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선비 조광조 그가 배운 도학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3.29 / 2015.03.29
  • 10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3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진정한 선비 조광조, 그가 배운 도학
배운대로 행한다
배운 대로 산다는 게 쉬운 일인가? 학문을 통해 얻은 도덕적 가치를 실천하는 게 과연 쉬운 일인가?
눈앞에 큰 이익이 있고, 그 이익을 손에 넣으려면 도덕적 가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닥쳤다. 당신이라면 눈앞의 이익을 떨쳐버릴 수 있는 가?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지킨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죽음이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 도덕적 신념을 지키고 죽음을 택할 수 있는가? 도덕적 가치를 목숨보다 소중히 할 수 있느냐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그렇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이름은 선비다.
선비란 무엇인가?
조선 왕조는 세계에 그 유래가 없는 장수 국가로서 500년 이상 지속된 나라이다. 그 장수의 주 요인에 ‘성리학적 명분사회’가 있다. 패도覇道 즉 힘에 의한 폭력지배가 아니라, 왕도王道 즉 명분과 의리를 밝혀 국민을 설득하고 포용하는 정치를 지향하고, 법치보다는 덕치를 우선하는 성리학적 통치 철학이 조선 왕조를 500년 이상 지속시킨 힘이다. 법치의 패도정치가 강제적인 법의 집행에 의지하는 것이라면 덕치의 왕도 정치는 인간의 자율성에 크게 의지하는 정치다. 그러므로 왕도 정치와 덕치의 장에서는 교화를 통한 전 국민의 인간화 작업을 중요시하게 된다.
명분과 의리로써 국민을 설득하고 덕치로써 국민을 포용하려는 조선 왕조가 설정한 모범 인간형 인간은 어떤 것일까. 조선 왕조가 설정한 이상형 인간은 학예 일치學藝一致(학문과 예술을 일치시킴)를 이룬 자였다. 학문 즉 문文사史철哲을 전공 필수로 하여 이성훈련을 체득하고, 예술 즉 시詩서書화畵를 교양필수로 하여 감성훈련을 체질화한 자, 즉 이성과 감성이 균형 있게 잘 조화된 인격체, 그것이 조선왕조가 설정한 학예일치의 이상형 인간이었다.
조선왕조를 장수하게 한 덕목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최고통치자인 왕도 인간화 작업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조선 왕조에서는 최고통치자인 왕에게도 인간화 작업이 강도 높게 요구 되었다. 왕의 의무 사항에는 신하들로부터 교육받는 제왕학이 있었다. 최고 통치자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왕도 공부를 해야 했고, 이에 소홀한 왕은 반정反正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최고의 통치자인 왕도 비켜 갈 수 없었던, 조선 왕조의 인간화 작업이 탄생시킨 인간형, 그것이 선비士다. 정옥자,『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 현암사, 2003, p.12-13 발췌 인용
위는 이상적 인간형으로서의 선비에 대한 설명이다. 하지만 진정한 선비의 요건 하나가 부족하다. 아무리 옛 성현들의 말을 머리 속에 담고 있고, 그 깊은 뜻을 깨달았다 할지라도 그를 몸소 실천 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진정한 선비, 배운 대로 행하는 지식인의 원형 조광조가 있다.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관직에 있던 4년간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균관에서 사성십철의 하나로 불렸고, 불과 4년 만에 사헌부 대사헌이 되었다. 당시 그는 30대 중반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배운 대로 행하는 그의 자세가, 조선사회에서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그가 당시 선비들의 상징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국문학] 한국문학통사 제 3판 7.1~7.9 <조선전기>요약
  • 그곳 사람들이 자기를 옛 친구처럼 대해주는 데 대한 감회를 나타냈다. 라는 글에서는 평생 농사일만 한 노인이 조정의 벼슬아치들이 하는 치사하고 부끄러운 짓을 꿰뚫어보고 있다고 했다. 늙은 농부야말로 이인(異人)이라 하겠는데, 나아가서 배우조가 하니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하더라는 말로 결말을 삼았다. 에서는 지위나 재물을 탐내는 벼슬아치가 아닌 진정한 선비가 해야 할 일이 과연 무엇인가 따지면서, 학문을 하고 도리를

  • [국문학사] 조전초기부터 임진란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소설류
  • 그러자 공사가 반도 안되어 여러 갈래의 맑은 샘이 끊임없이 흘러 넘치게 되고 슬생(이)와 조생(벼룩)이 ‘맹은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사람’이라고 탄식 하며 나왔다. 이에 지신은 노하여 장군의 머리를 깨물었고 맹은 기운이 다해서 머리를 늘어뜨린 채 죽는다.왕은 이를 몹시 애도하고 벼슬을 주었다. 훗날 어느 사람들은 장군이 모자를 멋은 채 이마가 드러난 모습으로 늘 그 연못 가운데서 노닐었던 사실을 보고 불생불멸의 불가의 도를 배운이

  • 16세기 사림파의 내적 분화와 문학적 지향
  • 그 성과가 17세기이후에 계승되고 극복되었다. 16세기 사림파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 김종직, 김굉필, 이황, 이이 에 대해서 그들의 문학과 사상중심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2. 사림과 사림파의 개념과 형성사림이라는 용어는 고려말부터 사용되었다. 고려말에는 성리학자와 사장학의 인사를 통틀어 부르는 단어였다. 즉 선비의 무리를 일컬었다. 조선초에 이르러 사림은 성리학자의 무리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그 후 이들은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사

  • [철학]한국철학사
  • 조광조(趙光祖, 1482∼1519) 향약(鄕約) 6사색 당파(四色黨派) 동인(東人) 서인(西人) 북인(北人) 예학(禮學)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실학(實學) 유형원(柳馨遠, 1622∼1673) 박세당(朴世堂, 1629∼1703) 이익(李瀷, 1681∼1763) 홍대용(洪大容, 1731∼1783) 박제가(朴齊家, 1750∼1805) 정약용(丁若鏞, 1762∼1836)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최한기(崔漢綺, 1803∼1875) 위정척사(衛正斥邪) 동학(東學)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 천도교(天道敎) 개화사상(開

  • [역사] 백자와 선비문화
  • 선비의 고상한 태도로 여기기도 했다. 선비는 벼슬에 나가지 않더라도 스승을 만나 학문과 도리를 연마해 후진을 가르치며 벗들과 권면(勸勉)하는 데 힘썼다. 즉 선비의 일생은 도를 밝히고 자신을 연마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실천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함경옥,『선비문화』(한줄기, 1997), p. 11.조선 선비의 실천은 학행일치(學行一致)로 시작한다. 배운 것은 행동으로 옮길 때 의미가 있는 것이므로, 입으로 아무리 거룩한 말을 해도 그것을 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