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와 처벌 독서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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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9 / 20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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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시와 처벌 -
처음 이 책을 펼치고 몇 페이지 넘기지도 않았을 때부터 글이 상당히 난해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글을 다 읽은 지금도 솔직히 지은이가 하고 싶은 말을 확실히 잡아냈다고 말할 수 없다. 한 페이지를 읽고 다음페이지를 넘어가는데 있어서 그 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가 얼마나 아는 것이 적은지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푸코는 이 책에서 현대사회의 권력구조를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 대신 권력을 복잡하고 다원적인 존재로 이해한다. 권력은 특정한 집단 내에서 존재하고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엘리베이터, 은행 등의 CCTV 또는 학교 내의 두발과 교복 등과 같이 우리의 생활 내에서도 존재한다. 그리고 푸코는 권력의 상호연관성을 강조하였다. 즉, 그것은 권력의 그물망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그는 이 그물망 속에서 권력 주체들의 관계에 집중하였다. 그러므로 정치권력의 물리적 또는 현실적인 힘은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권력의 주체는 우리들이 아니며 현실의 정치권력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권력은 거대한 존재의 그물망 그자체인 것이다. 푸코는 이 책에서 진리의 메타포로 간주되던 시선을 권력의 기제로 탈바꿈시켰다. 근대 이전의 군주 권력이 만인으로부터 한 사람의 권력자를 우러러보던 시선으로 특징지어졌다면, 근대의 규율권력은 한 사람의 권력자가 만인들을 감시하는 시선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이었다. 대중들이 한 사람의 권력자를 우러러 보는 사회는 “스펙터클의 사회”이다. 반면에 한 사람이 대중들을 주시하는 규율권력의 사회는 “감시사회”이다. 또 푸코는 사회 통제 전략으로서의 권력, 다시 말해 인간사회 관계 속에서의 권력의 작용과 기능에 대해서 역설하였고, 권력은 그러한 사회제도기능을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했을까? 푸코는 감옥과 형벌의 역사에서 이 변화에 대한 단서를 찾았는데, 죄수를 벌할 때 신체에 가혹한 형벌을 가하던 전통적인 체벌 형식이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엽동안에 죄수를 감옥에 감금하는 징역형으로 바뀐 것에 주목했다. 징역형은 처벌을 덜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잘 처벌하고” “더 보편적이고 필연적으로 처벌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징역형은 형벌의 기본원칙이 육체에 대한 고통에서 영혼에 대한 규율로 바뀌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 p21
“유황을 태웠으나 그 불길이 너무 작았기 때문에 죄수에게는 손등의 피부만 약간 상하게 했을 뿐이다. 그 다음에는 소매를 팔뚝 위까지 걷어 올린 사형 집행인이 길이 45센티 정도의 불에 달군 특제 쇠집게를 집어들고, 먼저 오른쪽 다리의 장딴지를, 다음에 넙적다리를, 오른팔의 근육 두 군데를, 다음에는 가슴을 찢었다. 집행인이 아무리 체력이 강하고 억센 사람이라 하더라도 쇠집게로 찝고 있는 곳의 살을 같은 방향으로 두 세 번 비틀어 가면서 잘라내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 그리고 잘라낸 부분에는 각각 6리브르 화폐 크기만한 흉측한 구멍이 드러났다.
근육을 도려내는 이러한 형벌이 끝나자 다미엥은 머리를 들어 자기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사형 집행인은 가마솥에서 쇠국자로 펄펄 끓는 걸쭉한 액체를 떠서 상처 부분에 가득 부었다. 그 다음에는 가는 밧줄로 말들의 마구를 매는 밧줄을 묶고 죄수의 사지를 잡아당기도록
죄수의 몸과 말의 수레를 묶어 두었다. 드디어 그는 네 갈래로 찢겨졌다. 이 마지막 작업은 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왜냐하면 동원된 말이 그러한 견인 작업에 익숙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마리 대신에 여섯 마리의 말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불충분해서 죄수의 넙적다리를 잘라내기 위해 할 수 없이 근육을 자르고 관절을 여러 토막으로 절단해야 했다
<감시와 처벌> p23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이라는 책에서 지은이는 “푸코는 감옥과 형벌의 역사에서 이러한 변화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고 주장한다. 푸코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책 <감시와 처벌 1장 수형자의 신체> 는 다미엥의 처참한 사형장면으로 시작된다. 병사였다가 시종무관이 되어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루이 15세를 살해하려다가 실패한 다미엥의 처벌 장면이다. 중세시대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오싹할 정도로 잔인한 것이였다. 범죄는 권력에 입장에서 볼 때, 다시 말해 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에 의해 승인된 법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행위이므로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엄중히 다룰 필요한 있는 것이였다. 그래서 처벌은 주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모인 광장 같은 곳에서 행해졌다.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하여금 공포를 심어주어 처벌이 두려워서라도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였다. 특히 이 같은 왕의 목숨을 노린 범죄일 경우에는 최고도로 잔인한 형벌이 주어졌다. 이 장면은 고대 중국 사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이다. 동양 역시 고대의 형벌은 신체형과 생명형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 중국의 처벌도 굉장히 잔인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서양 중세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잔인한 형벌이 필요했던 이유는 왕권에 도전하는 모든 범죄를 잔인하고 가혹하게 처벌함으로써 왕의 권위를 지키며 또한 이런 형벌을 공개함으로 대중들에게 공포심을 유발시키는데 있었다. 형벌의 이면에는 전제왕권의 강화라는 취지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형벌은 정치의식의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수 없었다. 군사정권시절 정부는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한 일들이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범죄의 억지가 교육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반면 중세에는 이러한 의식에서 국민의 기억 속에 잔상을 각인하므로 범죄 억지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사회에서는 재판 절차가 비공개적이고 처형은 공개적이였다. 이러한 처형 의식이 의도한 효과를 갖지 못하자 권력은 감옥 중심, 교화 중심의 특별 예방적 형벌주의를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그와 더불어 교화의 수단이 된 규율체계가 강조되었다.
지금까지 형벌이 더 인간적인 것으로 변해온 것은 권력의 필요에 따른 것일 뿐, 알고 보면 권력은 더 강하고 세련된 형태로 우리를 체제 순응적 존재로 길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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