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의역사적이해] 고전역사의 종합(자치통감, 십통, 영락대전, 고금도서집성, 사고전서)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1.04.20 / 2019.12.24
  • 24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2,1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Ⅰ。자치통감(資治通鑑)
Ⅱ。십통(十通)
Ⅲ。영락대전(永樂大典)
Ⅳ。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Ⅴ。사고전서(四庫全書)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저자 및 편찬 배경

건륭 연간의 『사고전서』편찬사업은 중앙집권적인 황실의 도서수집이라는 오랜 전통의 부활을 상징했다. 침체된 전통에 대하여 이와 같은 활성화가 이루어진 이유는 만주족 통치자와 한족 신하 사이의 관계상의 특징 때문이었다. 만주족은 민족적, 그리고 왕조 초기의 수십 년 동안에는 문화적으로도, 자신들이 통치하는 광활한 인구의 한족과는 다른 소수파였다. 이러한 점은 그들이 통치를 위해 만들어낸 관념적인 정당화작업에도 매우 중요하게 영향을 끼쳤다. 결과적으로 만주족은 민족적 혈통에 상관없이 덕이 있는 사람이 통치할 권리를 강조한 유가경전을 주목하고, 자기들의 정치적․도덕적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자신들의 지배를 항변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건륭황제가 『사고전서』편찬사업을 통해 도서를 수집하는 중화제국의 관행을 다시 확립한 것은, 덕에 의해 국가를 통치한다는 이데올로기의 일부였다. 켄트가이 저, 양휘웅 역, 『사고전서(四庫全書)』, 생각의 나무, 2009, pp 49~50.

즉위 첫해, 건륭제는 각 성(省)의 재정을 맡은 관리인 포정사(布政使)들에게, 정부의 후원을 받아 완성된 모든 학술작품들의 필사본들을 인쇄하여 각 성의 서점에 배포하라고 명령했다. 2년 후, 정부의 찬조 아래 완성된 학술작품을 사설출판업자들이 다시 출판하여 유통시키는 것을 장려하는 조서가 반포되었다. 그는 또한 1757년,1762년, 1765년, 1780년, 17874년에 진행된, 황제의 남순(南巡)여행은 학술공동체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건륭제의 목적과 신조가 드러나 있다. 온 천하에 공표된 이 초대형 여행에서, 건륭제는 여러 지역을 지나면서 영향력 있는 지역의 유지들과 시․책․글씨 등을 서로 교환하였다.
1750년대에 들어와 능력과 잠재력을 갖춘 젋은 학자들이 조정에 대거 진출하였는데, 이들은 1757년에 진사(進士)시험을 통과한 학자들로 뛰어난 집단이었다. 그리고 조정의 출판사업에 참여하였는데, 건륭제가 후원한 최초의 성과물 중에는 『흠정사서문(欽定四書文)』 『흠정사서문』은 강희 연간 말기의 학자이자 신유학파의 일원인 방포(方袍,, 1668~1749)가 청제국의 기준으로 삼기 위해, 명과 청초의 과거시험에 제출된 답안들을 골라서 주석을 단 입문서이다.
이었다. 이후 삼례(三禮) 『예기(禮記)』,『주례(周禮)』,『의례(儀禮)』를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를 다룬 주석들이 1754년에 간행되는 등, 1750년대에는 새로운 주석을 단 작품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작품들은 강희제(康熙帝, 1654~1722) 중국 청나라의 제4대 황제(재위 1661∼1722). 중국 역대 황제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길었다. 청나라의 지배는 그의 재위기간에 완성되었으며, 다음의 옹정제(雍正帝)·건륭제(乾隆帝)로 계승되어 전성기를 이루었다. 소년 시절부터 많은 학문을 배웠고, 그중에서도 유학, 즉 성리학을 좋아하였으며 그 자신이 훌륭한 유학자로서 유학의 가르침에 따라 살기를 노력하였다. 또한 자신이 만주족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았으나, 중국의 문화가 자신들의 문화보다 매우 월등한 것을 알고 그것을 만주족 대신들에게 융화시키려 하였다. 강희제는 당나라·송나라 때의 과거의 일부분이었던 전시(殿試)를 발전시킨 박학홍유과(博學鴻儒科)를 실시하여, 많은 인재, 특히 강남의 한족 출신 학자들을 모아 박학홍유로 삼았고 이 중에서 뛰어난 이들은 한림원 학사로 삼았다. 박학홍유로 하여금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연감유함(淵監類函)』, 『패문운부(佩文韻府)』, 『역상고성』, 『수리정온』, 『전당시』 등을 편찬케 하였다.
가 후원한 형태의 연장 선상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1740년대에는 건륭제가 발행한 출판물의 초점이 경전에서 역사서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1747년, 조정의 학자들은『통지(通志)』,『통전(通典)』,『문헌통고(文獻通考)』의 중국 백과사전의 속편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하였고, 이 작업은 건륭 연간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러한 사업을 벌이는 목적 중의 하나는 한족학자들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에서 만주족 통치자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명․청시대의 역사서를 편집하려는 것이었다. 175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만주족의 언어와 역사를 저술하라는 조서가 내려졌다. 이후 만주어로 된 만주어사전인『청문감(請文鑑)』이 발간되었는데, 이 책은 조정에서 이미 사라져가던 언어를 체계화하였다.
참고문헌
참 고 문 헌

자 치 통 감 ( 資 治 通 鑑)
■ 고국항, 중국사학사 下, 오상훈 이개석 조병한 옮김, 풀빛, 1998
■ 권중달,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힘, ‘자치통감’에 있다』, 푸른역사, 2002
■ 신승하, 중국사학사,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0

십 통 ( 十 通 )



영 락 대 전 ( 永 樂 大 典)
■ 강혜영. 1984. 조선후기(朝鮮後期)대중(對中) 서적수입정책연구(書籍輸入政策硏究), 『도서관학논집(圖書館學論集) , 11(12):1-18.
■ 국사편찬위원회. 1955-1963.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서울
■ 권은정. 2000.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대외적 문헌교류와 유입문헌의 인쇄 활동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 김두종. 1992. 『한국고인쇄기술사』. 서울 : 탐구당.
■ 金聖七. 1960. 燕行小攷. 『歷史學報』,12: 729-807.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98. 『국역통문관지』. 서울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고 금 도 서 집 성 ( 古 今 圖 書 集 成)




사 고 전 서 ( 四 庫 全 書)
■ 켄트가이 저, 양휘웅 역, 『사고전서(四庫全書)』, 생각의 나무, 2009.
■ 뤄슈바오 저, 이재연 역, 『중국 책의 역사 - 《하도낙서》에서 《사고전서》까지 3천 년의 문화사-』, 다른생각, 2008.
■ 심규호,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도서출판 일빛, 2002.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철학]한국철학사
  • 자치통감》 등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오히려 한국 전근 대 역사서술을 한 차원 높여주는 역할을 했는데 이 점은, 첫째 삼국을 1세기부터 완성된 국가로 파악하고 국왕을 절대적 지배자로 이해했으며, 둘째 천재지변과 인간활동을 연결시키면서 역사를 바라보고 국왕의 정치행동을 연결시켰으며, 셋째 역사를 교훈을 위한 것으로 파악하였으며, 넷째 강한 국가의식과 자아의식을 강조하였고, 다섯째 역사에서의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

  • [중국관련 독후감, 독후감 모음, 독후감] 중국에 관한 독후감(서평) 모음집
  • 통하게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순자의 미학체계의 기본 방향은 소박한 유물주의이지만, 시대적 계급적 한계 또한 많이 지니고 있다. 이것은 순자의 성악설과 같은 추상적 인성론을 통해서 미학의 문제를 이해 한 것을 제외하더라도 에에 대한 규정과 이해에서도 표현되고 있다. 그러므로 순자의 미학사상의 전반적 체계와 성질, 그 역사적 의의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의 예에 대한 이론을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 후외로는 중국사상통사 제 1권에

  • [한국사] 한국사 A+ 요약정리 노트
  • 역사학의 발달1. , 박인량, 홍관등 초기에는 편년체2. 김부식: 현존최고의 사서, 유교사관, 국내외적 불안 속에 자기문화의 고양을 위한 자국역사의 재구성을 의도했다는 점에서 역사의식의 성장을 보여줌. 기전체, 왕명에 의한 공동작업편찬, 본기를 사용하여 자주의식을 갖춤각훈: 왕명으로 교종의 입장에서 편찬된 불교사서3. 이규보, 일연, 이승휴등 민족적 자

  • [언론학개론] 출판(책)과 출판산업에 관하여
  • 도서처럼 과학적이고 후세에 길이 남을 출판물을 실현시키는 일이 주요 관건이었다.그림이 부활된 이러한 전후 맥락에서 전대미문의 장르가 꽃피게 되었다. 1531년에 르네 알시아가 고안한 상징적인 책은 텍스트와 그림의 긴밀한 결합을 통해 다소 난해한 명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수용하고 있었다.-17세기의 도서출판17세기는 적어도 형식적 측면에서 유럽 책의 역사가 전환점을 맞는 시기였다. 문학이라는 광범위한 장르가

  • [작가론]조선후기 대표작가 고찰
  • 역사서 《기년아람(紀年兒覽)》, 사(士)의 윤리와 행실을 밝힌 《사소절(士小節)》, 고금의 시화(詩話)를 수록한 《청비록(淸脾錄)》, 명나라 유민(遺民)의 인물지인《뇌뢰낙락서(磊磊落落書)》 등 십여 종이 있고, 이들은 《아정유고》 등 문집과 함께 아들 광규(光葵)에 의해 망라되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71권 33책으로편찬되었다. 《사소절》을 지어 선비로서의 마음가짐을 엄하게 하라고 가르치려들고, 소설 따위는 배격해야 마땅하다는 조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