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속활자본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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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 금속활자본의 특징
- 목 차 -
Ⅰ. 머리말
Ⅱ. 한국 금속활자본의 창안
Ⅲ. 금속활자본의 주조 및 인쇄방법
Ⅳ. 시대별 금속활자
Ⅴ. 맺음말
Ⅰ. 머리말
인류 문화사에 있어서 인쇄술의 발명은 지식정보의 전달 수단으로 인류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지난 1997년 미국의 Time사에서 천 년 지구를 움직인 100대 사건을 선정했는데,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사건으로 145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인쇄했던 사실을 꼽았다. 김성수, 『직지』와 금속활자 인쇄의 가치와 중요성을 규명하기 위한 조선초기 금속활자 간행도서의 주제 분석, 『서지학연구』28, 서지학회, 2004, 35쪽.
이 인쇄술을 통해 새로운 사상과 온갖 지식, 그리고 과학기술 정보들이 순식간에 일반대중에게 퍼져 나가면서 지구의 역사가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속활자 인쇄술의 발명국은 독일이 아닌 우리나라의 고려이다. 현재 기록상으로는 구텐베르크보다 약 220년 앞선 1234년경 강화도에서 『상정예문』을 금속활자[鑄字]로 인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권11. “…遂用鑄字 印成二十八本 分付諸司藏之…”
, 현재 발견된 금속활자 인쇄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 우왕 3년(1377)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금속활자본의 창안과 그 주조방법 및 인쇄방법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목활자본와의 비교, 시대별 금속활자를 살펴보아 한국의 금속활자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서 본고는 금속활자와 관련된 선행 연구의 논의를 요약 정리하는 방식으로 서술하였다.
Ⅱ. 한국 금속활자본의 창안
금속활자본은 활판 인쇄를 하기 위해 쇠붙이를 녹여 주형에 부어 만든 각종 크기의 활자로 판을 짜서 찍어낸 책이다. 금속활자판 혹은 鑄字本, 鑄字版이라고 부른다.
금속활자본은 금속의 종류에 따라 銅활자본, 鉛활자본, 鐵활자본으로 구분되며, 그 중 연활자본은 丙辰字本과 같이 옛 활자에 속하는 것과 대한제국 말기에 등장한 신식활자로 찍은 新鉛活字本으로 구분할 수 있다. 활자의 명칭에 따라서도 그 호칭이 다양해지는데, 일반적으로 활자를 주조한 해의 干支를 붙여 癸未字本, 甲寅字本 등과 같이 일컫는다. 그밖에도 기관명을 활자에 붙여 校書館印書體字本, 글자체를 활자명에 붙여 筆書體鐵活字本, 字本의 바탕이 된 판본의 명칭을 붙여 全史字本, 자본을 쓴 사람의 이름을 붙여 元宗字本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천혜봉, 『한국서지학』, 민음사, 2006, 259~260쪽 참조.
고려의 전반기에 목판인쇄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유교와 불교의 양대 문화가 발전하고 문물제도가 잘 정비되었으나 후반기로 접어들어 이자겸과 묘청의 내란, 무신란 등이 일어나서 궁궐이 두 번이나 불타는 참화로 귀중한 전적들이 많이 소실되었다. 이후 무신란이 수습되고 세태가 안정되자 책의 수요가 점차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종래와 같은 목판의 간행으로는 그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창안된 것이 튼튼한 쇠붙이로 한 번 만들어 잘 간수하면서 여러 주제 분야에 걸쳐 긴요한 책을 수시로 고루 찍어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천혜봉, 위의 책, 261~263쪽 참조.
우리나라에서 고려 때부터 금속활자 인쇄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여러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제, 누가, 어디서 만들어낸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최소한 1200년대 접어든 직후에는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금속활자 인쇄를 분명히 하고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기서는 지금까지 금속활자 인쇄의 기원설에 대해 주장한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금속활자의 기원설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은 고려 文宗朝(1047~1083) 기원설이다. 고려국오관산대화엄영통사대각국사비명병서에서 문장의 ‘오류를 바로잡아 판각한다’ 는 의미의 ‘鉛’을 ‘연판’, ‘연확자판’, ‘금속활자판’ 등 임의적으로 확대하여 해석한 데에서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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