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황순원 약력 황순원 신천지 줄거리 황순원 신천지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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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황순원
Ⅰ.서론
<약력>
황순원은 1915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고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31년 『동광』에 시 <나의 꿈>, <아들아 무서워 말라>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934년 『삼사문학』동인으로 참가하면서 소설 작품도 함께 창작하기 시작했으며, 1940년 단편집 『늪』을 간행한 이후, 소설 창작에 주력했다. 아시아 자유문학상, 예술원상, 3.1 문학상, 인촌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경희대학교 국문과에 23여 년 동안 교수로 지내면서 많은 문인들을 배출해냈으며, 2000년 9월14일 86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단편 <별>, <목넘이 마을의 개>, <그늘>, <기러기>, <독 짓는 늙은이>, <소나기>, 장편 『카인의 후예』, 『나무들 비탈에 서다』『일월』 등이 있고, <황순원전집> 12권이 간행되어 있다.
황순원은 1915년 3월 26일, 평양에서 가까운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태어났다. 황순원의 나이 만 4세. 아버지가 1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는 동안 어머니 장찬붕(張贊朋)과 단둘이 시골집에서 고독하게 지냈다. 황순원이 맏이이고, 밑으로 아우가 둘이다.
1921년 만 6세 때 가족 전체가 평양으로 이사하고, 만 8세 때 숭덕소학교에 입학한다. 유복한 환경에서 예체능 교육까지 따로 받으며 자라났다. 열두어 살 때부터 마신 소주를, 그는 일흔이 넘도록 마셨고, 후에 몸이 쇠하여서도 타계할 때까지 매일 마주앙을 마셨다. 오산중학교에 입학, 한 학기를 마치고, 다시 평양에서 숭실중학교로 전입학한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그 이듬해 무렵부터. 첫 발표는 1931년 7월 『동광(東光)』 을 통해서인데, [나의 꿈]이라는 시가 그 등단작이다. 이후 중학교 시절 거듭 시를 발표하다가 1934년 졸업과 함께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와세다 제2고등원에 입학한다.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 연구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 이 단체 명의로 27편의 시가 실린 첫 시집 『放歌』 간행. 이듬해 여름 방학 때 귀향했다는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피하려고 동경에서 시집을 발간한 것이 사유가 되어 평양경찰서에서 29일간 구류를 산다.
1935년 1월, 동갑의 양정길과 결혼. 이들 부부 사이에는 이후, 나중에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성장하는 맏아들 동규(東奎)를 비롯, 차남 남규, 딸 선혜, 3남 진규 등이 태어나 자라게 된다.
1936년 와세다 제2고등학원을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한다. 5월에 두 번째 시집 『골동품』을 낸다. 그의 첫 소설 작품은 1937년 7월 『창작 創作』 제3집에 발표한 「거리의 부사(副詞)」. 이듬해 10월에 「돼지 계(系)」를 발표하고, 이 두 작품을 비롯해서 창작 연대가 확실치 않은 다른 11편의 단편을 함께 묶어 그로부터 3년 뒤인 1940년에 『황순원 단편집』을 내게 된다. 이때가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지 2년 뒤다. 세 번째가 되는 소설집 『기러기』를 낸 것이 1951년인데, 이 소설집에 기록된 15편 중 「별」「그늘」 두 편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 밑에서 창작되어 발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보관되고 있던 것들이었다. 황순원은 빼앗긴 모국어로, 언제 발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소설을 창작하고 있었던 한 고집스러운 신예작가 였다. 일제의 간섭을 피해 1943년부터 고향 빙장리에 머물러 있던 황순원은 해방되고 9월에 평양으로 돌아가지만, 곧 공산 치하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이듬해 가족들과 월남한다. 그해 9월에 서울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취임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장편 구조를 가진 『별과 같이 살다』를 부분적으로 발표하게 된다. 이 작품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 것은 1952년이다. 1948년에 모두 7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 『목넘이 마을의 개』를 낸다. 6.25 전쟁 때 황순원은 제자의 도움을 받아 경기도 광주로 피난했고, 1.4 후퇴 때는 부산으로 피난 간다. 부산에서의 피난 생활 또한 부인이 살림을 이끄는 가운데, 단편집 『기러기』(1951.8)를 낸 외에 11편의 단편을 담은 단편집 『곡예사』를 1952년 6월에 낸다. 뒤를 이어 1953년 5월에 저 유명한 단편 「학」과 「소나기」를 발표했다.
황순원의 이름을 단편 작가로 머물지 않게 한 평판작 『카인의 후예』는 1953년 9월부터 『문예』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5회를 연재하고, 잡지는 폐간되지만 작가는 그 뒷부분을 따로 써두었다가 이듬해 겨울에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1955년에는 6.25 전쟁기의 궁핍과 그로 말미암은 인간성 해체를 다룬 『인간접목』(원제:천사)을 일년간 연재한다. 이것이 책으로 나온 것은 1957년의 일. 그 사이 1956년 말에 단편집 『학』을 발간한다.
1957년 만 42세인 황순원은 4월에 경희대학교 국문과 조교수로 직장을 옮긴다. 스스로의 다산의 창작과 그 성취를 기반으로, 그것에 대한 사회적 예우가 얹어지는 가운데서 수많은 문인 제자들을 길러낼 수 있었던 시기가 이때로부터 열렸다. 경희대학교에서는 특별한 보직 없는 평교사로 23년 6개월을 봉직하고 또 말년까지 계속 명예교수로 남아 후학들에게 가르침을 주어왔다.
1958년에 여섯 번째 단편집 『잃어버린 사람들』을 발간하고, 1960년에 장편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사상계』에 연재한 직후 출간한다. 1962년에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장편 『日月』은 3년 만에, 그 무렵 창우사에서 내기 시작한 『황순원 전집』의 제 6권으로 발간된다. 1964년에 단편집 『너와 나만의 시간』이 간행된다. 1968년부터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장편 『움직이는 성』이 발간된 것은 1973년이다. 1976년에 단편집 『탈』을 발간한다. 이 무렵에는 이미 황순원이라는 이름이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아온 세월이 얹어져 있었다. 「탈」은 분량이 10장밖에 안 되서 이후의 소설 강의 때 논의하기 적절한 소설 텍스트가 되기도 한다. 1978년부터는 장편 『신들의 주사위』를 『문학과 지성』에 연재하기 시작하는데, 5공 직전 신군부의 등장 때 자행된 언론통폐합 조치로 잡지가 등록 취소되는 바람에 연재가 중단되자, 이를 『문학사상』에 이어 연재하여 마침내 완성, 1982년에 전집 제10권으로 간행하기에 이른다. 1985년에 고희 기념집으로 낸 『말과 삶과 자유』 는 수필류를 쓰지 않은 황순원 문학에서는 보기 드문 산문집이다.1980년부터는 문학과지성사 판 전집이 발간되기 시작하여 1985년까지 소설 10권, 시 1권에 연구가들에 의한 『황순원 연구』까지 해서 모두 12권으로 확정된다. 1992년에 발표한 「산책길에서」연작과 「죽음에 대하여」 등은 사사로운 일상에 관한 시이다. 이로써 그의 공식 작품은 시 104편, 단편 104편, 중편 1편, 장편 7편 그리고 산문집의 글로 집약된 채 마감되었다. 2000년 9월 14일 작고. 그가 타계한 후, 유작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터이고 어쩌면 그런 귀중한 자료가 실제로 공개될 수도 있겠지만, 살아생전에 전집을 냈고, 평소에 책으로 내기 전의 교정본까지 모두 버리게 하는 꼼꼼함을 알면 그런 글이 나오기 쉽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Ⅱ.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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