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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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를 통해 돌아본 ‘그때 그 시절’
서평 :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
이성욱 저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소녀시대, 트위터, 스마트폰’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시절’을 지내지 않은 우리로 하여금 ‘그 시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을 마련해준다. ‘그 시절’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우리나라 정치 민주화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도 존재하고 경제발전을 중심으로 과거를 돌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전반적인 시대상황을 재평가한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그 시절’에는 이 책의 저자인 문화평론가 이성욱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추억하며 그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70,80년대 사회에 어떠한 문화가 존재하였는지 우리에게 간접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나를 키운 대중문화, 그것은 요람이었다”고 말한다. 더 직접적으로 ‘선데이서울’이고 ‘김추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지나간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결코 문화 그 자체만의 의미가 아닌 ‘그 시절’의 대중문화의 의미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제 1장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는 ‘그 시절’의 전반적인 문화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대중문화를 크게 영화, 대중가요, 섹슈얼리티, 스포츠, 춤의 영역으로 나누고 있다. 제목에서 나타내는 ‘김추자’, ‘선데이서울은’ 당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의 아이콘이었다. 단순히 노래 잘 부르는 가수 ‘김추자’,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선데이 서울’이 아니라 시대 상황과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문화 자체였다. 그 외에도 다방, 뮤직홀 등의 대중문화 공간을 다루는 2장 ‘한국 대중문화 100년의 계보학’, 미아리, 카바레, 점집 등 근대적인 살풀이의 기억을 붙잡는 3장 ‘근대 공간의 감각과 풍경’, <전원일기>,<조용필> 등에 대한 4장‘그때 그 시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저자의 보편적인 공간 체험이고 또한 특이한 공간 해석으로서 문화적 요람을 구성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현 세대들에게 지난날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하기에도 좋지만 기성세대들에게 잊고 지내던 ‘그 시절’의 행복을 다시 떠올리기 하는데도 적합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에서 느껴지는 차이가 신선하고 문화를 통해 그 시대를 바라본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우리가 <맨발의 청춘>이나 <검은 상처의 부르스>를 듣는 것과 우리 부모님들이 그 노래들을 들을 때의 느낌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어른이 되어 옛날 노래를 듣거나 부르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릴 적 그 노래에 투영되었던 행복이 복제되는 것이다. 2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방영되었던 TV드라마 ‘전원일기’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이 또한 당시의 사회 모습을 바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원일기’가 초점을 맞춘 것은 농촌, 아버지 그리고 가족(마을)공동체였다. ‘전원일기’는 농촌으로 표상되는 전통적 가치체계와 그것의 중심으로 떠받치고 있는 고향과 아버지의 얘기를 풀어놓는데, 그것들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잔존문화다. 1980년대 역시 ‘아버지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의심하고 부인하는 문화가 현저히 전염되던 시기였던 점을 상기한다면 ‘전원일기’의 호소력은, 그래서 자기 근거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최불암이 단지 한 가족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 마을 전체의 상징적 아버지라는 것, 근면과 권위 그리고 어짊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는 것 등은 그런 근거에 대한 이미지들이다. 지금은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스포츠가 과거에 우중화의 매개물이라고 엄중문책을 당하기도 하면서 아무튼 법적으로 금지된 각종 환각 매개물의 대용품이었다는 사실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미국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우리나라 대중문화에 미국의 문화가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GI문화를 통해 우리나라는 미국의 대중문화에 직접적, 대중적으로 대면하게 된다. 미8군 무대는 우리 대중문화의 본거지가 되었다. ‘패티김, 최희준, 위키리’ 등은 모창 같이 재미삼아 해보는 개인기로서가 아니라 그들 자체가 미국가수의 모조품 노릇을 해야했다. 모두 원단에 대한 모방자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했다.
대중문화란 말 그대로 대중이 형성한 문화이다. 대중이란 지배권, 기득권을 가진 소수의 권력계층이 아닌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중문화에는 그러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야 하고 그들의 희노애락이 잘 반영되어져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대중문화가 당시의 사회모습을 가장 잘 비춰주는 거울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문화를 통해 휴식과 오락의 기회를 제공받게 되고 또한 그것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세대에게 있어 기성세대와는 다른 억압된 욕망을 분출시키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90년대 등장한 서태지라는 대중가수에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지금에 그가 ‘문화대통령’으로까지 불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처럼 대중문화라는 것은 시대에 대해 무의식중에 존재하는 욕망의 표출하고 충족시킴으로서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70~80년대는 금기와 억압의 시기였다. 그렇지만 금기와 억압에 반한 위반의 욕망에서부터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번영의 기반은 마련되어져왔다.
이 책을 읽고 접했던 문화들이 나는 매우 낯설었다. TV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이었지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그 시대를 직접 겪어보지 않고 그 문화에 대해 완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시대에서 그만큼 문화도 빠른 속도로 변화해가고 있다. 문화란 시대의 변화에 대한 적응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해방과 전쟁을 겪은 이후였던 ‘그 시절’은 아마 우리나라의 대중문화가 번영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해주는 시기였을 것이다. 요즈음 대중문화에 다시 등장한 ‘복고열풍’이나 ‘세시봉’과 같은 것들이 과거에 존재했던 하나의 추억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잠깐이나마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었다. 나는 ‘조용필’이나, ‘김추자, 펄시스터즈’에 열광하기는커녕 그들이 누군지조차 잘 알지 못하고 서부영화나 무협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지 않으며 라디오를 통해 레슬링 중계를 듣지도 않고 고고장에 다니지도 않는다. 하지만 ‘신중현’의 음악을 듣고 ‘타이거마스크’를 보고 음악다방에 드나들던 나의 부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 나이일 때의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며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추억에 공감하고 낭만을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 간접적으로나마 ‘그 시절’에 대한 설렘과 그리움을 경험할 수 있었던 기분 좋은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지금 세대의 사람들이 보면 유치하고 촌스럽고 피부에 와 닿지 않을 많은 것들이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기성세대에 대한 일종의 반항일수도 있었고 소수의 지배층에 대한 반감의 표현일 수도 있었고 무의식중에 존재하는 욕망의 표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긴급조치’라는 말은 지금처럼 자신의 가치나 사상의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국어 사랑 운동이라는 명목아래 ‘키보이스’라는 그룹 이름을 ‘열쇠 소년들’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버린 우스꽝스러운 경우나, 왜색, 창법 저속, 가사 내용 불신감 조성 등의 이유로 대중가요를 금지곡 처분해 버렸다는 말은 당시 정권의 문화에 대한 검열과 통제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영화에 대한 정부의 검열 의지는 5.16 이후 모든 대중문화가 군사정부의 슬로건을 맹목적으로 선전 반복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외압이 된다. 영화 <잘돼갑니다>는 당대 사회를 암울하게 그렸다는 이유로 검열의 통제를 받았다. 문화라 함은 다양성과 개성이 잘 드러나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대 사람들은 그것의 표현에 앞서 검열에 대한 걱정을 우선시 해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금지곡 처분을 받은 ‘동백아가씨’를 즐겨 불렀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나는 당시 정권의 융통성 없음을 느꼈다. ‘그 시절’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이 늘 기분 좋을 수만은 이유다. ‘그 시절’에는 설렘과 낭만 그리고 추억과 함께 결코 잊을 수 없는 차마 표현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늘 공존하고 있다.
<게다가 ‘긴급조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금기와 억압에 대해 이것이 과연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만을 대변해 주는 표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고들 한다.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중은 그들의 다양성과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은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 우리는 늘 그것을 제한하는 울타리 안에 존재하게 되고 또 그 시대가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문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결국 다수의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마저도 소수의 권력계층의 영향을 받으며 그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20년, 30년 후에 나는 지금의 문화를 어떻게 기억할 것이며 다음 세대들은 또 그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문득 궁금하다. 직접 겪어보지 못한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며 그것을 받아들일 때의 기준은 우리가 존재하는 현실에 기초하여 만들어지는 것 같다.
앞서 말한 듯이 나는 그 당시의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당시 문화를 나타내주는 다양한 자료가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 포스터나 가수의 앨범,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들은 책을 읽는 데 재미를 더하였다. 이를 통해 좀 더 친근하게 문화에의 접근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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