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족과 산월족의 관계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4.08.19 / 2019.12.24
  • 8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97)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1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1. 오나라의 필연적인 문제
2. 산월족은 어떠한 민족인가
3. 당대의 인물들이 인식하는 산월족
4. 산월족을 비롯한 호족에 대한 오의 대응
1) 회유책
2) 강압책
5. 호족과 산월족이 오나라에 미친영향
6. 결론
본문내용
1. 오나라의 필연적인 문제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논리가 교차되어 이루어진다. 역사에서 우연을 강조하면 인간의 활동만이 중시되어 사건의 인과관계를 간과하기 쉽다. 반면에 필연 중심적이면 인간의 행위는 사건에 가리게 된다. 따라서 역사적 상황을 파악할 때, 필연과 우연의 논리 중 어느 것을 내세우기보다 양자를 절충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시대성을 그려낼 수 있다. 삼국시대는 인간의 활동이 역동적으로 살아있던 시기이기에 우연이 강하게 작용했다. 난세라는 특수한 상황은 순간적인 선택이 사건의 결과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우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의 연속도 단숨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즉 순간적인 선택으로 상황이 바뀔지라도 그러한 선택이 있기까지 여러 원인이 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연으로 보이는 현상도 필연적인 사건의 틀에 짜여져 있으며 역사에서 우연과 필연은 항상 공존하고 있다.
吳나라는 삼국의 패업을 달성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에 머물러야 했다. 吳나라가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못한 까닭을 吳의 경제력, 군사력, 군주의 능력 등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치명적인 국내문제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山越족과 호족의 반란은 吳나라에 있어서는 가장 큰 골치였으며, 위와 吳를 제압하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숙명적인 과제와도 같았다. 孫權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吳나라의 여러 부장들을 각지에 파견하여 이를 진압하려 노력하였다. 孫堅이 죽을 때 유언으로 호족과 山越족을 진압해 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보아 孫權의 시대뿐만이 아니라 孫堅의 시대에도 호족과 山越족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호족과 山越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각 장수들의 노력은 역사에 있어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참고문헌
1. 진수 저/ 김원중 역,『正史 三國志』권 6, 신원문화사, 1994.
2. 진수 저/ 김원중 역,『正史 三國志』권 7, 신원문화사, 1994.
3. 이공범지음/ 『위진남북조사』, 지식산업사, 2003.
4. 야마구치 히사카즈 저/ 전종훈 역, 『사상으로 읽는 삼국지』, 이학사, 2000.
5. 사마천/ 정범진 , 『史記』「列傳」, 까치 출판사 1994.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동양중세사] 손오정권하의 강남(호족세력을 중심으로)
  • 관계에서 君권보다 우위에 있는 현상이 나타났다.이어 孫皓 말기에 부화한 자가 등용되고 붕당을 이룬 자들이 정치일선에 나가고 있는 것처럼 오말에는 부화문약의 풍조가 유행하고 붕당에 의한 취사가 행해져, 강남 사대부 사회의 귀족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이처럼 손오정권하에서의 호족들은 세병제를 통하여 宮軍을 役使하고 인민을 착취하는 오족의 영주화 경향과 유교적 교의 이념을 체현하여 실천하는 호족의 자기모순적 경향을 동시에 갖고

  • 균전제와 조세제도
  • 족의 사회체제나 혹은 관념에서 구하는 논리는 당시 사회의 핵심적인 특징, 즉 호족(胡族)에 의한 한족(漢族)의 지배체제와 직접적으로 연결하여 균전제를 설명할 수 있어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자칫 남북조의 역사적 현상을 과거와 단절적으로 규정하게 되어 균전제의 역사적 의미가 매몰될 우려가 있으며, 균전제가 최초로 시행된 태화 9년 전후의 북위 관계(官界)에서 한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며 한화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상황이었

  • [역사]태조 왕건의 세계
  • 호족들에게 왕씨 성 같은 것을 주어서 가족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의 강릉인 명주 출신의 김순식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김순식은 본래 경주 김씨인데 왕건과 관계를 맺으면서 왕씨 성을 하사 받아 왕순식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왕건은 귀순해 오는 호적들에게 왕씨의 성을 주어 많은 호족들을 가족관계로 묶어 놓고 수천 명의 호족들에게 공신의 칭호를 주어 포섭하는 방법을 적극 활용했다. 그는 동시에 호족의 농민에 대한

  • ‘호족연합정권설’의 비판
  • ‘豪族聯合政權說’의 비판序言豪族聯合政權說은 獨自性을 가진 豪族들이 상호간의 조약이나 합의를 통해 창출한 정권으로서, 호족과 국왕을 서로 협조적인 ‘호혜적인 관계’로 이해한다. 이 설은 1977년 이기백 선생의 에서 서술된 이래 ‘고등학교 국사(上 )에서도 서술되어 학생들을 비롯한 여러 지식인들이 이 ’豪族聯合政權說‘을 받아들여 당시의 정설로 여겨졌다. 그런데 막상 ’호족연합정권설

  • [일본문화] 일본인과 천황
  • 족의 후예라고 믿고 있다. 이 왜곡된 역사관은 자국민들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내몰았던 황국사관에서 유래한 야마토(大和) 중심사관 고대 일본 국가의 형성이 한반도로부터 이주한 사람들과는 관계없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야마토에서 발생한 야마토 왕조가 1만 년 전인 조몬 시대부터 단 한번의 변고도 없이 일본열도를 지배해 왔다고 보는 민족주의적 사관.2. 일본 천황가의 원류를 밝혀주는‘화상경(畵像鏡)’「癸未年八月日十代王年男弟王在意柴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