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역사 소설 속의 명성황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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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Ⅰ. 머리말
Ⅱ. '민비'vs명성황후
Ⅲ. 명성황후를 다룬 소설
Ⅳ. 정비석의『민비』에 나타난 명성황후 이미지
Ⅴ.『대원군전』에 나타난 역사적 오류
Ⅵ. 야설록의『불꽃처럼 나비처럼』에 나타난 명성황후 이미지
Ⅶ.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명성황후는 한국 근대사의 비운을 그대로 상징한다. 근대 이후 불행했던 한·일 관계사의 상징적 희생자인 명성황후는 드라마틱한 삶과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하여 일찍부터 소설이나 드라마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명성황후는 파란만장했던 삶만큼이나 그녀에 대한 평가도 "암탉이 울어서 나라가 망했다"는 반 페미니즘적인 시각의 부정적인 평가에서부터, 개
화의 선각자이자 반일의 기수였다는 최근의 긍정적인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명성황후를 이해하는 것은 곧 한국 근대사에 대한 역사인식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명성황후를 다룬 역사소설들은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명성황후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려 하기 보다는 어느 한 쪽만을 부각시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오히려 명성황후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한국 근대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콘텐츠인 역사소설이 명성황후의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역사소설이 범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이 명성황후의 이미지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민비'vs명성황후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 이후 고종은 아관파천 하였다가 2년 뒤인 1897년 10월 11일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꿈과 동시에 왕비의 호칭을 황후로 격상시켰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이를 외면하고 '민비'란 비칭을 사용했다. 조선시대 왕비들은 시호로써 인현왕후·문정왕후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성을 붙여 조대비·민비·윤비로 불러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비'란 단어가 식민사관 언어의 잔재1)「명성황후 생가를 찾아서」, 『한겨례』, 2002년 1월31일.
로 일본이 황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포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는 1910년 8월 29일에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하면서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되돌리고 황실을 '이왕가 1910년의 한일 병합 조약의 제3조에는 ‘일본국 황제 폐하는 한국 황제 폐하 태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 및 그 후비 및 후예를 각기 지위에 상응하는 존칭위엄 및 명예를 향유케 하고 또 이를 유지함에 충분한 세비를 공급할 것을 약조한다’라고 명문화되어 있어 대한제국 황제에게 황제이었을 때에 준하는 칭호 등을 부여하기로 약속하고 있었다(제4조는 그 외의 한국 황족에 관한 유사 규정). 이 조약에 기초하여 왕공족 가문으로써의 이왕가가 성립되었다.
(李王家)‘로 낮추어 일본 천황가에 예속시키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또 황실을 한 등급씩 강등시켜 일본천황의 일개 신하인 제후국으로써 황실이 아닌 왕실로 만들고 고종황제는 '이태왕'으로 명성황후는 '이태왕비 또는 민비'라고 칭하면서 황제 황후에서 한 등급씩 강등시켰다. 즉, '민비'라는 용어에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우위에 있음을 공고히 하여 침략의 정당성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참고문헌
「명성황후 생가를 찾아서」, 『한겨례』, 2002년 1월31일.
김명숙,「되살아난 명성황후 이미지」,『한국사상과 문화(제31권)』,한국사상문화학회,2005.
권행가,「明成皇后와 國母의 표상」,『미술사연구(제21권)』,미술사연구회, 2007.
이태진,「역사 소설 속의 명성황후 이미지」,『한국시민사강좌(제41집)』, 일조각, 2007.
야설록,『불꽃처럼 나비처럼: 명성황후 그의 야망과 첫사랑』,계몽사,1997.
윤정란,『조선왕비 독살사건』,다산초당,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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