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 테헤란 미대사관 인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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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8.19 /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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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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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Ⅰ. 사실관계
Ⅱ. 잠정조치에 대한 양국의 주장과 ICJ의 판결
Ⅲ. 주요쟁점과 본안판결
Ⅳ. 평가 및 결론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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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사실관계
1979년 1월 16일 이란 국왕(Shah) 팔레비는 급격히 고조된 반체제 운동에 신분의 위협을 느끼고 외국으로 탈출하였다. 반면 팔레비 축출 운동을 외국에서 지도하고 있던 이슬람교 시아파 최고지도자인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는 망명지인 파리에서 귀국하여 이란에서 종교와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호메이니가 임명한 Bazargan이 임시정부의 수상이 되었다.
1979년 10월 22일 멕시코 망명중인 국왕은 질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입국이 허가되었지만 이란은 이것을 미국에 의한 망명 승낙으로 판단하여 미국을 격렬히 비난하고 전 국왕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였다. 미국은 인도상의 이유로 이 요구를 거부하였다.
그 직후 11월 4일 호메이니를 지지하는 학생집단이 수도 테헤란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습격하여 점거함과 동시에 대사관에 있던 직원 등 60여 명을 억류하였다.
1979년 11월 4일 테헤란 시각 오전 10시 30분경, 대략 3000명의 참가한 시위 도중, 수백명의 시위자들이 미국 대사관을 침입했다. 미국 대사관의 경계임무를 맡고 있던 이란정부의 보안요원은 이러한 침입을 막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대사관 건물 지하창문의 체인을 자르고 빗장을 제거함으로써 침입은 가능해졌고, 대사관 1층의 통제력은 빠르게 상실되었다. 이 과정에서 침입자들은 협상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대사관 보안책임자와 4명의 대사관 소속 해병을 인질로 잡았다. 비미국인과 방문객들을 포함한 다수의 대사관 직원들은 대사관 건물의 상위층으로 피신했다.
공격이 시작 된지 약 두 시간 뒤 침입자들은 대사관건물에 불을 지르려는 시도, 상위층의 철문을 횃불로 이용하여 뚫고 들어가려는 시도를 했고 결국 상위층에 도달할 수 있게 되어 남아있던 직원들을 납치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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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 ICJ 홈페이지
" Application "
" Summaries of the judgement "
- 성재호 ․ 김정균 공저, 「국제법」, 박영사, 2006
- 장신, 「국제법판례요약집」, “테헤란 미대사관 인질사건”, 전남대학교 출판부, 2004, p.298~305.
- 이현조, 「국제법판례연구」, “테헤란에서의 미국외교관과 영사관 직원에 관한 사건(1980)”, 고려대학교 국제법연구회, 1996, p.331~376.
- 전순신, 「한국법학논문총서 국제법3」, “테헤란주재 외교직원 및 영사기관 직원에 관한 사건”, 동아대학교 동아법학9호(1989), p.151~212
자료평가
- 자료는 정리도 잘되어있고 좋음
그러나 배낄경우 너무 티가 날 수 있으니 그냥 참고만 ㅎㅎ - sole***
(2009.11.09 20:3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