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도띠뱃놀이][띠뱃놀이]위도띠뱃놀이(띠뱃놀이)의 축제적 재구성, 위도띠뱃놀이(띠뱃놀이)의 의미, 위도띠뱃놀이(띠뱃놀이)의 띠배, 위도띠뱃놀이(띠뱃놀이)의 전승현황, 위도띠뱃놀이(띠뱃놀이)의 방법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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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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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위도띠뱃놀이(띠뱃놀이)의 축제적 재구성과 의미
1. 제의에서 놀이로
2. 마을굿에서 지역축제로
Ⅱ. 위도띠뱃놀이(띠뱃놀이)의 띠배
Ⅲ. 위도띠뱃놀이(띠뱃놀이)의 전승현황
Ⅳ. 위도띠뱃놀이(띠뱃놀이)의 방법
참고문헌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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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위도띠뱃놀이(띠뱃놀이)의 축제적 재구성과 의미
1. 제의에서 놀이로
위도 띠뱃놀이는 원래 종교적 성격이 강한 마을굿이었다. 현재 ‘위도 띠뱃놀이’라는 이름은 197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이후에 띠뱃놀이로 재구성되면서 만들어진 이름으로 원래 이 마을굿을 가리켜 “정월 초사흗날 제만 모신다”고 하였다. 이 마을굿에서 핵심 절차인 <원당제>-<용왕제>-<띠배 띄워보내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제만 모시기에 중요한 절차였다. 그러나 197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 후, 그리고 1980년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위도의 민속 조사를 한 후 ‘대리 원당제’, ‘띠뱃굿’, ‘띠뱃놀이’와 같은 명칭은 어떤 연행 과정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함의를 담고 있다.
위도 띠뱃놀이는 일상에서부터 특별한 의례에 이르기까지 마을 사람들의 삶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무녀의 역할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무녀는 마을 사람들이 살아서 누려야 하는 명과 복을 기원하고, 그리고 죽은 사람들을 저승으로 천도하는 일을 통해 마을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2. 마을굿에서 지역축제로
위도 띠뱃놀이는 원래 위도면 대리마을에서 행해지는 마을굿이었지만 1978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위도면 대표로 출연하였고 대통령상까지 수상함으로써 위도면 지역의 축제로 부상하였다. 원래 대리의 풍물패는 정월 마당밟이 때 ‘소리’, ‘전막리’, ‘석금’, ‘거륜리’, ‘답구미리’, ‘미영금’ 등 7개 마을의 모든 집들을 다 쳐주었다고 하나 마을 제사만은 각 마을에 있는 제당에서 각각 지내왔다. 그러나 각 마을의 무녀가 사라지고 제의가 단절되면서 대리 띠뱃놀이가 아니라 ‘위도 띠뱃놀이’로 위도를 대표하는 지역굿이 되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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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준(1999), 문화정책과 전통의 재해석 : 위도 띠뱃놀이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 서종원(2011), 위도띠뱃놀이 「원당중수기」(1900년) 연구, 국립목포대학교
◎ 이영금 외 1명(2009), 위도 띠뱃놀이의 연행 구조와 제의적 특징, 한국무속학회
◎ 이영배(2009), '위도 띠뱃놀이'에서 풍물굿의 공연적 특징과 위상, 남도민속학회
◎ 이순자(2005), 전통굿의 관광상품화 방안에 관한 연구, 경기대학교
◎ 하효길 외 1명(1996), 위도 띠뱃놀이의 전망, 비교민속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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