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석의 이렇게 정원 딸린 저택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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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9 / 20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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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들어 깨우는 또 하나의 존재, 유령》
-백민석의 『이렇게 정원 딸린 저택』을 읽고-
한때의 열풍으로 그칠 것으로 여겨졌던 ‘엽기’ 신드롬은 좀처럼 식지 않은 채, 이제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단어로 자리잡았다. 원래 사전적으로는 ‘기괴한 사건이나 사물에 흥미를 느껴 사냥하듯 쫓아다닌다’는 의미를 지녔지만, 요즘에 와서는 ‘상상치 못했던 황당하고 역설적인 일’ 혹은 ‘자극적이고 톡톡 튀는 유쾌한 파격’이란 의미로 변하면서 갑갑한 일상과 규범화된 사회질서에 도전하는 새로운 하위문화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 해볼 백민석 씨의 소설『이렇게 정원 딸린 저택』 역시 ‘엽기’적인 소설로 지칭되고 있다. ‘유령’이란 소재를 사용하고 비일상적인 행위를 보여주면서 작가가 던지려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를 염두에 두면서 이 소설에 얽힌 여러 가지 생각들을 풀어나가도록 하겠다.
우선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음산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띤다. 저택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의 모습을 뇌장(腦漿)에 비유한 것이나, ‘탁한 빛을 내면서 저택 전체를 감싼 우윳빛 막’이라는 표현, 미완성된 듯한 저택에서 발견한 ‘쇠락해가는 부조화’ 등은 마치 낯선 세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소설 자체의 난해함은 이러한 ‘낯섦’에 동조하게 한다. 그렇다면 비일상적인 배경 속의 wt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작가는 wt에 대해서 주관적인 견해를 보이거나 혹은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 듯하다. 단지 그의 외양, 행동, 의식, 그가 사는 저택 묘사 등을 통해 우리 스스로 추론해 보게 한다. 그 중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갈고리’라는 단어는 wt가 유령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유령은 ghost와 같은 죽은 혼령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잊으려 하는, 삶의 현실을 일깨우는 존재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마치 wt의 갈고리로 움츠려 있는 우리를 낚아채려는 유령을 말이다. 「누군가 걸려들길 기다렸지. 오늘은 네 차례야.」이 말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까.
백민석 씨의 소설을 사회 고발적인 소설로 분류하는 것이 억지스러울지도 모르나, 소설이란 으레 현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그 문제점에 대해선 질타를 가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 소설 역시 나와 wt와의 관계를 통해 그런 문제점을 고발하려 한다. ‘소년소녀 가장돕기’를 통해 ‘부’를 사회에 환원하려는 노력을 했던 아버지, 그러나 그것은 그저 명분을 위해, 사명감에서 행해진 것이라고 단정짓는 wt의 말은, 이름만 화려한 ‘노블리스 오블리제’ 가 횡행한 현대 사회를 떠올리게 해준다. 자신의 저택관리인에게는 보수를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세력가에겐 후원인이 되주는 wt, 어릴 적부터 정원 딸린 저택을 동경해왔고 재력가인 wt에게는 수그러드는 듯한 인상을 주는 나- 이 두 인물을 통해 ‘지배층의 논리’와 ‘내면화된 권력에 대한 복종심’에 대한 작가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
손님들을 나체의 모습으로 자신의 캔버스에 그려 넣는 wt의 행위 자체는 그렇게 엽기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체’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 세상의 모든 가식을 던져버린 깨끗한 진짜 모습을 베끼면서, 그 영혼까지 자신의 소읍 속에 담으려는 wt의 행위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소읍의 유령처럼 발끝을 들고 떠 있는 기분을 느낀 ‘나’가, 자기가 먹었던 고기들의 출처를 깨닫고 구토를 하는 장면은 엽기가 극에 달하는 부분이다. 인육(人肉)을 먹는 행위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인지 의견을 나눠보면 좋겠다.
대체적으로 무척이나 이해하기 힘든 소설이었다. 그러나 소재와 플롯의 독특함 때문이었는지 인상적인 부분이 꽤 많았다. 그 중에서도 무척 강한 인상을 받았던 부분이 있는데, 다소 이 소설과는 거리감이 있긴 하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눠 봤으면 싶다.
그는 내게,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있어야 할 바른 기준을 얘기했다. 자기가 얼마나 줄 수 있는지가 아니라, 상대가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를 따져야 해. 그게 바른 기준이고 이 사회에서 지켜져야 할 질서란 얘기였다. 그와 나는 식료품 매장으로 올라갔다.
“너라면 말야,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에스컬레이터에서 그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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