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씨 남정기를 읽고(가부장제의 숨겨진 피해자 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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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 남정기를 읽고
가부장제의 숨겨진 피해자 교씨
구운몽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 양소유의 여덟 부인들이 질투와 시기 없이 사이좋게 지냈다는 것 이였다. 둘도 아니고 여덟이나 되는 부인들이 다툼 없이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좋은 물건도 남 주기 싫고 혼자 독차지하고 싶은게 사람마음인데 더군다나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누가 나눠 갖고 싶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독차지 하고 싶은 마음을 당연한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근데도 양소유의 여덟 부인들이 다툼 없이 서로 서로 친하게 지냈다는 것은 부인들 모두가 부처님이거나 양소유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구운몽에서 조선시대 남자들이 요구하던 여인상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남자가 아무리 많은 부인을 거느리거나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도 투기하지 않고 무던히 참고 살아야하는 여인네의 모습을 그 시대는 요구 하고 있었다. 일부다처제라니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여성의 인격을 무시하는 제도란 말인가 물론 남정네들이야 지극히 당연한 제도였겠지만. 지금도 그 시대를 농담 삼아 혹은 진심으로 부럽다고 하는 많은 남자들을 봤다. 구운몽은 그 시대 남자들이 어쩌면 이시대의 남자들도 꿈꾸던 환상인 것이다. 구운몽의 이러한 점이 거짓으로 보이고 남자들의 판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사씨남정기가 더 사실적이고 그 시대 현실 반영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부인과 첩은 서로를 질투하고 시기한다. 그리고 둘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위해서 애를 쓰다가 첩은 음모를 꾸며서 본부인을 내쫓는 다라는 일은 조선시대에 어디선가는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이다. 소설에서처럼 본부인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양반출신의 첩이 본부인이 되어 끝나는 것이 더 사실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극히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했던 시대에 살았던 김만중은 첩인 교씨를 악덕한 인물로 묘사하고 본부인 사씨를 순종적이고 착한 인물로 묘사하여 권선징악의 스토리로 전개한다.
사씨남정기에서의 교씨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항간에는 교씨가 장희빈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장희빈이라는 인물설정인 매력적이면서도 교악한 모습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의 장희빈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많이 왜곡한 부분도 많은 터이니 장희빈과 교씨를 동일시해서 보는 것은 위험한 일일 것이다. 교씨가 악녀인 것은 확실하나 교씨는 다른 고전소설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든 악녀스타일이다. 혹 심청전의 뺑덕 어미를 떠 올리기도 하지만 뺑덕 어미처럼 처음부터 재물을 놀이고 접근한 사람도 아니었고 뺑덕 어미에게는 교씨만한 매력은 없었다. 그런면에서 뺑덕 어미는 악녀라기보다는 사기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반면 교씨는 매력적인 악녀의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암튼 교씨는 처음부터 악인이었던 건 아니 였다. 교씨의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첩으로 들어오게 된다. 즉 유한림의 재산을 탐내거나 부귀공명을 바라는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유한림은 궂이 첩을 들일생각이 없었으나 대를 이러야한다는 극히 가부장적 사고로 사씨 부인의 적극권유로 첩을 들인다. 교씨는 필요에 의해서 시집을 오게 되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교씨는 처음부터 아들을 낳기 위한 도구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위해서 말한 대로 교씨가 처음부터 악덕한 인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유한림뿐만 아니라 사씨 부인에게 지극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두사람이 바라던 아들도 낳는다. 내가 만약 교씨였다면 사씨부인을 내쫓을려고 마음먹었다면 아들을 낳자마자 내쫓았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자식을 못 낳는 것 또한 여자에게는 죄악이므로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씨는 아들을 낳고서도 사씨부인에게 본부인으로서의 예의를 차렸다. 그런데 이러한 교씨가 갑자기 맘을 돌린 결정적사건은 일명 거문고 사건이다. 단지 교씨는 남편의 사랑을 받고자 거문고를 배웠을 뿐인데 사씨부인은 그것을 질책한다. 그것도 아주 교묘하게 자존심을 깍는 방법으로 질책함으로써 사씨의 투기를 은근슬쩍 감추며 교씨의 정숙하지 못함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정숙한 부인임을 강조한다. 난이부분을 읽으며 사씨 부인을 감춰진 내면이 상상되었다. 사씨부인 또한 자신의 남편을 빼앗은 교씨가 얼마나 싫었을 것이다.(소설 속에서는 그러한 표현이 전혀 없지만)그러나 양반가의 대를 잇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남편을 교씨에게 양보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목적대로 교씨에게서 아들이 태어나자 더 이상 남편을 교씨에게 빼앗기기 싫었던 것이다. 너무 심한 비약일수도 있겠지만 결말부분에 사씨가 교씨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교씨가 비록 첩이긴 하나 양반가의 자손인데 그러한 모욕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꽃다운 나이인 16세에 늙수그레한 아저씨에게 그것도 정실이 아닌 첩으로 들어와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왔을 교씨가 거문고 사건으로 자신의 욕망을 터트린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그녀의 악행은 이때부터 시작한다.
교씨는 비록 악덕한 인물이기는 하나 모성애까지는 잃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죽이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완강하게 반대하고 그녀의 아들이 죽자 슬퍼한 것은 거짓이 아닌 진심이었을 것 이라고 생각이 든다.
난 이 소설을 읽고 사씨가 나중엔 결국용서할 줄 알았다. 후덕한 인품의 주인공이 악덕한 인물을 용서하며 끝나는 고전소설의 결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주인공의 착함을 강조하며 끝나는 흥부전이나 콩쥐 팥쥐 같은 이야기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악인은 개과천선하여 주인공 앞에서 착하게 살겠다고 맹세하고 끝나는 것이 해피엔딩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씨는 고생하긴 했지만 결국은 남편도 다시 돌아왔고 부귀공명 또한 되찾았고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역시 다시 찾았기 때문에 교씨를 용서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그리고 어쨌거나 악행 전에는 한집안의 식구이었기 때문이다. 근데도 사씨가 당한일이 지독하더라도 벌써 천한 기생이 되있는 교씨를 궂이 잡아 죽였던 것이다. 자비를 배푼다는 것이 시체의 사지를 보존하게 해주는 일이었다. 이 대목에서 난 사씨가 교씨를 얼마나 미워했는지를 엿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는 가부장적제도로 인해서 교씨나 사씨와 같은 여자들은 많이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리고 보면 요즘 드라마들 중 사씨남정기의 구도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들이 있다. 요즘이나 예나 여자들은 남자의 사랑만을 위해 서로 다투고 미워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드라마는 조선시대를 못 벗어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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