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 장화홍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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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전
어렸을 때 그림 동화책에 실려 있던 이야기 들 중 특히나 장화 홍련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이유는 그림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분홍 치마를 입은 홍련이가 특히 예뻤던 스케치북 크기의 동화책이었는데 삽화만 봐도 이야기가 저절로 떠올라서 글씨는 안 읽고 그림만 보며 책장을 넘겼었다. 홍련이가 언니를 그리며 창에 앉아 있다가 나뭇가지에 앉은 새를 바라보는 장면, 호수가 있는 큰 풍경에 저만치 장쇠가 나귀에 장화를 태워 가는 장면, 배 좌수 앞에서 허씨가 수건으로 목을 매어 거짓으로 죽으려 하는 장면, 소복을 입은 홍련이가 부사 앞에 나타나 눈물을 흘리는 장면 등. 그림으로 남아있는 장화홍련은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계모와 핍박받는 두 자매의 이야기, 우리나라 고전 중에 이렇게 잔인한 작품이 어디 있습니까?” 작년 여름 피로 범벅된 섬뜩한 포스터로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내 가슴을 자주 철렁하게 했던 영화 장화홍련. 그 영화의 감독인 김지운 감독이 어느 TV 인터뷰에서 꺼낸 말이다.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던 중이라서 그때는 그냥 넘어가 버렸는데 후에 누군가 나에게 이 영화를 보러가자는 말을 꺼냈을 때 나는 이 감독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장화홍련전이 뭐가 잔인하다고 그러지? 죽는 게 잔인한가? 그럼 주인공 죽는 소설들은 다 잔인하겠네. 거 참’ (공포영화를 보지 못하는 덕에 결국 영화는 보지 않았다.) 이상한 얘기라고 그렇게 넘겨버렸기에 이번에 작품을 고를 때 지체 없이 장화홍련전을 집어들었다. 어디 얼마나 잔인한가 보자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나서는 김풍기 선생님이 떠올랐다.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이 작품이 얼마나 ○○한 작품입니까. 그렇죠?” 하시면 음~그렇구나 했던 기억들...(ㅡㅡ;) 선생님이 아닌 다른 사람도 똑같은 유형의 말을 했고 난 또 못 알아먹은 거였다.
잔인하다는 것. 사진, 영화, 티비. 물밀듯이 쏟아져 나와서 안보고 싶어도 안 볼 수가 없다. 그 속에서 잔인하다는 것은 사람이 죽는 것이고 더 들어가 엽기적으로 정상적이지 않게 죽는 것이다. 숫자의 개념 또한 마찬가지이다. 요즘은 사고의 규모가 너무 커서 이젠 뉴스에서 나오는 사망자 숫자가 무감해 질 지경이다. 돈의 단위 또한 몇 천을 넘어선 몇 백억 몇 조 단위로 넘어가니 상상조차 힘들다. 모든 걸 돈의 기준으로 재니 몇 십 몇 백이라는 사람 단위가 별 것 아니게 비춰질 수밖에. 이런 환경 속에서 장화홍련이 잔인하다는 것을 느끼려면 이때까지의 잔인한 장면들 모두 떨쳐 버리고 머리에서 전선을 하나 내어 장화홍련에 꼽아야 한다. 장화홍련과의 일대일 대화.
장화홍련에는 계모가 나온다. 계모 하면 왠지 차갑고 표독스럽고 나쁜 이미지만 줄줄이 쏟아진다. 사실 소설에서 계모가 착한 이미지로 나오는 경우도 매우 드문 것 같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천국의 계단’이라는 드라마에서도 계모는 자기가 낳은 자식과 차별하면서 전처 자식을 때리고 구박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어떻게 이리도 닮아 있는지. 장쇠는 장화를 데리고 호수로 가 물에 밀어 넣은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범을 만나 두 귀와 한 팔과 한 다리를 잃어버린다. 계모는 쥐를 튀겨 피를 발라 장화가 자는 이불에 넣어두고 낙태를 한 척 꾸민다. 정말 잔인한 건 이런 장면이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이야기 자체가 무서움이다. 재산 때문에 자식을 죽이려고 꾸미는 계략.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계모가 자식을 미워하여 꾸미는 일에 초점을 맞춘 영화의 감독 또한 장화홍련이 이런 모습에 느낌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지금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같다. 허씨가 지금 시대에 살아서 재판에 회부된다면 얼마만큼의 형을 선고받을까? 10년 20년? 무기징역? 아마 지켜보는 사람들은 사형시키라고 할 것 같다.
장화가 죽는 이유는 임신을 했다는 것 때문이었는데 그 당시는 지금과 다르다지만 그게 한 여자를 부모가 죽일 수 있을 만큼 큰 죄인가? 여자의 정절 문제는 옛날이 아닌 지금에도 민감한 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사람의 목숨 사이에 규범이니 윤리니 하는 것이 끼어 들어 죽음까지 정당화된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 후에 허씨의 죄가 드러나 부사가 그 사건을 다룰 때에도 사건의 초점은 나쁜 계략으로 장화를 죽이려 했다는 것이었지 혹 장화가 정말 임신을 해서 낙태를 했다면 장화 홍련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고 억울한 한을 품고 있다는 것이 성립될 수 있었을까? 점 점 여자가 살기 각박해지는 세상인데 나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궁리해 봐야 했다.
이미 죽어버린 장화와 홍련을 다시 행복하게 하기 위해 소설은 환생이라는 장치를 이용한다. 끝이 행복하게 끝나야 하는 고전 소설의 공식 상 죽은 사람과 그 사람을 못 잊어 슬퍼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원 상태로의 복구밖에는 없으니까. 심청전과 마찬가지로 소설에서 여자가 주인공이 되면 남자는 필연적으로 못나게 나오는 건지. 아내를 잘 못 골랐고 흉녀인 허씨가 하는 말을 귀가 얇게 곧이곧대로 믿어 딸을 죽게 했으며 둘째 딸인 홍련이 또한 지켜내지 못한 장화 홍련의 아버지 배 좌수는 잘 한 구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결말이라는 이유 때문에 다시 장가를 가게 되는데 그 상대가 나이 십 팔세에 용모와 재질이 비상하고 성정이 온순하여 자못 숙녀의 풍토가 보이는 윤씨였다. (고전 소설은 남자에게 너무 관대하다) 이 부인이 쌍둥이를 임신하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장화 홍련인 것이다. 환생시켜 준 것으로는 그 동안의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후에 커서 용모가 화려하고 문필이 출중한 쌍둥이 형제인 윤필, 윤석 형제에게 시집을 가 잘 먹고 잘 산다는 뒷이야기까지 만들어 준다.
장화 홍련전은 실제로 평안도 철산군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나름대로 인물의 성격이 개성 있고 사건이 현실감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 같다. 장화, 홍련이 환생하는 등 허구성이 없지는 않았지만 실제 같은 이야기 전개에 고전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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