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연구 안티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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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안 티 고 네
<외재적 접근>
1. 시대적 배경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의 아테네에는 정치, 철학, 과학, 그리고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들이 있었다. 서양 연극이 태동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서양 연극이 태동하는 데에는 그에 필요한 다수의 조짐들이 있었는데 기원전 5세기 훨씬 전에 이미 이집트와 페르시아 그리고 그리스 등 지중해의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문명들이 발전해 왔다. 도자기와 이집트의 아비도스와 같은 정교한 조교 의식의 거행, 그리고 과학, 천문학, 수학 등의 발달이 선행되어 예술 발전의 초석을 이루었다. 아테네는 이러한 전통을 더욱 발전시켰다. 이 시기에 그리스는 군주 국가도 아니요 연합 국가도 아닌 도시 국가로, 일련의 독립된 도시 국가들이 그리스 반도와 인근 도서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원전 5세기 초, 가장 강력한 도시 국가는 아테네였다. 이 무렵 페르시아는 그리스를 정복하려고 했지만 그리스는 페르시아를 물리쳤다.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약 27년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알려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큰 전쟁이 있었다. 그러나 위 두 전쟁 사이에 아테네는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시대를 구가하게 되는데 소위 고전 시대 또는 그리스의 황금 시대라고 알려진 시대가 바로 이 시기인 것이다. 이 시기를 "황금 시대"라고 부르는 주된 이유는 이 기간 동안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아테네가 민주주의의 진원지로 꼽힌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기원전 510년 아테네의 통치자들은 모든 남성 시민들이 정치와 행정에 관여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완성했다. 물론 노예나 비아테네인들은 제외되었다. 아테네에는 노예도 있었고 여성들의 정치 참여권도 없었지만,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1865년에서야 노예 제도를 폐지하였고 1920년에야 비로소 여성들이 투표권을 갖게 된 사실 등을 감안해 보면,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시대를 앞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고대 아테네가 이룩한 민주주의는 매우 모범적인 것이었다. 기타 다른 분야에서도 앞선 발전된 면모를 보였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같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세계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리고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사회과학으로 변모시켰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과학의 발견도 이루어졌다.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기하학의 초석이 된 이론 체계를 완성했으며, 오늘날까지 의사들의 선서에 인용되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도 이 때에 완성되었다. 고대 그리스는 예술과 건축으로도 주목할 만했다. 이 시기에 완성된 그리스의 조각들은 전 세계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으며 아크로폴리스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은 비록 세월과 자연재해에 깎이고 파여 기둥과 일부만 남아 있지만 오늘날까지도 건축가들에게 모델로 남아 있다. 이 시기가 여러 분야에서 발전된 면모를 보이는 것은 명명백백하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연극인 것이다.
2. 5세기의 비극
그리스 비극에 관한 이해는 거의 전적으로 5세기 3명의 극작가의 작품에 의존한다. 아이스퀼루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그들이다. 역사가들은 현존하는 희곡이 대표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기원전 500년에서 400년 사이에 수많은 극작가가 쓴 1000편이 넘는 희곡 중 오직 3명의 작가가 쓴 31편의 비극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존하는 희곡은 공통된 구조적 특징이 많이 있다. 대부분의 희곡은 작품이 시작되기 전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다음에는 파라도스또는 코러스의 입장이 뒤따른다. 프롤로그가 없으면 파라도스가 극을 시작한다. 현존하는 희곡의 파라도이는 길이가 20행에서 200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들은 코러스를 소개하고 발단을 부여하며 적당한 분위기를 잡아준다. 파라도스에 뒤이은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3개에서 6개까지 숫자가 다양하고 각각은 코러스의 춤과 노래에 의해 분리되며 주된 행동을 발전시킨다. 엑소도스 또는 작품을 매듭짓는 장면에서는 모든 등장인물과 코러스가 무대를 떠난다. 희곡에서 공격점은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기 바로 직전에 시작되어 단지 마지막 부분만 극화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전의 사건에 대한 상당한 분량의 발단이 요구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예를 들면 소포클레스의 <아약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비극은 죽음과 육체적 과격 행위를 무대 밖에서 행한다. 이러한 관습 때문에 사자는 다른 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전달하는 데 빈번하게 사용된다. 대부분의 극에서 극적 행동의 시간은 지속적이나 (아이스퀼루스의 <아가멤논>에서처럼)전형적 유형에서 벗어난 작품도 몇 편 있다. 현존하는 그리스의 모든 비극은 신화나 역사에 근거한다. 그러나 각 작가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각색하고 (종종 신화에는 없는) 등장인물과 행동의 동기를 창조해냈다. 그리하여 비극작가들은 같은 이야기에서 출발했어도 매우 다양한 해석을 제공하는 결말을 이끌어낸 것이다. 5세기 말에 창작했던 아가톤이 처음으로 비극을 위한 이야기를 개발했다고 추정되나 그의 실례가 널리 추종되지는 않았고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은 전혀 없다. 그리스 극작가들은 수많은 세부 사항보다는 과감한 필치를 더 선호하였기에 사건의 숫자나 인물의 특성이 매우 간결하였다. 인물 묘사에 있어 신체적, 사회적 양상에는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심리적, 윤리적 특징을 강조했다.
3. 소포클레스의 생애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한 사람인 소포클레스는 기원전 497년 아테나이 근교 콜로노스에서 부유한 무기 제조업자 소필로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이스퀼로스가 전사로서 참전했던 것을 자신의 묘비명에 새기게 할 만큼 자랑스럽게 여겼던 기원전 490년의 마라톤 전투 때 소포클레스는 예닐곱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으나 10년 뒤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동맹군이 승리했을 때는 그는 소년 합창단의 선창자로서 이 승리를 신에게 감사드리는 찬신가를 선창한다. 열다섯 살쯤 된 소년으로서 살라미스의 승리를 감사드리는 찬신가를 선창했다는 기록에서 우리는 소포클레스가 상당한 음악적 재능과 뛰어난 용모의 소유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아이스퀼로스가 그의 창작 활동의 초기에 그랬듯이, 비극 작가가 곧 배우로서 활동하던 당시의 관습에 따라 무사 여신들에게 노래 시합을 자청했다가 져서 그 벌로 장님이 되고 만 트라케의 전설적인 시인 겸 가인인 타뮈리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초기 작품 [타뮈리스]에서 키타라를 들고 등장했는데, 키타라를 들고 있는 소포클레스의 모습은 나중에 폴뤼그노토스에 의하여 채색주랑에 그려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오뒷세이아] 제 6권에 나오는 나우시카아 공주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 [나우시카아]에서는 공놀이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 그는 목소리가 너무 작아 배우로서의 활동은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소포클레스는 람프로스에게 음악을 배웠는데 람프로스의 음악은 핀다로스의 송시들처럼 진지하고 절도가 있어, 에우리피데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티모테오스의 음악처럼 거칠고 사실적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비극의 작시에 있어 그의 스승은 아이스퀼로스였다고 한다. 물론 두 시인 사이에 개인적인 친분이 없지 않았지만, 이 말은 소포클레스가 처음에 아이스퀼로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뜻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소포클레스 스스로도 자신은 먼저 아이스퀼로스의 화려함에서 벗어난 후 자신의 엄격함과 기교성을 극복하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등장인물의 성격에 맞는 최선의 문체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소포클레스는 그의 나이 서른이 안 된 기원전 468년에 3명의 비극 작가가 참가하는 대디오뉘소스제의 비극 경연에서 [트리프톨레모스]가 포함된 그의 첫 4부작으로써 아이스퀼로스를 누르고 우승한 뒤로 대디오뉘소스제의 비극 경연에서만도 모두 18번 우승한다. 아이스퀼로스가 13번, 에우리피데스가 그의 사후에 있은 1번을 포함하여 5번 우승한 것과 비교하면 아테나이에서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비극 경연에서 3등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기원전 415년처럼 우승한 시인과 2등한 시인의 이름이 밝혀진 해에는 그가 비극 경연에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모두 123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나 그 중 114편의 작품명이 알려져 있고,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후기 작품들인 비극 7편뿐이다. 그러나 1911년 발견된 파피루스에 의하여 우리는 그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사튀로스 극 [추적자들]을 이에 추가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온전하지는 않지만 그 줄거리를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소포클레스는 드라마 외에도 비가들과 찬신가들 그리고 [코로스에 관하여]라는 산문을 썼다고 하는데, 자신은 이상적인 인간을 그리고 에우리피데스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그린다는 그의 발언과, 앞서 말한 바 있는 그의 문체의 3단계에 관한 언급과, 그이 공적의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는 코로스의 수를 12명에서 15명으로 늘리는 문제에 관한 그의 견해 등의 출전이 바로 이 책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소포클레스는 대체로 전통을 존중하는 편이지만 비극의 개혁을 위하여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인 결과, 마치 아이스퀼로스가 제2의 배우를 추가함으로써 그리스 비극의 창시자가 되었듯이 그는 제3의 배우를 추가함으로써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가 되었다. 그 밖에도 그는 무대의 배경화를 도입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비극 3부작에서 3부작 모두가 하나의 소재를 다루는 내용 3부작이라는 아이스퀼로스의 기법을 버리고 개개의 비극이 그 자체로서 완결성을 갖도록 했는데, 이는 인간 운명의 주역을 신이 아닌 인간으로 보는 그의 인생관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퀼로스나 에우리피데스에 비해 정치 문제에 관하여 언급하는 일이 드물지만 실제로는 이 두 시인과는 달리 아테나이의 높은 관직에 자주 취임했고 오직 공무를 위해서만 아테나이를 떠났을 뿐 외국의 여러 왕들이 하는 초청에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테나이에 대한 동맹국들의 분담금이 재편되던 중요한 시기인 기원전 443년에 소포클레스는 델로스 동맹의 재무관에 취임했고, 그 뒤 사모스의 반란을 진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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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이디푸스왕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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