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입문 고구려의 수당전쟁 살수대첩과 안시성의 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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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국사입문>
고구려의 수당전쟁
(살수대첩과 안시성의 혈전)
Ⅰ.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1. 충돌원인
589년 중국은 위진남북조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를 통일한 수나라가 등장했다.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자 그간 남조와 북조, 북방의 유연과 돌궐 고구려 사이에 균형이 맞아 유지되어오던 국제 질서는 급격히 무너졌고, 주변 제국들은 긴장하였다. 고구려도 남북조 분열 속에서 북쪽 경계의 안정을 누렸던 외교 전략을 전면 개편해야 했다. 더구나 수나라의 입장에서도 통일 왕조로 들어선 수나라가 경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돌궐과 거란, 말갈 등에 대한 상권을 장악해야 했는데, 이를 이미 고구려가 쥐었으니 수나라는 이를 놓고 고구려와 패권을 다투어야 했다.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은 곧 문명의 번영과 생존을 좌우할 만큼 중요했기 때문에, 두 나라는 총력전을 준비하게 된다.
2. 전쟁의 시작
- 수나라의 1차 침입
고구려는 안으로 수나라와 있을 결전을 준비하면서 밖으로는 저자세 접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쟁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 준비를 마친 고구려는 먼저 공격하였다. 598년 영양왕은 말갈병 10,000명을 직접 거느리고 요서를 공격하였다. 이 선제 공격은 실패하였지만, 공격을 한 이유는 요서 지역 거란과 말갈에 대한 지배권과 상권을 둘러싼 수나라와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수나라 문제는 이에 분노하여 수륙 30만 군사를 일으켜 고구려를 쳐들어왔다. 그러나 수나라가 보낸 병력은 홍수와 태풍과 전염병을 만나 막대한 피해만 입은 채 성과 없이 끝났다. 수문제는 고구려를 정벌하려는 엄두를 더 내지 못한 채 죽었다. 수와의 1차 전쟁의 결과 고구려는 요서지방에 대해 확고한 지배력을 갖게 되었고, 수로 하여금 10여 년 간 고구려를 넘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저들의 자존심을 심하게 훼손하는 것이었기에 수가 다시 침입할 위험은 여전했다.
- 2차 침입과 살수대첩
수의 1차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612년에 수양제는 110만이 넘는 대군을 끌고 다시 고구려를 침략했다. 수양제는 부왕인 수문제를 시해하고 제위에 오른 그야말로 야심만만한 인물이었다. 그는 대운하를 건설하는 등 대대적인 토목사업을 벌이는 한편, 총동원령을 내려 고구려 원정에 나섰다. ‘삼국사기’와 ‘고구려본기’에 따르면 이때 동원된 수나라의 군대가 육군만 1,133,800명이고, 뒤에서 군수 물자 수송을 담당한 병력은 두 배에 달했다고 한다. 군대와 병력이 차례로 출발하는 데만도 무려 40일이 걸렸다고 하니, 그 규모가 엄청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고구려에는 명장 을지문덕이 있었다. 을지문덕은 적군이 지치도록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수나라 군대가 야영하려고 진칠 때를 기다렸다가 수시로 공격해 쉬지 못하게 하고, 격분한 적군이 쫓아오면 후퇴하기만 할 뿐 정면 대결을 피하였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수나라 군사는 지쳐갔고, 빨라진 진격으로 보급이 끊기자 굶주림에 시달렸다. 후퇴만 하는 고구려 군사를 쫓아 수나라의 대군이 평양성 밖 30리 근처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전투 능력을 상실하였다. 이러한 적의 실상을 간파한 을지문덕은 적장 우중문을 희롱하는 내용으로 오언시를 지어 보내고 거짓 항복하였다. 이는 거짓 계략에 빠졌다는 심리적 불안감을 고조시켜 적군의 통수 체계를 무너뜨리려는 을지문덕의 전술이었다. 거짓 항복이라도 항복 문서를 손에 넣어, 철수하여 수양제에게 보고할 구실을 얻은 우중문은 회군을 명령하였다. 헛되이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적장에게 철수할 구실을 주지 않으면, 궁지에 몰린 대군이 오래 머물며 민간에 피해를 줄 수 있었으므로 을지문덕이 거짓 항복한 것은 시의적절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을지문덕은 물러나는 수나라 병력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후퇴할 길을 열어주면서 기회를 엿보던 고구려군은 수나라 군대가 살수(청천강)를 건널 즈음에 집중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30만을 웃돌던 수나라 별동대 중에서 압록강을 건너 살아간 자는 2,700명에 불과했다 한다. 이것이 유명한 살수대첩이다. 수양제는 싸울 의욕을 완전히 잃고 지친 군대를 이끌고 퇴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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