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북한 고인돌][신기리 고인돌][강화군 고인돌][아득이]고인돌의 개념, 고인돌의 특성, 고인돌의 분포, 고인돌과 북한 고인돌, 고인돌과 신기리 고인돌, 고인돌과 강화군 고인돌, 고인돌과 아득이 고인돌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3.07.28 / 2019.12.24
  • 8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5,0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Ⅰ. 개요

Ⅱ. 고인돌의 개념

Ⅲ. 고인돌의 특성

Ⅳ. 고인돌의 분포
1. 화순 고인돌
2. 고창 고인돌

Ⅴ. 고인돌과 북한 고인돌
1. 평안남도 증산군 용덕리 고인돌
2. 평양시 상원군 고인돌
3. 함경남도 함주군 지석리
4. 대동강 유역 고인돌

Ⅵ. 고인돌과 신기리 고인돌

Ⅶ. 고인돌과 강화군 고인돌

Ⅷ. 고인돌과 아득이 고인돌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별자리 문양은 고대인들의 죽음과 탄생에 대한 관념을 반영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이것은 구멍이 새겨진 뚜껑돌의 거의 모든 형태가 거북 등과 비슷하다는 사실로도 설명된다. 원시 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은 거북을 불로장생(늙지 않고 오래오래 삶)하는 길한 동물로 숭배하였다. 고조선 시대의 조상들은 거북을 본떠서 무덤을 만들면, 죽어 저승에 가서도 오래 살 수 있으며 거북 신의 보호를 받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별자리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올라간다는 믿음이 강하게 생겨, 땅의 신인 거북의 등에 하늘 신인별을 새겨 놓아 하늘과 땅이 이어지도록 했다는 이야기다. 또한 무덤 주인의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고대 우리 조상들의 천문학 수준은 주술이나 무속의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과학적인 틀에서 움직였다. 이것은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를 통해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천문도를 만들었다는 것은 조직적인 체계 아래, 하늘을 비롯한 자연 현상을 정기적으로 관찰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세계 고대 천문학계에서는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바빌로니아 토지 경계비(개, 뱀, 전갈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음)를 별자리의 원형(같거나 비슷한 여러 개가 만들어져 나온 본바탕)으로 보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고대 천문학의 발상지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의 토지 경계비는 기원전 1200년쯤에 만들어진 것이고, 우리나라 대동강 유역의 고인돌에 새겨진 천문도는 그것보다 무려 1800년이나 앞서는 것이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가 다른 지역보다 문명이 앞섰고 4대 문명의 발상지라고 내세울 수 있는 커다란 요인 가운데 하나는 체계적인 천문도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인돌 별자리를 볼 때, 이들 문명에 비추어 훨씬 앞선 시기부터 하늘을 체계적으로 관측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 세계의 어떤 민족보다도 우수한 과학적인 소양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참고문헌
ⅰ. 김선욱(2004), 장흥고인돌의 현황과 특성, 세계거석문화협회
ⅱ. 박창범 외 2명(2001), 청원 아득이 고인돌 유적에서 발굴된 별자리판 연구, 한국과학사학회
ⅲ. 유수현(2002), 고인돌문화의 활용방안, 한양여자대학
ⅳ. 하문식(2008), 고인돌의 특이 형식에 대한 연구 :'변형 탁자식 고인돌' 문제와 관련하여, 고려사학회
ⅴ. 하문식(2007), 북한지역의 고인돌과 청동기시대 무덤, 한민족학회
ⅵ. 하문식(1985), 우리나라 고인돌 문화의 연구, 연세대 석사학위 논문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우리나라 보유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보호활동00
  • 개념을 바탕으로 나라의 최고의 권위자로써 왕의 무덤을 신성화하는 전통이 형성되었다. 죽은 왕의 무덤을 웅장하게 만들고 참배함으로써 죽은 왕에 대한 숭배 뿐 만아니라, 현재 살아있는 왕의 권위까지도 더불어 강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었던 것이다.조선왕릉은 전체 42기 가운데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에 있는 40기 모두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되었다. (붙임 조선왕릉 분포 현황 참조) 조선왕릉 42기를 살펴보면, 폐위된 두 명의 왕의 무

  • 세계문화유산과 조선왕릉의 문화유산 유네스코 등재의 의미
  • 북한 소재-  안릉安陵효공왕후미상함남 신흥북한 소재 추존왕익조지릉智陵익조미상함남 안변북한 소재-  숙릉淑陵정숙왕후미상함남 문천북한 소재 추존왕도조의릉義陵도조1342년함남 함흥북한 소재-  순릉純陵경순왕후미상함남 흥남북한 소재 추존왕환조정릉定陵환조1361년함남 함주북한 소재-  화릉和陵의혜왕후미상함남 함주북한 소재 제1대태조건원릉健元陵태조1408년경기 구

  • 세계의음식·음식의세계4)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현대인의 음식생활이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개인적인 판단에서 제시하고, 그 변화의 원인을 환경적 관점, 경제적 관점,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각각 설명하시오. 자신의 고향에 관한 간략한 설명과, 고향의 대표음식 중에서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것 1가지를 들어 음식의 특성을 설명하고, 가장 좋아하는 이유에 관한 배경
  • 강화를 거쳐 수도로 들어가는 해상의 관문적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둘째, 사회문화적 환경이다.강화연안에서의 새우잡이는 불음도, 주문도, 서도, 석모도 근처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수산물 집산지였던 외포리에는 지하 창고가 있어 젓갈류를 저장해 왔다. 외포리 앞 진두바다에서는 특히 백하가 많이 잡혔고 최근 화도면 내리의 선수선착장과 석모도의 어류정 선착장내가면 창후리 선착장에 새우잡이배가 많이 있고 강화연안 일대에 분포돼

  • 일본문화 원류로서의 백제문화
  • 특성을 띠고 있는 유리공예품 등의 유물이 출토된 점에 미루어 이 고분을 5세기 후반 삼국출신 귀족의 무덤으로 분류하고 있다.. 후지노끼 고분나라현 이카루가(班鳩)에 있는 후지노키((藤ノ木)고분은 1985년 최초 발굴 당시부터 한, 일 양국 학자간에 이 고분의 성격을 둘러싸고 활발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그 후 총 3차에 걸쳐 실시된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안장가리개나 관장식 등의 부장품이 삼국계통의 유물이 확인되어, 피장자가 삼국계통이주민

  • 한국의 문화유산
  • 강화를 맺은 뒤 청나라 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새긴 비이다. 원래의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이다.청나라는 만주에 살던 여진족이 세운 나라이다. 여진족은 본래 조선에 조공을 받치던 부족이었다. 그런데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과 명나라가 큰 피해를 입자 이를 틈타 누르하치는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세력을 키운 뒤 국호를 후금이라 하였다. 이에 조선은 광해군 11년(1619) 명나라의 군사동원 요청에 따라 만주 지역에 파병하여 후금의 군사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