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가에 대한 몇 가지 고찰 - 창작연대, 작가와 장르, 사랑의 노래, 연모 대상 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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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고전시가교육론 >
<황조가>에 대한 몇 가지 고찰
- 창작연대, 작가와 장르, 사랑의 노래, 연모 대상 을 중심으로
1. 본문, 배경설화(요약)
翩 翩 黃 鳥 (편편황조)
雌 雄 相 依 (자웅상의)
念 我 之 獨 (염아지독)
誰 其 與 歸 (수기여귀)
3년 7월(기원전 17년) 가을, 별궁을 골천에 지었다. 겨울 10월에 왕비 송씨가 돌아가자, 왕은 두 여인을 계실로 맞았는데, 한명은 화희로 골천 사람의 딸이요, 또 한 명은 치희로 한족의 딸이었다. 두 여자는 늘 서로 왕의 총애를 다투어 화목하지 못하였다. 왕은 양곡 동쪽과 서쪽에 궁을 짓고 그곳에 각각 살게 하였다. 뒷날 왕이 기산으로 사냥을 나가 7일 동안 돌아오지 않는 동안에 두 여자가 싸웠다. 화희가 치희를 꾸짖어 말하길, ‘너는 한족의 비천한 여자로서 어찌 무례함이 이와 같이 극심한가’라고 하자 치희는 부끄럽고 원통하여 참지 못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왕이 돌아와서 이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 뒤를 쫓아갔으나 치희는 노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왕은 일찍이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는데 꾀꼬리 무리가 정답게 날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다. ‘펄펄 나는 꾀꼬리여, 암수 서로 정답구나, 내 외로움을 생각하네, 누구와 함께 돌아갈꼬’ 강명혜(2004), 「〈황조가(黃鳥歌)〉의 의미 및 기능 -〈귀지가(龜旨歌)〉,〈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와의 연계성을 중심으로 -」, 『온지논총』, 온지학회, P.13
2. 주제
짝 잃은 외로움. 고독.
3. 기존 연구 정리
1)창작연대
창작연대에 대해서 가장 멀리 그 시기를 추정한 사람이 B.C. 2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지금 한자로 기록되어 전하고 있고, 그 한자가 한국에 수입된 시기를 한사군이 설치되었던 B.C. 108년 이후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이 <공무도하가>의 원사가 처음부터 한자로 창작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 시가가 본래 한자로 된 작품이 아니라면 굳이 창작시기를 한자의 도입과 연계 지을 필요가 전혀 없다. 더구나 이 <공무도하가>에 대해서 지금 학계의 일각에서 주장한 대로 한반도와 무관한 시가라면 그 창작시기는 한자의 유입과 전혀 무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B.C. 17년에 지은 <황조가>와 <공무도하가>의 창작시기를 단순하게 비교해서 그 선후에 대한 문제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그리고 <공무도하가>에 대해서 B.C. 2세기 창작설을 인정하더라도 <황조가>와의 격차는 1세기의 차이도 못된다. 즉 두 작품은 창작의 선후를 거의 단정할 수 없는 같은 시대에 창작되었던 시가라는 점이다. 다만 두 작품에 따른 배경담을 비교해 보면 <공무도하가> 다소 서사적 요소가 강하다. 이 이유로 <공무도하가>의 창작에 대한 선행설을 주장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시가에서 서사적 요소가 강한 점이 반드시 창작시기가 빠른 필수조건은 아니다. 가락국의 건국담에 나온 <구지가>는 서사적 요소가 <황조가>보다 훨씬 강하나 창작연대는 59년 뒤 A.D. 42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황조가>가 만일 유리왕과 분리하여 그 이전에 항간에 유행하여 전승되던 민요로 보면 이 작품의 창작시기는 B.C. 2세기 이전으로 소급도 가능하다. <황조가>는 결론적으로 한국시가사에서 실로 작가가 분명하고 창작연대가 확실한 최초의 시가라는 점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황조가>가 기록으로 정착된 시기는 지금 알 수 없다. 이 <황조가>는 창작된 지 이미 2000년 이상이 지난 옛날의 시가이고, 이 작품에 대한 일체의 상황도 1145년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의 편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전한 <황조가>는 창작된 후 10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의 것이다. 김성기(2001), 「황조가의 연모 (戀慕) 대상과 창작시점」,『고시가연구』, 한국고시가문학회, PP. 33~34.
2)작가와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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