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 작가의 생애 & 작품경향 및 주요작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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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천상병[千祥炳]
Ⅰ. 작가의 생애
천상병은 1930년 1월 29일, 일본 히로시에서 천두용과 김일선 사이의 2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후 네 살 때 다시 한국으로 나와 어린 시절을 진동에서 살았으며 어린 시절 무척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외할머니와, 이모들과 같이 외가에서 살다시피 했고,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하고, 소학교 때부터 많은 책을 읽었다. 어린 시절을 진동에서 보낸 천상병은 그후 다시 일본으로 갔다가 1945년 해방 후 귀국하여 마산 오동동에 정착하고, 1946년 마산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게 된다. 마산중학교 5학년 때 국어교사였던 김춘수의 영향으로 시에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러던 어느 추석날 마을 뒷산에 올라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있는데 어디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와서 소리나는 쪽을 향해 바라보니 무덤이 몇 개 있는데 사람들이 절을 하면서 울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죽음과 무덤을 생각하면서 그 느낀 감정을 옮겼는데 그것이 첫 추천시 <강물>이다. 이 시는 김춘수 시인의 주선으로 유치환의 추천을 받아 1949년 《문예》지에 실렸다. 마산중학교 5학년 재학 중 《죽순》에 시 <피리>, <空想>을 발표하였다.
1950년 마산중학교 10회로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였고 송영택, 김재섭 등과 함께 동인지《처녀》지 발간한다. 1952년 시 <갈매기>가 《문예》지에 모윤숙에 의해 추천됨으로써 등단하게 된다. 1957년 미등록으로 인해 서울대에서 4학년 1학기로 제적되고, “월급쟁이에는 아무 욕심이 없고 학교 다니기도 싫어 4학년 2학기는 사람들이 생각하면 이상하다고 하겠지만 나로서는 시인 이상의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문인활동에 전념한다. 1964년 당시 김현옥 부산 시장의 공보 비서로 이후 약 2년간 재직하였다. 이 외 그는 특별히 직업을 갖지 않은 채 무직으로 일관한다. 1967년 친한 친구가 북한을 갔다 왔다는 애기를 했는데도, 그걸 고발하지 않아 ‘동백림 간첩단 사건’ 일명 동백림 사건(東伯林事件)은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이다. (‘동백림’은 당시 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을 한자로 음차한 것). 당시 중앙정보부는 대한민국에서 독일과 프랑스로 건너간, 194명에 이르는 유학생과 교민 등이 동베를린의 북조선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교육을 받으며 대남적화활동을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중앙정보부가 간첩으로 지목한 인물 중에는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던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로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천상병 시인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하였다.
“지금의 내 다리는 비틀거리며 걸어다니지만 진실과 허위 중에서 어느 것이 강자인가 나는 알고 있다. 남들은 내 몸이 술 때문이라고 하지만 결코 술 탓만은 아니라는 것, 나만은 알고 있다. 나는 몇 번의 찢어지는 고통에서도 이겨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몸서리쳐진다.”
에 연루되어 체포, 약 6개월간 옥고를 치른다. 1971년 7월에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 육체적ㆍ정신적 황폐, 심한 음주에 의한 영양실조로 인해 거리에서 쓰러져 행려병자로 취급되고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동안 그가 잠적해 있을 때 시인 성춘복, 민영 등의 노력으로 청상병 시인이 죽었다고 하여 원고를 모아 유고시집 <새>가 나왔다. 살아 있으면서 유고시집을 만든 이변을 남겼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초기의 낭만적 현실인식의 경향은 죽음과 현실 초월의 경향으로 기울게 된다. 가난과 육체적, 정신적 황폐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편들이 순수와 절제를 지향하는 특징을 지닌다는 점에서 비용이나 베르렌느 같은 시인이 비견되기도 하였다. 결혼 전 주요 작품으로는 <갈대>, <강물>, <갈매기>, <무명>, <푸른 것만이아니다> ,<새>,<새ㆍ2>, <간 봄>, <귀천>, <미소-새>, <나의 가난은>, <소릉조>, <그날은>, <편지>가 있다.
1972년 5월 14일, 김동리의 주례로 친구 목순복의 누이 동생인 목순옥과 결혼한다. 결혼한 그는 시 세계에 큰 변화를 겪에 된다. 생활 주변의 자연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객관적으로 시 속에 담고자 했다. 1979년 시집『주막에서』, 1984년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1985년 『구름 손짓하며는』, 1987년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을 출간한다.
1088년 급성 간경화증으로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통고받고 죽음 직전까지 갔으나 부인의 지극한 간병으로 기적적으로 소생한다. 1989년 3인(三人)시집『도적놈 셋이서』, 시집 『귀천』, 1990년 산문집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1991년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등을 출간함으로써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다. 1993년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발간한다. 4월 28일, 천상병은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8월,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가 출간된다. 주요 작품으로 <내 집>, <수락산변>, <비>, <약수터>, <행복> ,<길>, <막걸리>, <참새> ,<내가 좋아하는 여자> ,<난 어린애가 좋다>, <하나님은 어찌생겼을까?>가 있다.
Ⅱ. 작품경향 및 주요작품 해설
『천상병 전집』을 텍스트로 삼아 크게 초기시, 중기시, 후기시로 나누었다. 이것은 시인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그의 시적 상황과 특징을 토대로 나눈 결과이다. 순수 서정의 세계를 꿈꾸며 방황하던 1970년대 이전의 시들은 초기시, 결혼 후 정착과 안정된 삶에서 일상적 행복을 누리던 1970년대 이후 시들이 중기시, 천진한 동심으로 종교적 삶을 살던 1980년대 이후 시들을 후기시로 구분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시기별로 드러나는 특징들과 함께 세상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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