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답사-부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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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집합 장소 및 이동 경로
2. 장소별 관련 작가 및 작품 소개
1) 윤동주 문학관
2) 창의문
3) 현진건 집터(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325-2)
4) 석파랑(석파정 별당)
5) 춘원 이광수 홍지동 산장터
6) 세검정
본문내용
2. 장소별 관련 작가 및 작품 소개

1) 윤동주 문학관

(1)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윤동주

윤동주는 간도 명동 촌에서 출생하였다. 당시 조부 윤하현은 개척에 의한 소지주로서 기독교 장로였고, 부친은 명동학교 교원이었다. 이후 윤동주는 명동 소학교에 입학하여 5학년 때에는 급우들과 함께 《새명동》이란 등사 잡지를 만들었다.
1932년 4월, 윤동주는 명동에서 20리 서쪽에 있는 소도 시인 용정의 기독교계 학교 은진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은진중학교 재학 시절「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 다」 등 3편의 시 작품이 써진다. 이 3편은 오늘날 찾아 볼 수 있는 최초의 작품이다. 이때부터 윤동주는 자신의 시를 지은 날짜를 명기 하면서 상당히 잘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평양 숭실 중학교로 편입한 윤동주는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저항하여 동맹퇴학을 감행하였다.
윤동주는 22세가 되던 해에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1학년과 3학년 땐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 윤동주가 지낸 기숙사는 핀슨홀로 현재 윤동주 기념관이 이 핀슨홀 2층에 있다. 하지만 1학년 초반 윤동주는 기숙사를 나와 종로 누상동 9번지, 소설가 김송씨 집에서 하숙 생활을 한다. 이때의 경험은 윤동주의 문학적 경험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윤동주는 연희전문대학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작품을 모아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본래 예정했던 시집 제목은 병든 사회를 치유한다는 상징인「병원」이었으나 「서시」가 쓰인 후 위와 같은 제목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윤동주는 같은 시고집 3부를 작성하여 가장 존경하는 교수인 이양하 선생과 친한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증정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제의 검열에 의해서 시가 통과되지 못할 것이라는 이양하 교수의 권고에 의해 윤동주는 출판을 단념하게 된다. 정병욱이 받게 된 시고집 1부는 정병욱이 학병으로 글려가기 전에 자신의 집에 소중히 보관해 달라고 어머니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윤동주의 시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정병욱 보관본에 의한 것이다
1941년 말 윤동주는 일본에 유학하여 대학과정을 밟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때 일본에 유학하고자 하려면 필수적인 것이 ‘창씨개명’이다. 윤동주는 도일 수속을 위하여 성씨를 히라누마라 창씨하게 된다. 창씨계를 제출하기 5일 전인 1월 24일의 시작품 「참회록」은 고국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 된다. 참회록은 일제가 강요하는 창씨개명에 굴복한 자신을 참회한 것이다.
1942년 4월 2일, 윤동주는 동경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 선과에 입학하였다. 입교대학 시절인 4-6월의 시작품 「쉽게 씌어진 詩」를 비롯한 5편을 서울의 한 친구에게 우송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발견할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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