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덤불속과 영화라쇼몽 비교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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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9 / 20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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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덤불속과 영화라쇼몽 비교 감상
영화 <라쇼몽>은 소설 <덤불 속>과 <라쇼몽>을 섞어서 재구성 한 것이다. 계속해서 화자가 바뀌던 소설과는 다르게 영화에서는 비 오는 날 라쇼몽 아래에 모인 세 사람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나도 그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감상 할 수 있었다.
덤불 속에서는 7명의 등장인물들의 진술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서로 사건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끝이 나는 반면 라쇼몽에서는 새로운 장소 (라쇼몽 아래), 새로운 인물(행인), 새로운 진술(나무꾼이 라쇼몽 아래에서 털어놓는 사실)이 등장해 사건의 진실을 말하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보여준다.
덤불 속에서는 사무라이, 여자, 다조마루 모두 각자 자신의 자존심, 절개를 지킨 척 거짓을 섞어 본인이 범인이라 말한다. 한 사건을 두고도 인간의 자기옹호 본능과 이기심 때문에 사실을 숨기는 모습을 통해 소설의 작가는 세태를 비판한다. 하지만 영화 라쇼몽에서는 소설 덤불 속과 라쇼몽의 내용을 절묘하게 섞어 영화만의 새로운 결론을 도출한다. 영화 속에서 나무꾼은 자신이 사건의 전말을 목격하지 못한 척 하지만 라쇼몽 아래에서 진실을 털어놓는다. 그가 목격한 사무라이, 여자, 다조마루의 진실은 비겁하고 치졸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싸우지만 결국 남자다운 23번의 합은 커녕 살기위해 개처럼 뒹굴며 싸우는 것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 광경을 목격한 나무꾼 조차 그들이 싸울 때 쓴 보석이 박힌 칼을 주워 팔아 먹는다. 그래서 그는 라쇼몽 아래에 버려진 아이의 도포를 매정하게 가져가 버리는 행인을 비난 할 수 없었다.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고 믿던 승려마저 나무꾼의 진술을 듣고 인간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버려진 아이를 진심으로 자신이 기르겠다며 데려가는 나무꾼의 모습에서 그의 인간적 반성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덤불 속을 다 읽은 후에는 기분도 이상하고 뭔가 개운치 못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반면 영화 라쇼몽의 결말은 보는 이에게 인간에 대한 희망을 주려 하는 것 같아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덤불 속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주제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궁지에 몰렸다거나 나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잃을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거짓말을 하게 될것같다. 물론 소설과 영화에서는 살인사건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사용해 그것을 말했지만 자기옹호를 하는 이기적 심리나 행동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기에 작가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절감할 수 있었다. 영화의 결말처럼 희망적인 모습도 주변에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덤불 속을 읽은 후에 라쇼몽이라는 영화를 보아서 그런지 느낌이 색달랐다. 라쇼몽이라는 원작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라쇼몽에서 덤불 속을 꺼내었다고 하여도 덤불 속이 먼저 인 것 같아서 이상했다. 덤불 속을 먼저 보고 라쇼몽을 보았기 때문에 덤불 속을 변형시켜서 만든 영화가 라쇼몽인 것 같아서 계속 이상해 하였다. 일단 전체적으로 일본영화였기 때문에 연기도 못할 뿐만 아니라 대사나 촬영기법이 너무 옛날방식이라서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글로 읽는 것이 더 재밌고 몰입이 더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도입부에서 나무꾼이 계속 숲속을 걸어가는 장면은 확실히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만큼 계속 산속으로 걸어가는 나무꾼의 모습에서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얼마나 깊은 산속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렵게, 어렵게 해쳐 나가야하는 덤불 속까지 우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용한 촬영기법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알 수 있었다기보다는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다음에는 덤불 속과 내용이 달라서 자칫 헷갈릴 뻔 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덤불 속을 먼저 봐서 라쇼몽에서는 틀린 줄 알 뻔 하는 것이다. 덤불 속과 라쇼몽이라는 영화가 다른 점은 첫 번째로 시작의 장소가 다르다. 덤불 속은 관아에서 나무꾼의 증언으로 시작하지만 라쇼몽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 라생문이라는 다쓰러져가는 누각밑에서 비를 피하며 충격에 빠져있는 나무꾼과 중생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나는 여기서 라쇼몽의 시작이 더 좋았다. 계속해서 모르겠다는 나무꾼의 말에 도대체 뭘 모르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함이 더해져서 뒷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덤불 속은 너무 뜬금없이 시작되서 허둥지둥 내용을 정리하기에 바빴는데 라쇼몽은 천천히 시작되어서 좋았다. 두 번째는 덤불 속에서는 등장하지않는 인물이 라쇼몽에는 등장한다. 라쇼몽에서는 영화 속에서 독자처럼 이야기를 듣는 사람으로 비를 피하려던 행인이 한명더 등장한다. 세 번째는 라쇼몽에서 중생이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하다가 ‘나는 아직 인간을 믿는다’하다가 ‘인간을 믿을 수 없게 되다니’하는 등 인간을 믿고 못믿는 것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것은 작가가 라쇼몽을 통해서 보여 주고자 하는 고통이 아닌가 한다. 네 번째는 덤불 속에서는 나오지않는 결말이 라쇼몽에서는 나온다는 것이다. 이게 가장 큰 차이가 아닌가 한다. 라쇼몽에서의 결말은 덤불 속을 읽고 여러 가지 결말에 대해 생각해본 나에게 허탈감과 어이없는 실소를 주었다. 결국 나약한 인간이기에 이 모든 일이 벌어 졌고 마지막까지 나약함에 의해 도망치기 바쁜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가 생각한 결말은 여자가 남편의 가슴에 꽂힌 칼을 빼내어 죽게 만들고 도둑도 다치게 한 후 뒤늦게 후회하며 죄를 뉘우치러 온것이라고 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이것은 여자의 행동은 어쩔 수 없이 한 짓이고 그 여인을 불쌍하게 보이도록 해서 독자들에게 여자의 죄를 용서해줄 수 있도록 만든 여자를 보호하는 식의 생각이 아니었나 한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에게 하는 남자들의 행동들 때문에 나는 이런 결말을 만든 것같다. 아무튼 라쇼몽에서의 결말은 갑작스런 남편의 행동(여자를 데려가도 좋다는 것과 오히려 여자에게 화를 내는 것)에 짜증이 났고 도둑과 남편이 여자의 화난 말에 다시 싸우는 것에 비웃음?이 들었고, 서로 겁이나서 쉽게 죽이지 못하고 도망다니면서 싸우는 모습이 가소로웠고, 도둑이 이겼지만 미친것같은 모습에 여자가 불쌍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다들 미친것같은 연기에 인상이 쓰여지기 일쑤였고, 이것이 왜 엄청난 상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정신사납고 발악하지를 않나 미친듯이 웃지를 않나 나는 보는 내가 정신이 이상해 질것만 같았다. 결국 작가의 의도는 인간의 나약함과 불신을 비판하고 정이 남아있다는 것을 마지막장면에 보여줌으로써 우리들에게 반성의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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