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학] 대흥사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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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대흥사에 있는 문화재

- 서산대사 부도(보물 제 1347호)

-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 308호)

-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 308호)

- 응진전 삼층석탑(보물 제 320호)

- 서산대사 유물(보물 제 1357호)

-관음보살도(전남 유형문화재 제 179호)

- 대광명전(전남 유형문화재 제 94호)

- 천불전(전남 유형문화재 제 48호)

- 천불상(전남 유형문화재 제 52호)

- 용화당(전남 유형문화재 제 93호)

- 탑산사 동종(보물 제 88호)

- 표충사(전남 기념물 제 19호)

◎ 대흥사 창건 연기

◎ 대흥사 연혁

본문내용
○ 문화재에 대한 설명

- 서산대사 부도(보물 제 1347호)
대흥사서산대사부도는 대흥사 입구에 자리한 부도전 내에 건립되어 있다. 팔각원당형의 양식을 구비한 석조부도로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구성되어 있고 부도의 전체 높이는 2.7m이다.
인근에는 서산대사부도의 탑비가 있는데, 귀부·비신·이수를 구비하고 있다. 그렇지만, 귀부 상면에 배치된 비공(碑空)이 장방형임에 반해 비신 및 이수는 방형의 형태를 보이고 있어 원형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 1647년(조선 인조 25)에 건립되었다.
이처럼 탑비가 1647년에 건립된 점으로 보아 부도 역시 이와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통일신라시대 이래의 팔각원당형 석조부도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며, 중대석과 상대석의 동물장식, 옥개석의 전각에 표현된 용과 상륜부의 장엄이 주목된다.
이 부도는 임진왜란시 승병활동으로 알려진 서산대사의 부도라는 점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특수한 양식을 지니고 있다. 첫째, 통일신라시대에 확립된 팔각원당형석조부도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물론 일부에서 부등변팔각형의 평면을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특히 옥개석에 표현된 기와골, 내림마루, 암·수막새기와, 겹처마 등의 목조건축의 양식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같은 양식의 부도와 비교해 볼 때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 둘째, 중대석 및 상대석에 표현된 각종 동물상의 표현을 들 수 있다. 현존하는 팔각원당형 석조부도의 일반적인 양식으로 볼 때 중대석에는 주로 팔부신중 및 공양상이 부조되고, 상대석에는 앙련이 모각되는 것이 통식이다. 그런데 이 부도의 중대석 네 면에는 화문이, 나머지 면에는 각각 동물을 양각했는데, 아마도 사자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상대석에도 통식의 연화문과 함께 거북과 연꽃·게를 양각했는데, 이같은 조형은 다른 부도에서는 볼 수 없는 특수한 일례이다. 특히 게와 조개로도 볼 수 있는 연화문이 표현된 것은 바다가 가깝다는 지역적 특수성이 조형물에 표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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