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 - 오아시스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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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9 / 20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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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를 보고
영화 오아시스의 남자 주인공 종두는 뺑소니교통사고로 형을 살다가 막 출소한다. 그러나 다른 출소자들처럼 그에게 두부를 내미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혼자서 직접 두부를 사 먹음으로써 출소의 의식을 치른 종두는 집으로 향하지만 가족들은 그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이사를 간 뒤였다. 겨우 찾아간 그의 가족은 그를 노골적으로 귀찮아하고 그가 저지르는 엉뚱하고 사소한 소동들 앞에서 그의 형수는, “우리는 삼촌이 없을 때 참 행복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출소 후 별다른 일거리도 없이 소일하던 어느 날 종두는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간다. 종두식 표현을 빌면 그냥 미안하고 궁금해서, 그러나 종두는 제대로 사과도 하지 못한 채 이사가는 오빠네 가족 뒤에 홀로 남겨진 공주를 발견한다. 그녀는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사지를 뒤틀어대는 중증뇌성마비 장애인, 그런데 처음으로 공주를 만나러 온 종두가 그녀에게 한 행동은 그야말로 강간에 가까웠고 공주는 놀라 까무라친다.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들에 자괴감마저 느끼는 종두, 영화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여기까지의 영화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감독은 우리가 보기에도 한심하기 그지없고 멸시당해 마땅한 홍종두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 하고....
그런데 놀라 까무러쳤던 공주가 종두를 향해 전화를 한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사력을 다해, 그리고 이때부터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다. 그런데 여기서 강간미수에 해당하는 종두에게 공주는 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기 시작했을까. 그것은 비록 거친 형태이긴 하지만 그녀를 장애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여자로 대해준 최초의 남자가 그였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사랑은 그러나 순탄치 않다. 세상사람 누구도 그들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의 칠순잔치에 공주를 데리고 간 종두에게 형은 묻는다. ‘너 이제 와서 내 대신 감옥 간 게 억울해서 시위하는 거냐고’, 그리고 강간범으로 몰려 경찰서에 끌려간 종두에게 조사관은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이 묻는다. ‘저런 애를 대상으로 성욕이 일기나 하더냐고’, 이처럼 종두와 공주 두 사람의 사랑은 사랑으로 이해되지 못하고 헛된 시위이거나 파렴치한 범죄로 오인당한다.
공주는 누가 봐도 중증뇌성마비 장애인이고 종두 또한 남다른 순진성과 엉뚱함으로 인해 사회적 부적응 상태에 놓여 있는 전과자라는 의미에서 정상인의 범주에 벗어나 있다. 그래서 공주의 가족들은 공주를 빈 집에 홀로 두고 떠나고 종두의 가족들은 노골적으로 종두를 귀찮아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족들의 행동에 대해 영화를 보는 관객들 또한 분노를 느끼기 이전에 나라도 저 정도면 저러지 않았을까 하는 동조의식을 가지고 영화를 보게 된다.
그러나 영화가 종반부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장애인/정상인, 전과자/정상인 하는 식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영화속에서 종두의 형은 종두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꼬인다는 피해의식을 토로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저지른 음주운전으로 인한 과실치사 사건에 대해 종두를 자기 대신 감옥에 보내놓고도 그가 출소하는 날 두부 한 모 사가지 않는 몰염치한이다. 한편 공주의 오빠는 공주를 빈 집에 홀로 두고 떠났으면서 복지과 직원이 찾아오면 부랴부랴 공주를 집 한켠에 데려다 놓고, 강간사건에 대해서도 공주의 말을 듣기 이전에 종두의 가족에게 보상금을 요구하는 파렴치한이다. 이처럼 감독은 소위 정상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 즉 그들의 표면적인 건강성 아래에 고여 있는 몰염치, 정신적 심리적 장애를 밀도 있게 그려냄으로써 처음부터 장애인/정상인간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음을 설파한다.
이렇게 볼 때 영화 <오아시스>의 마지막 장면은 더욱 인상적이다. 평소 오아시스 그림이 그려진 벽걸이에 밤이면 드리우는 나무 그림자가 무섭다던 공주를 위해 경찰서에서 탈출한 종두는 가로수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톱으로 잘라내고 이를 안 공주는 자신이 그 모습을 보고 있다는 화답으로 사력을 다해 라디오 볼륨을 올린다. 종두가 들을 수 있도록. 이처럼 두 사람은 정상인들이 사랑이 아니라고 끔찍하고 파렴치한 강간사건이라고 규정한 두 사람의 사랑을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리고 순전히 타의에 의해 감옥의 안과 밖으로 갈라진 두 사람은 조용히 그리고 끈기 있게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사회적 개연성에 대하여
영화 오아시스가 더욱 더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에 대한 현실적 편견과 차별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그들을 만나면 무턱대고 동정하거나 무시하며 심지어는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등을 치기까지 한다. 이러한 사회적 의식 속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에게 하물며 그들의 사랑이야기라니, 영화 오아시스 이전에는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리고 사지를 뒤틀어대는 공주와 어리석고 덜떨어진 종두의 정사장면은 얼마나 참혹하기까지 했던가. 그러나 그 이야기를 이 영화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필치로 드러냈다. 결국 오아시스는 단순한 러브스토리를 넘어 정상인의 범주에서 괄호 밖에 내동댕이쳐진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편견과 폭력에 대한 꼬집기 혹은 거울 들이대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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