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인탐방 부정의 진실을 노래한 민중시인 오장환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3.29 / 2015.03.29
  • 11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4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현대시인탐방°
「부정의 진실을 노래한 민중시인, 오장환」
Ⅰ. 生涯 <전기적 사실>
-서자출생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오장환은 1918년 5월 15일 충북 보은군 회북면 중앙리 140번지에서 출생했다. 원래 아버지 오학근과 어머니 이민석 사이의 3남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의 생모는 이학근의 첩인 한학수였다. 그는 아버지의 정과 대화가 없이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낳은 것은 58살로 사실 할아버지라 불러야 좋을 나이 차이였다. 또 서자 출신이라는 사실이 그를 콤플렉스에 빠지게 하였다. 이는 그가 가정에 대한 불만 요소 중의 하나로 작용할 소지가 충분히 있는 것들이었다. 서출이란 것은 오장환에게 항시 불만의 요소가 되었고, 그래서 해묵은 전통이나 관습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이러한 전통성에 대한 거부와 진보적 사상은 그의 초기시에 나타난 중요한 모티프가 되기도 하였다.
오장환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고 첩실로 들어와 아버지와 일찍 사별하고 홀로 시골에 살면서 농사일만 하다가 늙으신 어머니를 안타까워했다. 어머니의 존재는 그에게 고향으로 다가가고 싶게 만든 것이었다. 오장환은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제2고향인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한다. 어려서 떠난 고향 마을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그에게 고향을 생각하게 했고 또 어머니에게 다가가고 싶게 만들었다.
-유년시절과 휘문고보-
오장환은 회인보통학교에 1~3학년까지 다녔으며 1930년경쯤 경기도 안성군 읍내면 서리 314번지로 이사를 가서 안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중등학교 시험에 낙방하여 집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다시 1931년 중동학교 속성과 수료 후, 휘문고보에 입학한다. 이때 부친의 나이는 70을 넘었고 집안은 재정적으로 많이 기울어져 오장환은 1933년 일시 학비를 못내 휴학을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자주 학교를 결석하고 학업성적도 떨어졌다. 하지만 휘문고보 시절 정지용을 만나게 되고 시인의 꿈을 키워나가며「조선문학」지에 ‘목욕간’을 발표, 작품 활동의 기반을 잡는다. 그는 조숙한 시인으로 어린 소년기부터 시재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극히 짧았던 유학생활-
오장환은 1935년 휘문고보를 중퇴하고 곧바로 일본으로 가서 동경에 있는 지산중학교에 전입하여 마치고 명치대학 전문부에 입학했다. 1936년을 전후의 동경 유학은 원대한 뜻을 둔 것이라기보다 일시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도였다. 학비조달도 어려워 1936년 4월 명치대학 전문부 문예과 별과에 수학하다가 1년도 못되어 제적된다. 하지만 이 때 그는 모더니즘적인 분위기를 배웠고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모더니즘파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의 문학활동은 일본에서 돌아온 무렵부터 왕성함을 보인다. 1936년 「낭만」,「시인부락」 동인으로 참가하고, 1937년 「자오선」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그해 7월에 자비로 출판한 첫 시집 「성벽」이 나온다. 특히 시인부락 동인지의 수많은 작품과 원고수집 및 기타 도인활동의 본거지를 운니정 24번지 오장환의 집으로 한 것으로 보아 오장환은 시인부락 동인 활동에 열의가 대단했던 것 같다. 오장환은 이 동인들과 끝까지 교유했으며, 특히 이성범, 이육사, 서정주, 민태규, 김광균 등과 내왕이 번번했다. 1938년 남만서방이란 책방을 내고 이듬해 제2시집 「헌사」를 간행한다. 그리고 1938년 그의 부친 오학근이 사망한다.
-해방에서 월북까지-
오장환은 신장병으로 입원하고 있던 병원에서 해방을 맞는다. 해방 이후 그의 시세계는 큰 전환을 맞는데 서정성보다는 민중과 좌경적 이데올로기에 기울어지면서 정치색을 띠게 된다. 그는 조선문학가동맹에 참가하고 러시아의 농민시인인 에쎄닌의 시집을 번역하여 간행하는 등 좌익적 경향에 기울어져 활동하는데 이는 그가 서자 출신이라는 신분상의 문제라든가 넉넉지 못했던 가정환경, 사회에 대한 불만과 무관하지 않다. 1947년 장정인과 결혼했고, 그 해 제3시집 「나 사는 곳」을 간행한다. 좌익문화 단체가 주관하는 갖가지 행사를 앞장서 주재하다가 구금되기도 한 그는 세 번째 시집이 나오고 얼마 안 있어 검거망을 피하여 1947년 12월에 월북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해방 후 월북하기 전까지 약 3년간의 작품 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 왕성했다. 6.25 전쟁 당시 오장환은 서울에 와 잠시 머물다가 다시 북으로 간 이듬해에 지병인 신장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Ⅱ. 詩世界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현대시] 백석 시의 세계대응양상
  • 시인의 절망감과 자책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암담한 현실의 비극을 절망하고 회의하는 과정 속에서 백석은 허무의식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허무를 내면화하면서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의 시는 외래지향석의 홍수 속에서 민족적 삶의 원형성을 탐구하고 소외계층의 삶의 진실에 깊은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1930년대 한국현대시에 민족문학적인 내면공간형성을 열어보였다

  • 한국현대문학사1,2(권영민) 1896-2000 요약 정리
  • 민중론(4) 민족문학론의 성과와 한계3. 사회 변동과 소설적 상상력의 대응(1) 주제와 기법의 변주(2) 소설적 기법과 산문 정신(3) 사회 계층의 갈등 양상(4) 분단 현실의 소설적 인식(5) 여성적 시각과 여성주의의 확대(6) 소설 양식의 확대(7) 민속극의 현대적 반응4. 시 정신과 일상성의 회복(1) 민중시와 민중적 상상력(2) 관념과 기법과 정서(3) 시와 경험적 진실성제4장 북한의 문학1. 분단시대의 북한문학2. 북한문학의 성립과 그 전개 양상(1) 북

  • 현대시강독 1940년대 한국시 1940년대 한국시 시대벅 배경 1940년대 한국시 친일시 저항시
  • 현대시강독 1940년대 한국시목 차1. 1940년대의 시대적 배경과 시문단의 상황1.1 『해방기념시집』2. 해방 전ㆍ후 문학2.1. 친일시2.1.1. 친일시의 전개2.1.2. 친일 작가2.1.2.1. 이광수 2.1.2.2. 김동환 2.1.2.3. 김종한 2.1.2.4. 노천명2.1.2.5. 서정주 2.1.3. 교과서에 수록된 친일시 2.2. 저항시2.2.1. 저항시의 전개2.2.2. 저항 시인2.2.2.1. 이육사2.2.2.2. 윤동주 2.3. 좌익계열 (조선문학가동맹)2.3.1. 임화 2.3.2. 오장환2.3.3. 김기림 2.3.3. 정지용 2.4. 우익계열2.4.1.

  • 오장환(吳章煥)론 - 오장환의 시적경향 & 이식된 근대 도시문명 비판
  • 오장환은 생명파 시인으로 불려지게 된다. 또한 【낭만】은 민태규 등이 중심이 되어 이용악, 임화, 박세영, 윤곤강, 이찬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그는 1937년 3월에 다시 일본 명치대학에 입학하였고, 【자오선】 【자오선】은 1937년 11월 창간되었다. 오장환은 여기에 「황무지」, 「신부의 노래2」등을 실었다.동인으로 참여하여 시작 활동을 하였다. 그해 8월 첫 시집 『성벽』이 자비로 풍림사에서 간행되었다. 오장환은 다음해 아버지의 사망으로 명

  • 미당(未堂) 서정주 - 작품 경향과 변모 과정
  • 노래했다는 점에서 인연설을 찾을 수 있고, 「추천사」와 「춘향유문」에서는 동기는 다르지만 같은 윤회사상을 엿볼 수 있다.(4) 『신라초』(1961), 『동천』(1968)서정주가 그의 인생관의 정립을 위해 정신적 지주로 삼고자 한 것이 신라요, 신라정신이다. 우리도 지난날에는 언젠가 한 번 꽃핀 듯 산 때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그에 해당되는 나라가 신라였다. 그가 말하는 신라정신 김재홍, 한국현대시인연구, 일지사, 1986. p337-338이란 고답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