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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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간 까닭은?
Ⅰ. 머리말
Ⅱ. 본문
1. 역사
(1) 남한산성의 역사
1)삼국시대
2)고려시대
3)조선 시대
4)일제 시대 및 해방 이후
(2) 강화도의 역사
1)삼국시대
2)고려시대
3)조선시대
2. 성곽
(1)성곽의 정의
(2)성곽의 구성요소
(3) 남한산성 vs 강화도의 성곽 비교
3. 우리의 가설
(1)병자호란
(2)시대적 배경 및 정치적 배경에서 본 이유
(3)성곽의 특성 때문?
Ⅲ. 결론
머리말
치욕의 역사일수록 후세에 전달되어 되돌아보게 되는 것일까. 드라마에서 일제 시대를 주요한 소재로 다루는 것도 그 만큼 우리 현대사에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정복자로서의 역사가 없고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에게 침략 당한 역사는 더 큰 상처로 남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 민중들을 신체적육체적으로 고통받게 했던 외세는 대표적으로 세 국가로 기억된다. 비단 근대사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 전반에 걸쳐 한반도로 손을 뻗쳤던 중국, 조선시대에서부터 근대에 이르는 일본, 현재 간접 지배를 하고자 하는 미국이 있다. 그 범위를 조선시대로 좁힌다면 왜란과 호란이 조선 백성들에게 시련을 가장 많이 준 외침으로 꼽을 수 있다. 조선시대 왜란과 호란으로 우리 국토는 황폐해졌고,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에 시달렸다. 특히 호란은 조선의 왕이 무릎을 꿇었던 치욕의 역사이다.
이 치욕의 역사인 호란과 관련된 지명도 많다. 특히 서울 송파 지역 일대의 땅이름을 조사해보면 병자호란(丙子胡亂)과 관련이 있는 땅이름이 꽤 있다. 병자 호란때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투구를 쓰고 용마를 타고 출전했다는 투구봉과 마산(馬山) 그리고 농을 열어 갑옷을 꺼내 입었다는 개룡리(開籠里)가 있다. 병자호란을 맞아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몽진하면서 오금동 뒤에 있는 백로고개에 이르러 "아이구! 내 오금이야!"한 것이 오늘날 오금동(梧琴洞) 또는 오금골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또한 문정동은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 갔다 삼전도로 오는 길에 이곳에서 쉬면서 물을 마셨는데, 그 물맛이 매우 좋아 이 마을에 많이 사는 문씨(文氏)성을 따서 ‘문정’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병자호란이 서북지방일대에 끼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병자호란은 그렇게 잊혀지지 않고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 산성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우리네 부녀가 ‘환향녀’(오늘날 음습한 부녀를 일컫는 말에 어원이 됨)가 되어 돌아와서 이혼을 당하고 세가가 볼모로 청에 붙들려 가게 되었던 병자호란을 좀 더 용감하게 물리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명분만 앞세워서 배금친명책을 주장하였던 선조들은 현실주의적인 외교를 할 수 없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좀 더 공격적인 싸움을 진행했다면 어떠하였을지 궁금해 졌다. 이번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남한 산성일대를 답사한 결과 아타까움만 남았다. 남한 산성 자체는 천험의 요새지였으나, 방어로 일관된 인조 정권의 45일간의 항전은 백성들에게 고통을 남겼고 삼전도에서의 굴욕은 한민족 역사에 치욕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의문점은 하필 남한산성으로 갔는가 이다. 역사적으로 외침이 있을 때 강화도로 피신을 많이 한 까닭에 인조가 강화도에서 항전을 펼쳤다면 역사는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굳이 인조가 남한 산성을 택했던 이유가 단지 일설에 의한 것처럼 ‘말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아서’일까. 따라서 본 보고서에서 우리조원들은 나름대로의 가설을 설정하였다. 강화도와 남한산성의 비교를 통해서 남한산성의 유리한 점에 대한 추정 및 조선의 국내 정치적 상황을 근거로 인조의 선택에 대한 가설을 만들어 보았다.
Ⅱ. 본문
1. 역사
(1) 남한산성의 역사
1)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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