 자유로운 사회의 적이다. 그 시기에 민중들의 생활에 가장 큰 잣대가 되어야 할 헌법은 정작 그 역할을 하지 못했고,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는 데 활용되었던 국가보안법, 한국전쟁 중 벌어진 대규모 학살의 법적 근거로 이용되었던 비상조치령, 폐기되었다가 여순 사건 때 부활한 일제하 계엄령과 같은 법규들이 오히려 민중들의 생활을 좌우했다. 1950년대 당시, 워싱턴과 주한미대사관 모두 대한민국을 지칭하는 용어로 경찰 국가(police state)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만큼 경찰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대중들을 탄압하였고 해방공간과 정부 수립, 전쟁을 지나면서 국민들이 바라보는 경찰은 산골대통령, 개, 심지어 경철지서장은 염라대왕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또한 그들의 비호 아래 청년단도 아무런 법적인 근거 없이 마치 그들도 경찰인양 행동했다. 청년단들이 "마음 놓고 때려 부수고 다녔다"라는 진술이 나올 정도로 청년단의 좌익 탄압과 비합리적인 행동들은 도를 넘어 섰다. 위의 엘리트들이 아무런 이슈 없이 그렇게 자신들의 대한민국을 설계하고 있을 때, 아래에서는 ‘빨갱이’로 몰린 좌익들과 청년단체경찰 사이의 살육전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국가 엘리트와 우파세력이 그들의 ‘나라 만들기’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 구조를 외면하고, 경찰청년단체들에게 헌법을 무시한 채 폭력으로 그것들을 해결하도록 만든 것에만 있지 않다. 전쟁 발발 직후의 위와 같은 대량학살은 남한의 책임이겠지만, ‘남조선 해방’을 명분으로 내세웠음에도 전쟁 중에 남한사회의 밑바탕의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고 토착세력의 분노에 의존하여 대량보복학살을 방조한 북한의 책임 또한 존재한다. 근대국가는 갈등의 조정자로서 시민사회가 폭력에 의해 무질서로 빠지는 것을 막아야 하기에 무력을 독점해야 한다. 하지만 주한미군정에서부터 건국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국가는 경찰과 사설 무력단체인 청년단에게 무제한의 폭력을 허용했고 그 결과, 국가가 쥐어준 망치를 든 혈기왕성한 청년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못으로 보고 무자비하게 모든 것을 정리한 것이다. 국가는 이러한 무자비한 행동들의 원인을 인간 본성의 잔인함에서 찾고 면죄부를 구할 것이나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국가의 민중을 향한 방관이고 무책임이다.
이러한 두 세력의 크나 큰 시각의 차이로, 전쟁 전 대한민국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현대사의 논쟁적 주제이다. 뉴 라이트 세력은 대중들이 동의의 물적 토대(농지개혁)와 보통 선거권을 전전에 갖게 되었기 때문에 국가는 국민들에게 별다른 대가 없이 전시에 ‘희생과 봉사’를 요구할 자격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전에도 존재했던 경찰과 사설 단체의 폭력, 국민들에게 제대로 통보도 되지 않고 감시세력의 존재 하에 이루어진 선거가 과연 국민에게 대한민국을 신뢰하게 했을 지는 의문이다. 확실한 것은 전시에 국가의 부름에 답한 국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국가의 배신과 굶주림뿐이었다는 것이다. 풀리지 않은 숙제인 국민방위군 사건의 구술자들에 따르면 그 당시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행군 중 낙오나 적의 공습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의 제대로 된 사후조치의 결여로 영양실조, 전염병, 추위로 죽어나갔다. 이러한 국가의 대규모 국민 ‘유기’는 그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다. 전쟁 발발 직후 정부는 라디오 방송으로는 국민들을 안심시키려 거짓을 말하고, 자신들은 황급히 후퇴하면서 적군에게 국민을 대량으로 유기했다. 국가를 믿었던 국민들은 국가가 자신들을 버렸기에 살기 위해 조국을 배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전쟁의 불똥을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전쟁의 고통을 그대로 감수한 사람들과 피해간 사람들을 가르는 요인은 유감스럽게도 계급, 계층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국가의 라디오 방송만 들을 수 있던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과 달리 고성능 라디오를 통해 미대사관의 라디오채널과 일본방송을 들을 수 있던 부유한 그들은 이미 섬으로 피난을 가거나 국외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이들 중 일부는 전쟁 중에서도 자신들의 자녀를 유학 보내기도 했다. 이렇듯 학살과 배신, 해외도피와 밀항이 빈번했던 전쟁을 거치면서 국민들의 국가를 향한 불신은 높아졌다. 정치 공동체라는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있는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헌법과 건국이념이 보장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버린 채 갈등을 조정하지 않고 폭력이 갈등을 해결하도록 방관했고, 법과 제도의 위반자인 국가는 더 이상 민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건국기 대한민국은 시장기구라는 비인격적인 힘이 아닌 인격적인 힘, 즉 국가 스스로가 불평등을 조장하고 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건국기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라는 숭고한 이념을 담은 헌법전을 안고 출범했지만, 첫걸음마와 동시에 스스로를 파괴했다.’고 말하며 ‘대한민국은 몇몇 국가 엘리트들의 뇌수의 산물도 아니고, 그들이 게임을 벌이는 놀이터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또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국가폭력을 견뎌내고, 강자들의 인격적 힘이 지배하는 시장의 폭력에 맞서면서, 자신들의 피땀을 지불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국민 개개인’ 그들의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소수 엘리트들이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른 여타의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들을 존중하고 보호해야하는 것이다. 건국기의 대한민국은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가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 때 언급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현재까지 세계의 주된 흐름이라는 점에서 건국기의 집권세력들이 선구자이고 우리나라의 정책의 토대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말 뿐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그리고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갈등을 폭력으로 일관, 방관하는 태도는 오히려 정치적 퇴보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폭력적으로 분열하거나, 국민의 기본권을 포함하여 민주주의 정치제도 자체가 유보되거나 후퇴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우파세력들이 아닌 바로, 그러한 모든 것을 감수하고 이겨낸 국민 개개인의 힘이다. 우리가 교과과정으로 배우고 기억하는 역사는 전체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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