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원리와 실제] 추사고택을 다녀와서 [추사 김정희에 대해서, 자료수집 및 조사, 실전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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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추사고택을 다녀와서...
차례
Ⅰ 추사“김정희”에 대해서..
Ⅱ 추사고택의 자료수집 및 사전조사
Ⅲ 추사고택 실전답사 및 감상
추사 “김정희”에 대하여..
추사 “김정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 어 책에라도 한번쯤 나왔을법한 추사“김정희”. 이렇게 그의 이름은 누 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의 생애나 업적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추사고택을 답사하기에 앞서 “김정희”란 위인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자 한다.
추사 김정희는 1786년 6월 3일 충남예산에서 김노경과 기계 유씨사이 에서 장자로 태어났다. 추사의 집안은 친가와 외가 모두 명필로 이름난 집안으로서 김정희가 성장하여 글씨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선천적인 것으로 보아도 될듯하다. 추사는 어렸을 때부터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나타냈는데 그의 나이 7세 때 당시 재상 체제공이 추사의 글씨를 보고 장차 명필이 될 것을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 후 추사는 12세 때 큰아버지의 양자로 입적하였는데 큰아버지와 친분이 깊었던 당시의 실학의 태두인 박제가에게 사사를 받아 중국의 학문경향과 서예, 그리고 실사구시의 학문에 대해 깊이 깨우치게 되었다. 추사는 한산이씨와 결혼했으나 사별하고 23세 때 예안이씨와 재혼한 후 다음해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그해 중국에 동지부사로 가는 생부를 따라 중국에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다. 추사는 스승이었던 박제가와 친분이 있던 중국의 대학자인 완원과 옹방강을 만나 완원과는 사제지간을 맺고 자신의 별호를 완당이라고 칭하였으며, 옹방강은 추사의 학문에 반하여 "경술문장 해동제일"이란 휘호를 내리고 즉석에서 사제지의를 맺었다고 한다. 추사는 이렇게 북경에서 완원, 옹방강등의 학문의 대가를 만나 경학과 금석학, 서예에 대해 깊이 연구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이 추사는 연경에 가서 청나라 학문대가들로부터 인정받고 귀국한 후에는 청으로부터 고증학을 도입하게 되었다. 추사는 완원에게 고증학과 경학에 대해 배우고, 서학이론에 심취하게 되었으며, 옹방강에게서는 금석고증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주학년 으로부터는 청조문인화풍을 배우고, 서송 으로부터는 고증학에서 역사지리학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었다. 이러한 청조의 거물급 인사들의 영향에 자극받은 추사는 귀국 후 연구를 거듭하여 30대 초반의 나이에 청조고증학의 핵심을 이루는 경학과 금석학을 깨치게 되었다. 그의 금석학에 대한 지식으로 함흥 황초령에 있는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와 북한산 비봉에 있는 순수비를 고증하게 되었다. 이러한 추사의 학문은 나중에 경학, 사학 및 불교를 비롯한 제자백가와 천문, 지리, 음운, 산술에 까지 통하게 되었고, 시문과 서화에 능함은 물론 금석고증과 서화골동의 감식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저서로는 완당집, 실사구시설, 예당금석과안록, 완당척독등이 있고, 그림으로는 묵죽도, 세한도등이 전해진다. <아래그림 - 세한도歲寒圖>
추사는 완원과 옹방강 두 스승의 영향으로 중국의 소식, 구양순등의 글씨체를 열심히 연구하여 40대에 이르기 전 추사체를 완성하였으며 특히 예서와 행서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룩하게 되었다. 추사가 박제가에게 배웠던 실사구시의 학문은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중국에서는 실시구시의 학문이 고증학과 금석학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금석학은 금석자료 자체가 갖는 역사성과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는 방향으로 흘러 서도금석학이라는 학문적인 경향이 이루어졌고, 서도금석학은 비문의 서체를 연구하는 비학으로 발전하여 옛날부터 전해오는 비문의 필체를 연구하게 되었는데 추사는 중국에서 완원과 옹방강 으로부터 이러한 비학의 정수를 전수받아 추사체라는 독창적인 글씨체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러한 추사체는 중국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가져 앞 다투어 추사의 글씨를 얻고자 하였다. 그 후 추사는 관직에 올라 암행어사직을 비롯하여 성균관 대사성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지만 말년에는 당파싸움에 휘말려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1840년부터 1848년까지 제주도에서 귀양생활을 하였고, 헌종의 묘번문제로 1851년부터 1852년까지 함경도 북청에서 유배생활을 하였으며 1856년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 역사상에 예명(藝名)을 남긴 사람들이 많지만 이만큼 그 이름이 입에 오르내린 경우도 드물다. 따라서, 그에 대한 연구도 학문·예술의 각 분야별로 국내외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 일찍부터 이루어져 왔는데, 그 결과 그는 단순한 예술가·학자가 아니라 시대의 전환기를 산 신지식의 기수로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여 조선왕조의 구문화체제로부터 신문화의 전개를 가능하게 한 선각자로 평가된다.
추사고택의 자료수집 및 사전조사
추사고택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의 고택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증조부 시절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추사고택은 비교적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추사고택은 원래는 99칸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면적 265㎡ 가량이며 안채와 사랑채·문간채·사당채가 있다. 동쪽에 사랑채를, 서쪽에 안채를 배치하되 안채 대청의 방향은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동향이고 사랑채는 남향이다. 안채는 6칸 대청과 2칸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부엌과 안대문·협문·광 등을 갖춘 ㅁ자형의 집이다. 이러한 ㅁ자형 가옥은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 분포된 이른바 대갓집 형태이다. 안방 및 건넌방 밖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의 천장은 다락으로 되어 있다. 사랑채는 ㄱ자로 되어 별당채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지붕은 긴 홑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지형에 따라 기단의 높낮이가 생긴 곳에서는 맞배지붕으로 층을 지게 처리하였다. 사랑채의 함실 부분에도 맞배지붕에 이어붙인 지붕이 기능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고택은 영조의 부마이며 선생의 증조부인 김한신(金漢藎)이 건립한 18세기 중엽의 건축물로서 당시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다. 후손이 세거(世居)해 오다가 1968년 타인에게 매도된 것을 충청남도에서 1976년 문화재로 지정하고 동년 4월 25일 매수하였다. 집 안에 있는 김정희의 영정과 도장, 염주, 붓과 벼루 등은 일괄 보물 제547호로 지정되어 보관되고 있으며, 고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그가 어려서 공부했던 절 화암사가 있다. 고택의 오른쪽 담장에 달린 쪽문을 나서면 대대로 마셔온 석정(石井)이 있고, 거기서 100m쯤 가면 김정희묘(문화재자료 188)가 있다. 방마다 모사품이기는 하나 선생의 유묵이 걸려 있다.
입장료: 어른300원, 청소년 150원, 어린이 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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