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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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론(論)
내가 처음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계의 거장을 알게 된 것은 중1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영화를 보고나서 부터이다. 원채 영화를 좋아했던 터라 재밌게 봤지만 여타 만화영화와는 분명 다른 무언가를 느꼈다. 그 느낌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영화를 틀어 보았고, 미야자키의 작품도 하나씩 찾아본 것이 어느새 그의 열렬한 팬이 되어 일본영화와 일본만화를 거론할 때 그를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서평 과제를 받고 내가 스스럼없이 미야자키 하야오에 관련된 책을 찾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책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처음 ‘미래소년 코난’을 감독하면서부터 첫 장편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세상에 배출한 일과 미야자키의 영화 산업을 관리해주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건설, 이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작품까지의 중간 중간의 작가의 말을 포함한 전반적인 스토리와 장면 간 의미 등을 담고 있어서 이 책을 보면서 미야자키의 작품을 다시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고 예전의 그 감동을 또 한 번 느꼈다. 처음 미야자키의 작품들이 나오던 당시에 10대에게 유행하고 있었던 작품에서는 ‘기동전사 건담’과 같은 복잡하고 극화적인 캐릭터가 우상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그런 애니메이션의 붐 속에서 오히려 표정이 쉽게 나타나고 변화를 주기 쉬운 캐릭터로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설정된 인물의 특징조차 해방되는 자유롭고 유화적인 대상들을 만들어 내어 애니메이션계의 새 바람을 일으켰다. 또한 미야자키는 종말감이 감도는 어두운 분위기를 지닌 ‘미래소년 코난’을 활력이 넘치는 만화영화로 재탄생 시켜내고, 오랜 세월 캐릭터로 인용이 되어 식상해져버린 ‘루팡 3세’를 건강하고 매력 있는 인물로 소생시켰다. 기존에 유행하던 작품들과는 확실히 차별된 미야자키 식의 이야기가 등장 한 것이다. 일찍이 애니메이션이 청년층을 겨냥했기 때문에 영화계에선 한정된 시장이라고 생각되어졌던 것과는 달리 부모와 자식 세대가 동시에 열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현재의 애니메이션 시장을 확장시키는 중심점이 되었다.부모와 자식세대 모두가 공감 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의 작품의 중심엔 “자연”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놓여져 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도 거대 산업문명의 붕괴 후 숨도 쉴 수 없는 썩은 바다 부근에 사는 사람들이 주가 되어 인간과 동물과 식물에서부터 대기의 흐름까지 통째로 제시하였다. 산업폐기물의 녹과 세라믹 등으로 뒤덮인 대지에서 자라는 독을 뿜는 나무를 곁에서 지켜보는 한 순수한 소녀가 언젠가 정화될 자연을 믿으며 그 유해한 나무들이 사실은 이 세계를 깨끗하게 하기위해 태어난 것이라는, 대지의 독을 신체에 빨아들여 깨끗한 결정체로 만든 후 죽어 대지의 모래가 된다는 역설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가상이지만 어쩌면 우리의 현실일지도 모르는 이 환상공간에서 자연을 벗으로 삼는 이 소녀를 통해 생태적인 테마를 정면에 내세워 환경오염과 자연파괴, 에너지 소비 등 현대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직시하는 화제의 풍부함, 즉 관객층의 확대를 불러 일으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작품의 공개당시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던 점이기도 했다.- 이 영화의 영웅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는 사실이다. 남성의 원리에 의해 발생되는 생태계 파괴가 그것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는가라는 현대적인 테마와 연계되어 그 무렵까지 발표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제시된 남성주인공의 수동적인 모습, 이를테면 형사이기 때문에 범인을 쫒고 로봇 조종사이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는 단순히 극을 만드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던 주인공의 모습에서 벗어나 스스로 판단하여 사람을 구하는 나우시카의 모습을 제시하여 모성이 세계를 구하는 패미니즘 적인 시대의 얼굴을 탄생시켰다. 이후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센괴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많은 작품에 소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는데 강한 남자의 느낌이 아니라 꾸밈없는 눈동자를 가진 가련한 소녀에 의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은 ‘마녀배달부키키’의 키키가 속옷을 입고 창문에서 뛰어내려 호수로 뛰어든다던가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의 모습이 아닌 울보에 못생긴 소녀의 모습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또한 미야자키는 내적인 구성뿐만 아니라 외적인 연출에서도 자연의 이미지를 담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식물도 빛도 정지한 상태가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실개천의 묘사에선 파랑색에서 그치지 않고 그늘이 드리워진 부분은 바닥이고 양지는 반사 되서 바닥을 볼 수 없게 묘사 한다던가 걸어가는 장면에서는 나무 사이로 새는 햇빛이 닿는 방향이 계속 변하기도 하고 파란구름에 보라색과 붉은 기를 첨가해 황혼의 색을 표현하여 단적인 풍경묘사에서 벗어나 그저 좋은 풍경이 아닌 일본의 풍토와 계절감의 표현에 중점을 두어 그리운 일본의 평범한 풍경을 다채롭게 묘사하였다. 이렇게 친밀한 일본의 시골을 되살려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잃어버린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버렸다는 냉엄한 인식의 일면도 엿볼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인식은 ‘천공의 성 라퓨타’의 마지막 부분인 “아무도 살지 않는 정원에서 어깨에 작은 동물을 태우고 꽃을 들고 걸어가는 로봇의 뒷모습”에 구슬픔이 담겨있던 것처럼 예스럽고 좋은 만화의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행복했던 옛날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애처로운 모습이 담겨져 있는데 이러한 슬픔이 대중에게 어필이 되어 인기를 끌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비단 일본의 모습만이 아닌 문명의 이기에 지친 현대, 특히 자연의 상태를 드러낸 것으로 확대되며, 자연과 소통하며 살았던 아름다웠던 과거를 회상시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순수한 정신에서 현재의 우리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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