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심장 - 대니얼 골먼의 감성지능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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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심장
- 대니얼 골먼의 감성지능을 읽고
텔레비전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요즘 들어서 챙겨 보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하나 생겼다. 방영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로운 프로그램인데, 나는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토요일 다섯 시만 되면 후다닥 텔레비전 앞에 앉아 채널을 돌린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되는 이유는, 사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방송인 이다도시의 아들 ‘유진이’ 때문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에서 태어난 혼혈 1세인 열두 살짜리 꼬마 때문에, 지금 한국의 모든 ‘누나 부대’들이 유진이를 울부짖으며 외치고 있다.
유진이는 독특하게도, 출연한 여덟 명의 또래 한국 아이들과는 현저히 구분이 된다. 혼혈이기 때문에 하얗고 짙은 쌍꺼풀의 서양적인 면모를 풍긴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고 사고하는 방식이 나머지 7명의 아이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유진이는 모든 표현이 자유롭다. 자기가 흥겨우면 언제든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어머니나 맘에 드는 여자 어린이에게는 솔직하게 애정 표현을 한다. 그렇다고 소위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수위에 도달하면 스스로 절제할 줄도 안다. 숙녀와 어른들에게는 항상 예의를 갖춰 행동하고, 엄마 코가 마녀 코 같다고 얘기했던 일을 말하는 도중에 눈물을 펑펑 흘리기도 하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인 이 꼬마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상상하는 것은 참으로 흐뭇한 일이다. 로맨스 영화에서나 보던 예의바른 신사가 되어 있을 생각을 하니 누나 부대들은 유진이 때문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유진이 또래의 초등학생들을 생각해보자. 마침 작년에 교생 실습을 나갔던 학년이 딱 유진이 또래의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었다. 요새 아이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수업이 끝나면 학원차를 타러 가기에 인사도 제대로 나눌 겨를이 없다. 대체 저 어린 아이들이 뭐가 그리 바쁜 건지. 한 아이를 잡고 물어보니 영어, 컴퓨터, 태권도, 피아노, 한자 학원 심지어 철학에 논술 학원까지 있단다. 나보다 더 바쁜 아이를 민망해서 놓아주고 나니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다람쥐 쳇바퀴에 아이들을 집어넣고, 무한대의 경쟁 속에서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과연 무엇인가? 사회적인 지위나 막대한 부? 이것이 과연 부모들이 생각하는 대로 그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 분명한가?
이다도시는 최근 ‘프랑스식 감성교육’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아마도 그녀가 유진이를 교육하는데 있어서 모토가 된 것은 바로 저 감성교육이리라. 그렇다면 ‘감성’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여기에 주목해야하는 것일까?
우리들 세대만 해도 학교에서 IQ 시험지를 나누어 주고 측정을 했다.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IQ 시험지를 들고 신나게 집에 와서 풀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남아있는 기억은, 내가 시험지 푸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시던 우리 어머니께서 꿀밤을 먹이시며 “그게 정답이니?”하고 윽박질렀던 기억이다. 지우개로 지워가면서 ‘이게 답인가? 저게 답인가?’ 하는 나의 얼굴은 울상이 되어 가고 있었고, 그런 나를 보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만 더 짙어지고 있었다. 그 때 측정된 나의 IQ는 121이었다. 평균 IQ가 100임을 감안할 때, 평균보다 높으면 높았지 절대로 침팬지 수준의 떨어지는 아이큐는 아니다. 하지만 나보다 약 8정도 높게 측정된 나의 남동생 때문에 나는 아직까지도 머리가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여차해서 성적이 좀 떨어진다 싶으면 ‘너는 남들보다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배로 노력해야 한다.’는 소리가 꼭 따라왔다. (하지만 아는가? 미국의 물리학자 파인만의 아이큐는 무척 낮다고 한다.) 나는 점차 IQ로 사람을 판단하는 이 사회 풍토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IQ로 저울질 당하던 학생 시절에는 몰랐는데, 교사가 되어 IQ로 학생을 저울질하려고 보니까 무엇인가 결함이 있는 부분을 발견한 거다.
IQ만을 향해 달려가는 이 사회적 분위기의 원인은 IQ로만 사람을 판단하고 재려하는 풍토에서 조성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다원주의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에서 IQ 위주의 사고방식은 많은 문제점과 난관에 부딪힌다. 감성 지능이 발달하지 못하면, 사회적 네트워크망에서 고립당하기 마련이다. 서로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공유되며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는 다원화 사회에서, 이러한 감성적 교류 기술이 결핍 되다보면 일정 수준의 한계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어쩌면 평생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 죽거나 높은 탑 안에서 고독하게 살다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IQ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을 말하는 것이라면 감성지능 EQ는 일정 수치에 도달한 능력이 한계점을 넘어설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중요한 능력임을 시사하는 바이다.
확실히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똑똑한 바보를 더 원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초등학생들은 괴롭고, 그래서 한국 사회가 문제가 많다. 한 설문조사에서 자살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 초등학생은 50%에 육박했고, 초등학생이 성범죄를 일으키거나 모방 범죄를 일으킨 사건도 있었다. 나는 그러한 사건들을 보면서 대량으로 양산한 공부 로봇들이 결국에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나친 머리 위주의 교육 방식은 공부 기계만을 양산할 뿐이다. 사회를 조금 더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바로 가슴이기 때문이다. 실례로 사이코 패스에게 따뜻한 가슴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얼마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 살인 사건 같은 것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지 않는가. ‘만약 그 시절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줬더라면 나의 삶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결국은 IQ 위주의 교육이 문제다. 우리는 그동안 감성이 끼치는 영향을 너무 무시했고, 감성에 대하여 무지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우리에게 최근, 머리의 발달보다 중요한 것은 가슴의 발달이라는 감성지능 이론들의 중요성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인 대니얼 골드만은 오늘날 우리들은 얼마나 영리한가 혹은 전문지식이 얼마나 많은가라는 것뿐만 아니라, 나와 상대방의 감정을 얼마나 잘 조율할 수 있는가라는 새로운 척도로 평가받고 있다 감성지능, 대니얼 골드먼 저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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