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박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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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박헌호, 식민지 조선에서 作家가 된다는 것 요약정리 및 비판적 읽기
1. 문제의 제한
‘식민지 조선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밝히는 것은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난제다. 왜냐하면 근대문학 ‘장’의 (재)생산구조와 동력에 관한 논의, 식민지성의 문제 등 간과할 수 없는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글의 목적은 제도로서의 한국 근대문학이 근대 매체와의 관련 속에서 어떻게 사회적 위상을 확보했으며, 어떻게 자신을 구조화하고 표현하게 됐는가를 따져보는 데에 있다. 또한 식민지 지식인의 존재양태를 매체와 문학을 기반으로 살펴보면서 식민지 상황과 미디어와의 연관 속에서 작가되기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이 글의 목표이다.
근대 미디어는 하나의 제도이며, 근대의 기획자이자 전파자로서 특유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근대문학의 터전이자 재생산 구조의 핵심인 미디어는 문학보다 사회적 영향력이 더 크다. 기왕의 논의를 검토한 결과 근대문학의 개념적제도적 기원과 그 작동양태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근대문학의 주체인 ‘작가’의 사회적 탄생과 의미화 과정에 대한 연구는 미흡한 실정이다. 따라서 본고는 논의 방향을 ‘매체-문학-작가’ 순으로 하여 그 의미를 논구할 것이며, 1920년대 이후를 대상으로 매체와 지식인의 관계를 살펴보고, 이로부터 작가되기의 사회적 위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2. 식민지 지식인의 존재양태와 미디어
개화의 물결과 망국의 경험 속에서 근대교육의 중요성은 극대화 되었고, 이른바 실력양성론의 열풍에 힘입어 개인의 신분상승 욕구와도 맞물리면서 교육은 식민권력에 의해서나 민족세력에 의해서나 모두 강조되었다.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이나 이태준의 고향과 같은 작품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당시 식민지 지식인의 삶과 그 양태를 각각 보여주고 있다. 대개 지식인의 표상이라 하면 자신의 운명을 집단의 운명과 동일시하며, 당위와 명분, 정신적 가치에 헌신할 각오로 충만한 인간이다. 그러나 그들이 ‘口腹에만 충실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또한 선택의 양극단에는 언제나 독립운동과 총독부 관리가 있었다. 즉 그들의 활동 공간 역시 일제가 허락한 영역일 수밖에 없으며, 항상 제한이나 허락의 범위 안에서 피식민지인의 생활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한편 31운동을 계기로 시행된 ‘문화정치’는 식민권력 스스로가 설정한 합법성의 울타리가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었으며, 이에 조선인들은 사회구조와 제도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인식을 하게 된다. 식민권력의 지배구조와 제도에 대한 균열의 틈새에는 교육을 통한 근대화 보급, 일본 유학생 출신의 조선인 상당수가 사립학교 교사로 진출하는 현상으로까지 이어진다. 교육계와 언론계는 지식인이 대중과 만나는 영역으로 대중을 통해 그들의 영향력이 현실화될 수 있는 공간이다. 낙후된 식민지 현실에서 지식인의 취업공간이 극히 제한적이고, 특히 언론계에 비해 교육계는 다양한 차원에서 지식인의 뜻을 펼치기에 부족하다. 이러한 교육계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식민지 지식인과 언론의 관계는 매우 복잡해진다. 첫째 31운동 이후 매체 발간을 허락한 일제의 의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째 조선인들의 정치적사회적 이익을 대변해줄 기관의 미비에서 오는 언론의 상징성을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출구가 봉쇄된 식민지 상황에서 지식인의 사회적 활동영역, 인정투쟁의 장으로 언론이 부각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점을 차치하더라도 언론의 사회적 위상과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으며, 언론계는 ‘글 쓰는 지식인’의 전통적인 양태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식인이 민중을 계몽하는 직접적인 위치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시대의 지식인들도 인정하는 몇 안 되는 근대 직업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언론매체는 정치 방면의 진출을 차단하는 데서 비롯되었으며, 여기에 종사하는 지식인들도 자신의 사회적 존재의 의미를 확인제시할 근본 지점을 차단당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조선인 언론매체들은 정치적 가치의 조정자가 부재하기 때문에 식민권력과 상충되는 가치의 제시자, 근대화와 민족해방을 향한 대중의 열망에 부응하는 가치의 제시자로서 기능한다. 식민권력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당시 신문의 권력화는 ‘신문정부’라 불릴 만큼 강력했다.
또한 식민지 조선에서 근대적 매체의 역할은 사라져 버린 국가 개념과 유기적인 집합체로서의 개념을 유지하기 위한 물질적 기초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식인의 출판활동을 통한 근대적 ‘사회’의 형성과 분할, 균질화에 기여한 의미에 대해서도 새롭게 검토해볼만한 문제이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미디어에 글 쓰는 행위는 능동적인 참여행위이며, 그 자체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사회화시키는 가치 발현적 행위라 하겠다. 게다가 언론은 전국적 동시성으로 특정 사건, 담론, 개인을 전국적인 것으로 부각시킨다. 미디어만이 지니는 전국적 동시성은 자신의 담론을 사회적인 것으로, 즉 공공의 것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지식인들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즉 언론은 단자화된 근대적 개인을 연결하는 유력한 매개이자 현실 속의 강력한 힘이다. 또한 제도로서의 미디어는 가치중립적이었으므로, 미디어에 무엇을 실을 것인가는 일차적으로는 주체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지식인들은 자신의 색깔에 부합하는 미디어를 창출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으며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투영하고자 노력했다.
지식인의 전통적인 활동영역인 학문분야를 살펴볼 때에도 일제의 억압은 여전했으며, 학문의 대중적 기반은 제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또한 1910년에 비해 1930년에는 일본 유학생의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덩달아 교육계 내부에서도 조선인의 사회적 위치를 제한하는 시도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이 때문에 지식인이 민족적 양심을 지키면서 자신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영역은 극히 제한된다. 그 중에서도 식민지 조선의 미디어는 중층적인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자리 잡고 그 곳에 문학이 깃들었던 것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언론이 지녔던 위상을 반영하듯 신문과 잡지는 많은 지식인들의 일터였다. 문인이 한때 기자를 겸직했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고, 그들의 다양한 독서경험과 어학능력은 식민지의 지적풍토에 매우 긴요했으며, ‘글 쓰는 사람’이란 공통점은 기자와 작가의 친연성과도 연결된다. 그들이 다루는 ‘문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정치면 기사와는 달리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영역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기자와 다른 위상의 존재였다. 작가는 창조자이며 대중문화나 지식인 문화의 형성에 실제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이들이다. 대중문화의 측면에서도 작가들의 역량과 상품성은 탁월한 것이어서 한 시대를 풍미할 만한 현상을 창출했다. 또한 근대문학은 근대가 창출한 제도 속에서 특권적 위치를 누렸으며, 특히 식민지 사회의 정신적 저급함과 비견되는 창조적 일탈을 즐길 수 있었다. 이것이 근대문학 일반의 공통된 측면이라면, 그러한 일탈 속에서도 전체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던 것은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이들의 특수성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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