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나 노무현 대통령 도덕성 노무현 대통령 가치관 승부사 노무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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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나
현관을 나서자 밝은 햇살과 함께 상쾌한 아침 공기가 느껴졌다. 겨우 한발자국 내딛었을 뿐인데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아 감회가 새롭다. 발걸음도 무척 가벼웠다. 발끝에서 느껴지는 살아있는 흙의 감촉 또한 너무나도 새롭다. 마을 어귀에서 밭을 돌보고 있는 이웃 주민을 만났다. 농사가 잘 되냐고 묻자 그는 날이 많이 가물어 마늘 농사가 걱정이라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마을 주민을 뒤로하고 나와 수행원은 계속해서 걸었고 어느덧 봉화산 입구에 들어섰다. 산 중턱에 이르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생애 마지막 갈림길이 지금 바로 눈앞에 있다. 짧은 심호흡과 함께 망설임 없이 왼쪽 길로 들어섰다. 정상에 이르자 문득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힘들게 끊은 담배이지만 최근 다시 손을 댔다. 수행원에게 담배가 있냐고 묻자 미처 가져오지 못했다는 답을 들었다. 아쉬운 대로 짧은 한숨으로 담배를 대신해 본다. 부엉이 바위 아래로 길을 가는 이름 모를 행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내” 혼자 나직이 중얼거려 본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리에까지 올라서 봤지만 사람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러한 나의 마음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혼자고 앞으로도 혼자일 것이다. 이제 나는 세상을 향한 마지막 대화의 제스처를 보내고자 한다. 마음을 굳히자 순간 몸이 가벼워졌고 동시에 나의 메아리 없는 마지막 외침도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5월 23일 새벽 부엉이 바위에서의 마지막 외침을 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의 갑작스럽고 비극적인 죽음 앞에 국민들은 슬픔과 분노의 눈물을 흘렸고 이는 사상 유래 없는 추모 열기로 표출되었다.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는 인기가 없는 편이었다. 재임 기간 중 의욕적으로 여러 개혁안들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무산되기 일쑤였고 이를 조율하는 능력도 보여주지 못해 임기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게다가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갈등과 소요 사태가 야기되었고 여기에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와 우파, 좌파의 때 아닌 이념 논쟁이 맞물려 국론은 크게 분열되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 또한 이러한 상황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 대연정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도 하고 인터넷이라는 창구를 통해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여러 차례 시도해 왔다. 잦은 현장 방문과 토론회 참석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반응들은 하나같이 차가웠다. 한나라당은 대연정을 거부했고 기득권 세력과 가까운 기업과 언론은 연일 노무현 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당인 열린 우리당은 탄핵 정국 이후 확보한 과반 의석을 지키지 못한 채 스스로 무너져 버렸고 이러한 원인을 노무현에게 있다고 판단, 노무현과의 선긋기에 나섬과 동시에 이러한 분위기에 가세하게 된다. 결국 홀로 남겨진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못해먹겠네요” 라는 말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어느 누구보다 소통과 대화의 정치를 원했고 이를 위한 노력에 있어 아낌이 없었지만 정치, 사회적 갈등의 중재 능력과 지도력이 없는 상태에서의 소통에 대한 노력은 그저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었고 이는 노무현 정권의 치명적인 한계이자 약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약점은 또 다른 일방향의 기형적인 소통 형태를 가져와 많은 사람들이 ‘바보 노무현’을 ‘승부사 노무현’으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비록 국정 운영이나 정치에 있어 뛰어난 능력과 수완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노무현 개인의 도덕성과 인간성에 주목했다. 즉 ‘인간 노무현’의 됨됨이에 더 큰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던 셈이다. 실제로 노무현 본인 또한 이러한 면에 있어서는 적잖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재임 기간 내내 각종 부패와 비리 사건에 있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왔고 본인 또한 5공 청문회때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명패 까지 집어 던지며 몰아붙인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불거져 나온 박연차 게이트와 그의 가족, 지인들의 연루설은 이러한 그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렸다. 세상의 반응도 매우 차갑고 매서웠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고 진보 세력과 언론, 정치 세력마저 그를 규탄하고 선을 긋기 시작했다. 인간 노무현의 이야기를 들어줄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이미 세상은 전처럼 그를 철저한 외톨이로 만든 뒤였기 때문이다. 결국 노무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한가지 뿐 이었다. 세상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후의 수단, 즉 죽음을 통해 마지막 소통을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인이 된 지금 많은 사람들이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노무현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소통 수단을 이용하게 만든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에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우리 곁에 있지 않다. 그저 지금이라도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봐주는 사람들의 모습에 고마워하며 미소 지을 뿐이다.
아직 편협한 식견과 속 좁은 나에게 있어 노무현 대통령은 여전히 실패한 정치가로 기억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 야기된 소모적인 이념 논쟁과 갈등들은 무의미하게 국력을 소모하였고 이때 한번 절정에 달한 사회적 균열은 오늘날까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소통과 대화를 강조하였지만 이를 이끌어낼 능력과 역량이 부족해 오히려 이러한 경향을 부추겼고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 전체가 5년간 방향타를 잃고 표류해야 했다. 호소와 투쟁만으로 오늘날 사회 문제를 풀어나가기에는 현대 사회는 너무나도 고도화, 다원화되어 있다. 결국 그의 이상은 높고 순수했을지 모르나 접근과 해결에 있어서는 아마추어의 한계를 절실히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그가 정말 박연차 회장의 로비에 직접 개입했는지 여부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비리 사건에 연루되고 이를 변호해야하는 상황 자체만으로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고, 결국 마지막 대화 창구인 인터넷 홈페이지를 폐쇄하며 도덕적 파산을 선언하고 진보와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버려달라며 호소하기에 이른다. 인간 노무현으로서 마지막 절규였다. 그리고 그는 죽음으로서 자신의 도덕성을 증명했고, 정치인이기 이전에 부끄러움을 알고 양심과 자존이 있는 하나의 인간임을 강변 하였다. 결국 정치인 노무현의 개혁은 비록 실패로 끝이 났지만 인간 노무현의 가치와 의지는 영원히 살아남아 대한민국 공직자의 표본으로 살아남게 된 것이다. 동시에 꽉 막힌 사고의 틀에 갇혀 인간 노무현을 정치인 노무현으로서만 바라보고 평가해온 나에게 그는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되돌아볼 것을 요구하였다. 나의 편협한 사고와 시각이 사실을 왜곡시키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두운 밀실에서 눈과 귀를 막고 뚫린 입으로 혼자 악을 쓰고 있는 꼴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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