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의 역사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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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곡물의 역사
서론: 250만 년 전에 살았던 선사인 들의 유골에 남아 있는 이빨을 통해서, 그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음을 알아냈다. 송곳니와 앞니가 아주 작고 이빨의 마모가 아주 심했다는 사실에서 최초로 먹기 시작한 것은 식물임을 말해주고 있다. 식물은 섬유질이 많아서 잘 씹어야하기 때문에 그것이 채소 종류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인류와 문면의 발달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가장 기본조건인 먹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투쟁과 갈등 속에서 이어져 왔는데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결국 먹거리로 인한 것들이 많았음을 볼 수 있다. 원시시대부터 어떤 음식을 먹는가는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문명이 발달하고 상업적 또는 문화적 교류가 확대되면서 식생활은 다양하고 정교하게 변했으며, 먹거리가 사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요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본장에서 인간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곡물의 발달과 종류, 곡물이 인류에 미친 중요한 의미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본론: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의 남긴 유적에서 발굴되는 탄화된 곡물은 시간이 지나도 변질되지 않기 때문에 당시의 생활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알려 준다. 소화가 잘 안되고 벗기기 힘든 곡물의 껍질을 제거하지 위해서 곡물을 볶아서 먹었다. 그런 단순한 요리가 사람들을 곡물이 풍부한 지역에 함께 모여 살도록 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다가 도구와 식량을 관리할 필요가 생겼고, 사냥이나 유목생활보다 덜 위험하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게 되고, 인구가 늘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농업을 시작하면서 곡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농경생활이 시작되던 전환기의 사냥꾼들이 살았던 터키 남부의 타우루스 산맥, 이란 남서부의 자그로스 산맥 그리고 터키의 선사 주거지를 살펴보면 선사인 들이 곡물을 이용하면서 유목생활을 포기했음을 알 수 있다. 타우루스, 자그로스, 이집트, 누비아 지역에 정착했던 사냥꾼 들은 채취한 곡물을 빻기 위해서 돌을 이용해 절구와 맷돌을 사용했다. 그리고 초식동물도 사육했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 이런 집단생활은 기원전 5000년까지 계속되었다. 지중해 동쪽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서는 기원전 1만년에서7000년부터 강가에서 보리와 밀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홍수로 생긴 퇴적층에 씨앗을 뿌려 재배한 곡물의 품질은 야생곡물과 비슷했을 것이다. 기원전 3000년경에 나일 강 계곡에서 자그로스 산맥에 이르는 지역과 인더스 강 유역에 이르는 지역의 사람들이 강물을 이용하는 관개기술을 개발하게 되었고, 지하수로를 이용하던 지역도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땅을 경작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고, 단순히 씨앗을 뿌리고 채집을 했을 수도 있다. 시리아의 유프라테스 강변에서는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에 생산된 곡물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곡물의 흔적이 발견된 곳은 곡물이 자생하는 지역으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일 뿐만 아니라, 발견된 곡물의 양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곳에서 재배했던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유전학적으로 우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대아 산에서 가까운 요르단 강 서쪽의 예리코(또는 여리고)에서 기원전 10세기경부터 본격적인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수렵 채취인들의 주거지인 이곳에서 발굴된 화석화된 보리와 밀은 씨앗이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는 종이었다. 그런 특성은 야생 곡물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며, 품종의 개량을 의미하는 것이다. 1만 년 전의 에리코 지역 사람들의 거주지 근처에 외알밀, 에머밀, 보리를 재배하기 위한 밭을 만들었다. 외알밀과 에머밀은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진짜 밀이었다. 밀과 보리는 물이 있는 오디 근처에 있는 진흙과 모래가 섞인 곳에서 잘 자랐다. 에리코 지역에서 밀과 보리 같은 곡물과 렌즈 콩 및 완두도 재배했던 선사인들은 구석기 말기로는 놀라운 규모의 4헥타르의 마을을 형성했다. 근동과 중동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집단 주거지를 텔이라고 부른다. 야르노의 가장 오래된 층에서 7000년이나 된 것으로 보이는 두 종류의 밀과 한 종류의 보리가 발굴되었다.
키프로스 섬에 있는 기원전 6000년에 형성되었던 키로키트라 유적에서는 에머밀이 발굴되었고, 염소와 양을 사육했던 흔적도 발굴되었다. 시리아 북부에 있는 무레이트 텔의 가장 오랜 된 층에서는 품질이 나쁘고 잘 부서지는 외알밀이 발굴되었지만 재배한 밀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발칸반도에서 해안 지역을 제외한 지역과 아나톨리아로부터 이란 고원의 북부에 이르는 지역에 살던 사람들도 기원전 6000년부터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관개기술을 개발하여 건조지역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곡물재배는 양 사육과 함께 마케도니아로부터 중부 유럽을 거쳐서 도나우 강, 마리차 강, 모라바 강까지 이르렀고, 그리스서부,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 프랑스남부 코르시카, 사르데냐, 시칠리아와 같은 섬지역과 아프리카 북부에까지 전해졌다. 근처에서 충분한 사냥감을 찾을 수 있었던 도르도뉴 지방의 사람들도 기원전 8000년경부터 야생풀을 먹었다는 증거가 남아 있다. 스위스, 이탈리아 북부, 스페인 등의 지역에서 발굴된 낫이나 칼도 기원전 5000년경에 원시 농업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코바 데 오로 유적지는 집을 짓고 살던 근동지역의 사람들과는 달이 바위에 동굴을 뚫고 살았고, 이곳에서 네 종류의 밀과 두 종류의 보리가 발굴된 것은 확실한 곡물재배의 증거가 되고 있다.
최초의 원시종 밀은 진화를 거쳐 현대의 밀의 형태를 갖게 되었다. 백인들이 아메리카로 이주하기 전에는 구대륙에서만 밀이 재배되었다. 카를 5세는 1520년 처음으로 신대륙에 밀을 보내도록 허용하였고, 일본에서는 기원전 7000년경부터 기장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재래종인 기장을 먹고 살았고 밀은 훨씬 이후에 재배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중국에서 많이 수비하고 있는 기장은 인도를 거쳐서 아프리카와 남부유럽으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4세기경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때 중국으로 전해진 밀은 추운 북부와 더운 남부에 모두 적당하지 않았고, 남부 지역에서 쌀을 재배하게 된다.
곡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최초의 기록은 바빌로니아의 함부라비 왕이 만든 함부라비 법전이었다. 이 법전에는 각종 농산물에 부과되는 세금이 적혀 있고, 보기 가격에 의해서 값이 결정되는 맥주에 대한 기록도 있다. 바빌로니아 시대의 곡물 공급에 대한 기록이 담긴 세 종류의 점토판도 있는데 거기에는 기원전 2400년의 곡물 공급량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기원전 1750년에 만들어진 엘레이티아 무덤에서 발굴된 벽화에는 추수하는 장면이 들어있다. 이 벽화에는 거의 1미터에 가까운 줄기에 털이 달린 곡물의 그림이 많다.
기원전 15세기에 알파벳을 발명했던 페니키아인들은 밀짚을 묶어서 바닥에 늘어놓고, 소가 밟게 해서 껍질을 벗기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러나 빻는 기술이 개발된 것은 그 후에 일이었다. 에게 지역의 사람들은 곡물을 저장하기 위해서 피토이라고 하는 큰 항아리를 썼다. 이 항아리에 기장, 보리, 밀을 넣어서 서늘한 창고에 저장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이집트와 근동지역에서는 밀밭의 잡초였던 귀리도 재배해서 죽을 끓이는 데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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