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링거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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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링거 건축
1.카롤링거왕조의 건축-로마네스크
로마네스크에서 건축사적으로 중요성을 갖는 시기는 샤를마뉴가 통치했던 768~814년이다. 그는 또 한 명의 걸출한 대제로, 프랑크 왕국의 기초를 닦아 서북유럽의 독자적 문명이 탄생하는 길을 열었다. 중세까지 많은 황제와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건축은 중요한 활동이었다. 이번에는 아헨의 왕궁과 수도원의 두 곳을 중심지로 삼았다. 왕궁은 세속권력의 중심지로서 정치, 행정, 제도 등을 담당했고 수도원은 종교적 중심지로 문화, 예술, 학문 등을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찾아내어 동원한 건축술은 어쩔 수 없이 로마의 것이었다. 8세기 중반에 가장 발달한 건축술은 비잔틴 것이었지만 비잔틴은 이미 너무 멀고 이질적인 문명이 되어 있었다.
카롤링거 건축은 이처럼 공간 구성 등에서는 초기기독교 건축과 구별되는 분화, 발전을 이루었으나 이것을 짓는 시공기술은 로마의 건축술을 총 집대성해서 부활시켜 사용했다. 로마네스크라는 단어 자체가 ‘로마답다’라는 뜻을 가진 점은 이런 현상을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2.아헨 왕궁 예배당과 중앙 집중형 공간의 정리
프레-로마네스크 건축에서는 중앙 집중 형과 선형의 두 교회 양식 모두에서 중요한 발전이 있었는데 아헨 왕궁 예배당은 전자를 대표했다. 새로 발명한 내용은 많지 않지만 산 비탈레 성당의 팔각형 겹 공간과 복층 갤러리 구성을 빌려와서 서북유럽에 맞게 정리함으로써 로마네스크 건축으로 발전해 갈 바탕을 닦은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제일 큰 발전은 수직성이 증가하고 벽체가 두꺼워졌으며 모듈이 등장하는 등의 정리가 있었다는 점이다. 중앙 공간의 지름 대 높이의 수직 비율이 산 비탈레의 1.78에서 이곳에서는 2.1로 커졌다.
이는 게르만족의 역동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조형적으로 볼 때 지중해의 고전주의를 수평선에, 게르만 정신을 수직선에 각각 대응시키는 것이 통례인데 이것이 반영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갤러리의 층수가 2층에서 3층으로 증가했으며 이를 구조적으로 안전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벽체, 아치의 아키볼트와 피어, 기둥 등 모든 내력구조가 두꺼워졌다. 산 비탈레의 벽체 두께가 평균 0.8~1미터였던 데 반해 이곳에서는 1.3~2미터로 두 배 가까이 두꺼워졌다. 중세건축이 고전주의와 대비되어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강한 수직선이라고 볼 때 이미 이곳에서부터 수직으로 치고 오를 준비가 이루어진 셈이다.
더 중요한 것은 석조 볼트로 천장을 덮었다는 점이다. 이는 초대교회와 중세교회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초기 기독교 건축까지는 목조 평천장이 표준구성이었던 데 반해 중세교회에서는 석조 볼트 천장으로 바뀌는데 이 건물이 그 출발점이 된 것이다. 아헨 왕궁 예배당에서는 수직성 이외에 석조의 육중함이나 물성 등을 표현하려는 종합적 목적 아래 로마 조적기술을 종합화했다. 실제로 샤를마뉴는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콜로세움으로 대표되는 로마의 원형극장 조적기술을 참고했다. 샤를마뉴는 로마 부흥 운동을 일으키며 개인적으로 콜로세움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정치적으로는 스스로를 로마제국을 알프스 이북지역으로 옮겨 새로 세운 대제로 정의하고 싶어 했다. 이 건물의 직접적 영향을 보여주는 예로 독일 오트마르스하임의 수도원 교회, 네덜란드 니메헨의 예베당, 벨기에 리에주의 성 요한 등을 들 수 있다.
3.선형공간의 확장과 강화
중세 시대의 교회양식은 선형공간이 중심이었다. 초기 기독교 건축 때 불완전한 형태로 처음 나타났던 라틴 크로스가 완전히 정착하면서 복잡하게 분화, 발전하게 된다. 이 과정은 길고 복잡한데 그 최종 종착점인 고딕성당의 복잡한 구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카롤링거 왕조 때에는 중세를 향한 선형공간의 첫 번째 분화, 발전이 일어났다. 초기 기독교 건축의 구 성 베드로와 성 밖의 성 바오로를 모델로 삼아 서쪽 출입구, 동쪽 성소, 지하 납골당의 세 지점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이렇게 해서 커진 서쪽 출입구를 웨스트 워크, 동쪽 성소를 이스트 엔드라 각각 부르며 지하 납골당에는 환상형 겹 공간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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