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유럽의음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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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23 /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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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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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食)
유럽의 음식문화
음식을 통한 문화의 융합
계층 사이의 달라지는 음식 문화
食道樂
페스트, 그 후 고기와 생선
물=술=차=음료수 ??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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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갖는 의미
그렇게 고기섭취와는 점점 멀어지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빵이 아닌 다른 음식들은 빵에 대한 부가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빵(panis)'이라는 이름 의 어원 자체가 원래 '다른 음식과 함께 먹는다(asponatur)' 라고 하는데 이와 비교할 때 완전히 뒤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빵은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당시 농토는 “빵이 나는 땅” 이라고 표현했고 농업은 “빵의 수확” 이라고 했으며 지대는 빵을 단위로 계산하고 재산목록에 빵의 양을 기록할 정도 였다고 한다. 당연히 빵을 만드는 ‘반죽통’은 가정 내 가장 중요한 물품이였을 것이고, 한 집에서 사는 가족은 ‘같은 빵을 먹는 사람(ad unum panem)’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한솥밥 먹는 사람’ 과 비슷한 표현인데 한편 여기서 우리나라에서 쌀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많이 나오는 어휘중에 하나가 바로 ‘기근’ 인데 그만큼 많은 기근을 겪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수많은 기근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흙이나 풀을 섞은 빵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이상한 풀을 캐다 먹기도 했으며 수확기가 올 때 까지 수도원에서 양이나 소의 고기나 젖을 배급 받으면서 살기도 했다고 한다. 점점 그런 생활을 하면서 몇 세기 후에는 점차 “곡물 농사가 아니면 생존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빵이 중요해 지자 계층 간 음식 소비문화는 같은 빵 안에서도 형성 된다. 밀로 만든 흰 빵은 다른 호밀이나 보리로 만든 검은 빵에 비해서 훨씬 값어치 있고 귀한 음식 이였다고 한다. 귀족과 농부 그리고 도시와 농촌의 생활은 검은 빵과 흰 빵에 의해서 구분되어 졌고 많은 빈민들이 밀로 만든 흰 빵을 꿈꾸며 살았다고 한다.
食道樂
한편으로 그렇게 기근에 시달리고 있을 무렵, 누군가는 예전부터 식도락(食道樂)을 즐기며 살아간다. 유럽에 여러 가지 향신료들이 수출될 무렵부터 였을까.(물론 그 이전에도 음식의 멋을 즐기는 사람은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 후추나 생각이나 하는 향신료들은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구할 수 없다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도 그랬겠지만 그 당시 동양에 대한 신적인 이미지가 큰 한몫을 했었나 보다. “꿈 속의 수평선”이라고 동양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이를 서술하자면 이렇다. “동양은 지상낙원 너머에 위치해 있다 그곳은 풍요와 행복의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백 년을 산 사람. 상록수. 신성한 불사조 등이 사는 장생불사의 나라이고 향신료는 바로 그 낙원에서 혹은 그 너머의 동양에서 나는 것이다. 주앵빌에 의하면 나일강의 한 어부가 그물을 잡아당기자 그 세계에서 나는 상품들, 즉 생각. 대황. 샌달나무. 육계등이 가득 차 있었다. 이것들은 지상낙원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 에덴 동산의 나무들에 달려 있던 이 산물들이 바람에 떨어졌다가 강물에 들어간 것이다.” 조선시대에 포르투칼 용병을 보고 검은 괴물이라고 서술했던 글이 갑자기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도 지구 반대편은 신기한데 십여세기전 그당시의 지구 반대편은 어떤 개념이였을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먼 곳에서 전해져 온 향신료들은 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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