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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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둑이다
1.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번 학기 학사 졸업 논문 발표를 위해 공부했던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철학의 태도를 잠시 가져와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라는 저서에 밝히는 것처럼 존재 망각의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어떠한 세계 내부적인 존재자에 대해서 현존재가 존재론적 물음을 해명하는 차원에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해명해 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러한 과제는 아주 어려운 것입니다. 서두에서 이번에 제가 수행할 과제는 하이데거가 지적했던 존재론적 태도로 나아가지 못하고 존재적 차원에서 머물러 있으면서 존재가 아닌 존재자를 탐구했다는 범주에서 수행될 수밖에 없는 점을 미리 밝혀놓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저의 철학함의 능력의 한계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과제는 철저히 아름다움에 대한 존재적 태도로서 논의되고 수행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철학은 인간에게 유용한 사고를 제시하여야 한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입장을 견지할 경우에 저의 기본적인 생각을 감추고서 5장이나 되는 과제를 수행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저의 의식 속에 있는 생각들과 경험들을 여과하지 않은 채로 솔직하게 회의주의적 시각에서 이 과제를 수행할 것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존재적 차원에서 논의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즉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유용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미학 강의 마지막 시간에 김창준 교수님께서 파워포인트로 띄워 주셨던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노트한 것을 참조한다면, 아름다움이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이란 삶의 기록이자 거울이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이란 진실 되고 자유로운 삶을 위한 창의적인 투쟁이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이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불교의 고와 같은 세상 속에서도 삶의 이유를 찾으려는 노력입니다.
2.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대답할 수 없다. 회의주의적인 자아의 형성.
우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그 이유는 제가 바라보는 세계는 결코 1장에서 제시한 아름다움의 정의에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에는 오히려 아름다운 것보다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 더욱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본적인 저의 생각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의하기 이전에 아름다움을 보는 존재에 대한 논의가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계를 이해하는 현존재는 세계 내부적인 존재자 중의 하나입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세계는 현존재의 존재이해로부터 열어밝혀져 있고, 세계 내부적 존재자들 또한 세계 내부에서 엵어밝혀져 있음으로 인해서 현존재와 세계는 단절되지 않고 상호 이해의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이해가 실존이고 실존이 곧 인간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개별 인간의 특성에 대해서는 비교 논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인간의 세계 이해에는 개별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간과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이데거는 대상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대상이 하나라고 하더라도 그 대상을 보는 존재가 누구인가에 따라 그 대상은 즉 세계 내부적인 존재자는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현존재의 존재이해 즉 인간인 세계-내-존재의 기초지어진 입장이 무엇인지에 따라 세계 내부적인 존재자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세계, 세계 내부적인 존재자 중의 하나인 아름다움을 해명하는 박광해의 현존재는 어떠한 사정에 놓여져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박광해의 현존재가 세계를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사회 속에 놓여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양철학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박광해라는 저라는 사람, 그리고 제가 속한 가정, 제가 놓여 있는 사회, 제가 놓여 있는 국가와 세계의 범주에서 생각해 볼 때, 저의 주위 세계적 환경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라는 사람은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아가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집안 환경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지극히 유약하고 약육강식의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어머니와, 할아버지를 이른 나이에 군대에서 구타로 인해 먼저 내보내고 그 이후 과부로 한평생 살아 온 할머니와, 그 할머니 아래에서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할머니의 편에서 어머니를 함께 구박해야 했던 아버지 밑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 어머니는 유치원 시절 방학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유치원 방학이 시작되고 저는 누군지 모르는 아주머니에 의해 납치되어 부산진구 개금동에 있는 주공아파트에서 한 달간 생활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때 저를 납치한 분은 저의 어머니였습니다. 유치원 방학이 끝나고 저는 다시 아버지와 할머니 곁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저는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해야 할 때의 느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른 나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보고 싶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이라는 사회적 관계가 저의 어린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결국 저의 어머니에 대한 매달림에 못이긴 아버지는 어머니와 다시 재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저보다 7살이 어린 제 여동생이 태어났습니다.
저의 초등학교 시절 가정의 분위기는 암울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다투는 일이 많았고, 특히나 어머니가 아버지와 부부싸움 끝에 어머니가 아버지로 부터 맞아 학교에 와서 저의 담임선생님께 그 일에 대해서 하소연 하는 날이면 저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학급 친구들이 놀리는 날이 있기라도 하면 저를 놀린 친구와 이길 때 까지 싸움을 하였습니다. 저는 점점 현실적이고 조숙한 아이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회의주의적 시각이 저의 마음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가 중학교1학년이 되자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시 별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할머니 아버지와 양산에서 생활하였고, 제 여동생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자 조금 철이 들었는지 초등학교 때 늘 학교에만 가면 친구들과 다투던 일을 그만두고 저는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중학교 입학 후 중간고사에서 저는 전교 6등이라는 준수한 점수를 받았습니다. 저 자신의 역량에도 스스로 놀랐지만 여러 과목 선생님들께서 저를 문제 학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반의 자존심을 높여 줄 수 있는 존재로 대우에 주는 것에 대해서 우쭐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제는 저의 자서전이 아니므로 저의 자아의 형성단계를 조금 생략하면 무튼 대부분 이러한 수준에서 저의 삶은 시작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정적인 문제는 결국 제가 24살이 되던 해 큰 사건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해병대 제대 후 복학하고 2010년 10월 2학년 2학기 어느 강의가 끝나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으며 평소 연락이 없던 여동생으로부터 한통을 전화를 받게 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울먹이는 여동생의 목소리를 들으며 무슨 소리냐 반문하며 금정구 서동에 있는 외할머니와 어머니 여동생이 거주하던 주소지를 찾아가게 됩니다. 어머니는 문고리에 압박 붕대로 목을 걸고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습니다. 눈물이 많이 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숨이 없는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내가 보고 싶었다면 문자라도 남겼으면 되지 왜 마음 아프게 이런 선택을 했냐고 원망했습니다. 사실 그 일이 있기 2주전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걸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제가 해병대 전역 후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보았을 때 어머니는 전형적인 극심한 우울증 환자였습니다. 외할머니 댁에 찾아 갔을 때 외할머니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는 저를 알아보지 못하였고 외할머니가 저에게 너희 아버지는 어머니와 다시 살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저는 매몰차게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외할머니께 당부를 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어머니는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 저는 그 상황이 너무 곤욕스러워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는 그 이후로 어머니의 집을 찾지도 전화로 연락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싸늘한 시체가 된 어머니의 식고 경직된 손을 붙잡고 있으니 어머니를 외면했던 순간들에 대한 죄책감과 어머니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나머지 20대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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