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원삼국시대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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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1) 동이족의 신앙기반
(2) 삼한의 소도신앙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그동안 삼한의 문화사 연구 중 종교의례에 대한 연구는 소도(蘇塗)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어져 왔다. 그러나 우리의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고 삼국지 한전 기사에 남아있는 소략의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대략 삼한의 종교의례 그 중에서도 소도란 독립적인 읍락에 대목을 세워 방울을 달아 놓고 귀신을 섬기는 신성지역으로 사람들이 이곳으로 도망가면 잡아 올 수 없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마한의 경우 대국(만여 가)과 진한의 소국(육칠백 가) 사이에는 인구면과 면적면에 있어서 적어도 10배나 차이가 난다. 따라서 소국과 대국은 국가발전단계를 달리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제사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소국은 각각 국읍에 천군을 세워 제천을 행하였지만, 아직도 별읍에는 소도가 있어 그들 나름대로 귀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은 소국사회의 한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광식, 『고대한국의 국가와 제사』, 한길사, 1994, pp331~332.
이른바 제정분리사회의 기준으로 삼으며 삼한의 국가적 통합이 불가능했던 지표로 삼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삼한의 종교를 막연히 소도라고 상정했지만 그 실상을 밝히는 데는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첫째 소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부족과 시각의 편협성 둘째 식민사관 극복의 미흡 일본에서는 소도의 모형을 대마도의 솟대신앙 민속자료에서 그 모형을 찾으면서 그 종교적 신앙의 측면을 강조하면서 일본에서 한반도로의 종교유입을 주장했다.
김두진, 「삼한 별읍사회의 소도신앙」『한국고대의 국가와사회』, 일조각, 1985, p112.
에 따른 주관적인 사료해석 셋째로 종교보다는 신앙이라는 관점을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송화섭, 「삼한사회의 종교의례」『삼한의 사회와 문화』신서원, 1995, pp55~56.
본고는 동이족 전반에 깔려있던 신앙기반을 바탕으로 삼한소도의 성격에 대한 제설들을 살펴봄으로서 그들 문화의 한부분에 다가가려 한다.

2. 본론

(1) 동이족의 신앙기반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보면 동북지역․예맥․고조선․부여․고구려․삼한을 동일한 문화권으로 묶어 기술했는데 이들 동이족의 문화적 특징은 지석묘와 석관묘를 사용했으며, 도작, 난생신화권으로 비정하고 있다. 식민사학의 영향으로 난생설화는 남방문화의 산물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부여와 고구려의 신화에 난생신화의 요소가 있으며 북방형 신화로 인식되어 지던 천강신화 역시도 남방형 신화에서 발견이 된다.
최광식, 『한국사』7, 국사편찬위원회, 1997, pp13~19.
지석묘의 분포를 보면 농경생산이 가능한 해안, 하천유역과 평야 및 구릉지대에 분포해 있는데 이것은 동이족의 농경문화권을 증명해 주는 지표가 된다. 송화섭, 앞의글, pp61~65.
기본적인 경제단위인 농경의 발전은
참고문헌
․최광식, 『고대한국의 국가와 제사』, 한길사, 1994.
․김두진, 「삼한 별읍사회의 소도신앙」,『한국고대의 국가와사회』, 일조각.
․송화섭, 「삼한사회의 종교의례」,『삼한의 사회와 문화』, 신서원, 1995.
․이현혜, 「삼한의 대회교역체계」, 『한국 고대의 생산과 교역』, 일조각, 1998.
․조법종, 「고구려 사회의 단군인식과 종교 문화적 특징 - 소도문화와의 관련성을 중심으 로」,『한국고대사연구』21, 2001.
․『한국사』7, 국사편찬위원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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