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개론] 서중석교수의 성경읽기 ‘청정한 빛’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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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요약]
2. 인간의 한계와 찬양의 근거[요약]
3.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라면[요약]
[감상]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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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요약]
여기서 나타난 사제계급의 정결은 주로 몸에 관한 정결이었다. 그들은 몸의 정결 유지가 삶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되도록 교육시켰다. 제사용으로 동물을 선택할 때도 정결한 것, 곧 흠이 없는 것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았다. 가령 레위기 3장에 보면 “소를 잡아 드릴 때에는 누구든지,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이 없는 것을 골라서 주 앞에 드려야한다.”는 조항이 나온다.
이런 정황에서 예수는 “마음이 정결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했다. 이 말씀은 가히 혁명적인 선언이었다. 몸만 깨끗하면 어찌되었든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익숙해져있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몸의 정결이 보편적이고도 이상적인 가치관으로 설정되어 유대백성들의 머리를 점령하고 있던 시대에 마음의 정결을 역설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몸의 정결이 아니라, 마음의 정결이 더 크고 급한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마음의 정결을 가로막는가? 마음의 정결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욕심이다. 소유욕이나 감각욕, 명예욕이나 인정받고 싶은 욕망 등이 욕심의 주요 종류들이다. 이러한 욕심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같아서, 우리의 마음을 쉽게 연이어 점령한다. 따라서 마음의 청결을 유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마음이 청결한 자란 마음이 욕심에 의해 출렁이지 않는 정적인 상태에 있는 맑은 사람을 뜻한다. 예수가 청정한 마음을 말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더러운 마음의 대칭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깨끗함이나 더러움에 대한 구별조차 넘어서는 고요한 마음을 뜻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청정한 마음에 이른 사람은 역사상 소수에 불과하다.
예수가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한 것도 죽은 다음에 온전하라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온전해지라는 명령이다. 아버지의 온전한 상태가 우리의 것이 된 상태가 바로 청정한 마음의 상태라 할 수 있다. 욕심이 걷히면 그것이 곧바로 청정한 상태가 된다. 오직 마음이 청정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마음이 청정한 상태야말로 바로 신적 상태를 가장 적절히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마음이 온전히 청정해질 때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런데도 볼 수 있다고 한 것은, 청정심이면 그것이 곧 시천이라는 뜻이다. 곧 청정한 마음은 하나님의 얼굴을 반영할 뿐 아니라, 그것이 곧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예수의 교훈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누가 복음 17장 20절 이하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로 말씀하셨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마음속에' 있다는 해석은 하느님의 나라를 객관적 실체로 이해하지 않아도 가능한 이점이 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요체도 더 많이 달라는 욕심 사나운 탄성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욕심이 소멸되게 해 달라는 간절한 염원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욕심을 줄이고 마음을 달래가며 신성을 비추어 내는 삶이야말로 크리스천의 본래적인 삶의 모습일 것이다. "마음이 청정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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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정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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