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대를 중심으로 살펴본 조선의 대외 관계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 유구국 왜구 일본 등의 해상세력과의 관계 여진족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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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회과학 고전읽기
- 세종시대를 중심으로 살펴본 조선의 대외 관계 -
- 목차 -
1. 서론
2.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
3. 유구국, 왜구, 일본 등의 해상세력과의 관계
(1) 유구국
(2) 왜구
(3) 일본
4. 여진족과의 관계
5. 결론
1. 서론
우리나라는 저 고조선 시대부터 쉴 틈도 없이 중국과 왕래하였다. 그리고 그 왕래 중 많은 부분이 칼과 창의 왕래였다. 드물게 대등하게 싸우거나 이긴 적이 있었지만 우리 영토를 지키기 바빴다. 고려 건국에 즈음하여 중국과의 싸움이 뜸해졌다. 하지만 새로이 정립된 중국과 우리나라의 관계는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 정도는 지금 양국의 학자사이에 논쟁거리가 되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적어도 대등한 관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적인 강대국이 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변두리의 섬나라에 지나지 않았던 일본, 우리의 북쪽 국경에 접하여 있었던 여진족 등의 나라들이 있었다. 이 나라들은 조선을 끊임없이 노략했고, 외교 관계에 있어서는 조선의 하대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운 내용은 그러했다.
최근 몇 년 새 일본은 이 글과는 관련이 적지만 쭉 해오던 독도관련 망언에 역사교과서 왜곡이라는 레파토리를 추가하여 우리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고 중국에서도 동북공정이라는 이름 아래에 주변국의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교통정리 하려는 움직임에 시동을 걸고 있다.
물론 그런 행동에는 ‘우리의 역사를 자랑스럽고 보기좋게 꾸며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자긍심과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의도 뿐 아니라 지극히 현실의 필요가 개입되어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주로 하여 이들 국가들이 실제로 서로간에 행했던 사건과 행동을 바탕으로 그 관계의 의미, 실제적 위치 등을 파악해 보고 이를 통해 현대에 벌어진 여러가지 논쟁을 어떻게 봐야 할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
우리는 사회과학고전 읽기 수업을 하면서 무엇무엇에 대해 명나라 황제의 허락을 받고, 명나라 사신을 극진하게 대했으며, 명나라에 조공으로 무엇무엇을 얼마나 바쳤다는 기록을 무수히 많이 봐왔다. 이 조공관계는 오래 전 삼국시대에도 행해진 것으로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중국측에서는 이 관계를 고구려 역사를 자국역사에 편입시키는 근거로 이용하고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우리가 받아들이기 불쾌하다고 해서 사실을 부인하고 조선과 중국은 대등한 관계였다고 우기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중국측의 주장은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친 면이 있고, 우리가 국사책에서 배운 내용은 조금 얼버무려 놓은듯한 느낌이 든다. 상황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당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조공 등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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