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지역 문화유적 답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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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지역 문화유적 답사 후기
재일제주인이란 단어에는 많은 의미와 역사가 숨어있다. 단순하게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제주도 출신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그리고 어떻게 일본까지 건너가게 되었는지 말이다. 조선시대 조선정부의 억압과 차별로 인해 제주도 내에서 생활이 어려웠던 제주도민들은 1829년 출륙금지령 해제이후 본격적으로 이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많이 거주했던 지역이 바로 일본 오사카 지역이다. 일본 거주인 중 75%에 달할 정도로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제주도에서 오사카로 가는 배편이 생기자 이를 통해 오사카로 건너가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10월 11일 제주대학교 박물관 내에 있는 재일제주인센터를 방문했다. 그 전에 재일동포 3세를 만나 재일제주인들이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초기 재일제주인들은 일본인들로부터 차별을 피하기 위해 일본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시기에 주로 이주를 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점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깝게 느껴졌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우리나라를 식민통치하고 있던 나라에 이주하여 산다고 할 때 그들이 겪었을 어려움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에 이런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현재는 재일동포 3세에 이르게 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에서 거주하며 일본학교를 다니고 문화를 지속적으로 접하다보니 한국에 대해 관심이 덜하게 되고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고 한다. 이를 극복하고자 일본 내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 문화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한국 사람이다. 라는 인식이 사라져가는 것 같다고 한다.
이에 더해 한국정부 또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이 없다보니 더더욱 한국인 이라는 인식이 형성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일제주인들이 나서서 제주대학교 박물관 내에 재일제주인센터 건립을 지원하고, 학교발전기금을 지원하며 학생들이 재일제주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노력을 하고 또한 제주도 내에 투자를 통해 호텔을 건립하고는 있지만 한계가 보이고, 한국 정부에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필자 또한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까진 재일제주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재일제주인센터를 돌아본 후 제주대학교 박물관을 관람했다. 박물관은 다른 박물관과 다르게 시대별로 유물들을 전시한 것이 아니라 제주의 사람 바다 땅으로 카테고리를 설정하며 전시하였다. 박물관을 관람하기 전에는 학교 내의 박물관이기 때문에 학교와 관련된 자료나 유물들만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나의 예상과 달리 학교 관련 자료는 소수의 전시자료만 남아있었다. 어쩌면 박물관 건립 당시에 학교자료 전시 넘어 제주도의 유물들을 전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10월 22일에는 관덕정 김만덕 기념관 조천 연북정을 다녀왔다. 처음에 관덕정 답사를 간다고 했을 때 관덕정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솔직히 관덕정이 과거에 어떤 기능을 했는지 그리고 언제 만들어졌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단순히 매주 일요일마다 조선시대 군사복장을 하고 군사 훈련 모습을 표현하는 행사를 보며 조선시대 군사훈련 장소였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여러 사실들에 대한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내 주변에 있는 문화재에 대해서 자세한 관심을 미치지는 못했던 것이다. 진주성 동래성 등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 항전을 했던 성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넘어 조선시대 조선정부가 통치를 위해 각 지방에 건립했던 시설까지는 몰랐던 것이다.
조선 초기 제주도에 대한 직접적인 통치를 하지 못했던 조선정부가 중기이후 직접통치가 가능해지자 행정시설을 건립하고 목사를 파견했다. 제주목사는 제주지역의 사법권 통치권 군사권까지 관장했던 그야말로 제주도의 통치자였다. 하지만 사실 완전하게 장악하지는 못하고 지역 향리나 이방등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통해 조선정부는 제주도민으로부터 공납품과 세를 거둬들이는 한편 기존에 있던 제주도의 마(馬) 산업을 국가산업으로 전환시켜 제주지역경제를 장악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앞서 언급했던 재일제주인 발생 이전 해양유민들이 생겨났고, 그 연장선에서 재일제주인들이 발생한 것이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살수 없어 고향을 떠나 이주한 사람들의 고통의 깊이가 어느정도 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
관덕정은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건립한 단층의 팔각지붕형태의 정자이다. 1448년 제주목사 신숙청이 건립하였는데, 이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축을 거쳐 현재의 형태로 자리 잡았으며 초기의 형태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개축을 할 때 초기의 형태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보수하였다면 제주도 지역의 건축 특성을 잘 보여주는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 받을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왜냐하면 제주도 내에서 문화재 보수가 어려워 육지에서 보수업자들이 보수를 시행하다보니 육지에 건립된 정자와 유사한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필자가 육지에서 봤던 진주성 내에 있는 같은 기능을 했던 촉석루와 비교해보면 아주 유사한 형태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관덕정 바로 뒤에는 목관아지가 보인다. 목관아지는 제주목사가 거주했던 행정시설인데 이 또한 건립당시 건물은 남아있지 않고 건물터와 제주목사가 사용했던 건물 일부가 남아있다. 남아있는 건물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제주건축물의 특성을 볼 수 있었다. 건물은 사방에 창문이 달려있는 전형적인 남방식 건축물의 특징을 보였다. 그리고 남아있는 건물 주변에 터들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제주지역의 건물특성을 자세하게 조사하여 복원시 이를 토대로 복원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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